안보활동인가 정치활동인가
보훈처의 '지침'은 '공무원 정치중립' 위반 아닌가
안보활동과 정치활동의 경계선은 어디까지인가?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의사 표명이 정치활동 금지 조항에 위배되는 것인가? 국가보훈처(보훈처)가 지난 달 19일 재향군인회(향군)에 '호국·안보활동 관련 지침'을 내려보낸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문제가 새삼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보훈처는 '지침'을 내려보내면서 향군의 호국·안보활동이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향군의 성명서 발표나 보도자료 배포, 강연활동 등에 대해 사전에 보훈처에 자료를 제출, 협의토록 강제했다. 5共 신군부의 서슬퍼런 '보도지침'을 연상케 한다는 지적과 비난이 일자 보훈처는 '지침'이라는 용어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보훈처의 이같은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정부의 안보정책을 비판하면서 안보단체로서 제목소리를 내는 것을 정치활동이라고 한다면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것까지도 하지못하도록 지침에 담았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 정부정책에 반하는 발언을 금지토록 강제한 것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상식'을 공무원들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정부에서는 해서는 안 될 '지침'을 보훈처가 내린데는 다른 속사정이 있는 것 같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들어 향군은 안보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성명서, 보도자료를 냈었고 필요시에는 대규모 집회도 실시했다. 향군의 이런 활동은 회법과 정관(定款)에 따라 회원들의 의사를 담아 실시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안보활동'이 정부와 여당에게는 '미운털'이 된 것이고, 결과적으로 감독관청의 감독소홀이라는 비난의 화살이 정치권과 '윗선'으로부터 보훈처에 쏟아졌을 것이라는 게 향군 관계자들의 짐작이다. 그래서 보훈처가 '5共 보도지침' 같은 무리수를 두어 온갖 비난을 홀로 뒤집어 쓴 것으로 미루어 볼 수 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여당의원들은 박세환 향군 부회장이 전작권 환수 반대 500만 서명운동 출범(2006년 9월12일)시, "내년에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 재협상을 공약하는 대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하겠다"는 발언을 정치활동이라고 지적하며 향군이 회법(제3조 정치활동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하자 박유철 보훈처장도 '정치활동으로 생각한다. 제재를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박 처장의 '생각'대로 향군을 제재하기 위해서는 정치활동에 대한 유권해석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어디까지가 정치활동이고 어디까지가 안보활동인지 그 구분이 모호해 향군과 보훈처가 그동안 해석을 달리하며 옥신각신해 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보훈처는 국정감사가 끝난 직후 법제처에 박 부회장 발언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그러나 보훈처의 요청에 대해 법제처는 '유권해석을 내리기에 부적절한 사안'이라며 보훈처가 보낸 공문서를 그대로 반려하고 말았다. 반려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보훈처는 사실상 '창피'를 당한 꼴이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훈처는 지난해 12월 12일 전작권 서명운동과 관련해 '재향군인회의 정치성 활동에 대한 엄중경고 및 재발방지 촉구' 공문을 시달하고 "(서명운동이) '정치활동의 금지'의 규정에 저촉될 수 있으므로 재발방지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보고하라"는 서슬퍼런 지시를 내렸다. 박 부회장의 발언이 정치활동이라는 법적인 근거도 없이 보훈처가 자의적으로 판단해 내린 공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향군도 같은 내용을 민간 법무법인에 자문했다. 향군이 '법무법인 KCL'에 의뢰한 법률자문 결과는 곧바로 회신되었다. 박 부회장의 발언은 향군회법 제3조 정치활동 금지 조항에 위반되는 행위가 아니다는 결론이다. KCL은 회신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기자회견을 여는 것 조차 정치활동이라고 한다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모든 행위를 정치활동으로 보아야 한다"고 해석했다.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회법에 금지되어 있지만 정치활동과 무관한 언론, 출판 및 집회와 관련한 이러한 활동까지 금지한다는 규정은 없다면서 권력의 획득 및 유지와 무관한 집회 활동을 정치활동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KCL은 향군회법 제3조 정치활동 금지 조항이 '단체활동 자체를 제한하고 있다'며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관련기사 <코나스> 2006년10월10일자 "향군의 전작권환수 반대 기자회견은 정치활동 아니다" 참조)
향군은 이같은 KCL 법률자문 결과를 곧바로 보훈처에 통보해 줬고 국회 정무위원회에도 보고했다.
이번 보훈처의 '지침'에 대해서도 향군은 KCL에 자문을 의뢰했다. 결과는 역시 향군의 자율적인 활동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KCL은 오히려 향군에게 업무 방해나 정신적 손해를 입혔다면 보훈처를 상대로 민·형사상 고소 등을 통해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관련기사 <코나스> 1월30일자 "보훈처 '지침'은 향군 자율성 침해, 손해배상청구도 가능" 참조)
이에 앞서 지난 2004년 10월 4일, 향군은 서울시청 앞에서 '국가보안법 수호 범국민궐기대회'를 개최했다. 20만 명의 군중이 참여한 유례없는 대규모 집회였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하려던 정부, 여당의 입장에서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보훈처가 곧바로 향군에게 정치활동 위반 소지가 있다며 주의를 촉구하는 공문을 내렸다.
이처럼 보훈처는 향군의 대외활동에 재갈을 물리는 수단으로 향군회법 3조에 있는 '정치활동의 금지' 조항을 들고 나온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정치활동의 내용에 대해 규정한 법률이 없고, 또한 정치활동에 대해 권위 있게 해석한 사례도 없다. 그러나 정치활동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란 나라를 다스리는 일'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일반적인 의미로 정치활동이란 정당에 가입하여 정당활동을 하는 것을 말하며, 개인적으로 투표행위를 하거나 국가안보를 위하여 기자회견을 여는 것과 같이 기본권과 관련된 행위까지 정치활동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향군의 안보활동이 정치활동이 아니라는 법적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보훈처가 향군의 대외활동을 통제하는데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사용하는 것이 회법 3조 '정치활동의 금지' 조항이지만 자신들도 정치활동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못내리고 있기에 법제처에 자문을 구했던 게 아닌가 싶다. '반려'라는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말이다. 문제는 정부·여당과 반대 목소리를 내는 향군의 대외활동이 귀에 거슬릴 때면 감독청인 보훈처로 압박이 쏟아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훈처의 고충을 이해한다. 그러나 보훈처가 줏대없이 끌려다니다가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헌법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향군의 '정치적 오해'를 지나치게 걱정하다가는 오히려 보훈처 공무원들이 정치 행위를 하게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지침' 역시 공무원이 특정당을 위하는 정치행위로도 얼마든지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헌' 시비가 있긴 하지만 향군은 회법에 명시된 '정치활동의 금지'라는 조항을 준수하며 안보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안보 걱정에 잠못이루는 고령의 군원로들이 때로는 여야 정당을 찾아가고, 때로는 국방장관, 국무총리, 대통령을 만나서 애타는 심정을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진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한여름 땡볕에 나가 구호를 외치거나 성명서를 발표했던 게 아니겠는가. 일생을 국가안보 일선에서 활동하다 퇴역한 제대군인들의 우국(憂國)의 목소리를 무조건 정치활동으로 매도해서 될 일이 아니다.
향군이나 보훈처 공무원이나 모두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향군은 '제2의 국가안보 보루'로서, 보훈처는 국가유공자와 제대군인에 대한 보훈정책으로서 대한민국을 선진대국으로 만들어 나가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konas)
김 철 기자 konasnet@korv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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