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과 한미동맹
2002년 10월 이후의 제2차 북핵 위기 해결을 위해 가동되어온 6자회담이 2월 13일 베이징의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제5차 3단계 전체회의를 겸한 폐막식을 통해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와 “대북지원 부담의 분담에 관한 합의의사록”을 채택함으로써 앞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정세에는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글에서는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의 해결이 장차 우리가 한미동맹을 관리해나가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제5차 3단계 6자회담의 성과
이번 회담에 대해서는 남북한관계 개선을 비롯해 동북아 지역에 해빙의 분위기가 고조될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60년 만의 붉은 돼지띠 해가 가져다준 선물이라 반기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희망과 절망이 무상하게 교차하던 저간의 경험에 비추어 지나친 낙관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유보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어려운 곡절 끝에 이루어진 만큼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일단 적절한 평가가 이루어 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2005년 11월의 제5차 1단계 회담 이후 최근까지의 미북관계는 방코델타아시아(BDA) 관련 미국의 금융제재를 기화로 2006년 7월과 10월 북한이 각각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감행하는 등 긴장이 한껏 고조되어온 분위기였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결의되고 남북한관계도 경색되는 위기상황을 어떤 식으로든 안정되게 관리해야 했던 한국정부가 이번 제5차 3단계 6자회담을 통해 북한 핵시설에 대한 불능화(disabling) 조치와 더불어 북핵 폐기 과정이 관련 5개국 간 균등분담 원칙에 따르는 대북 에너지 지원과 연동하도록 합의를 이끌어낸 외교적 성과는 우선 높이 평가할 만하다.
나아가 초기조치 이행사항엔 포함되지 않았지만 북한이 고통스러워하며 해결을 원해 마지않던 BDA 관련 미국의 금융제재를 초기조치 합의 이후 30일, 즉 3월 15일 이내에 미북 간 협의를 통해 해결되도록 미국의 정치적 융통성을 공식화한 것도 이후의 실행 과정에서 북한의 합의사항 번복 가능성을 방지하고 핵 폐기 과정에 실천적 구속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다 이번 6자회담에서 합의한 초기조치 및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완전한 이행을 위한 다섯 실무그룹이 설치되어 북한의 대미, 대일 관계개선과 경제 및 에너지 협력을 한 축으로 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평화안보체제 수립을 다른 한 축으로 하는 역내 안보환경의 구조적 안정화 작업이 가속화된다면 냉전의 마지막 보루였던 한반도는 마침내 평화와 안정이 고착되는 일대 전환기로 접어들게 된다는 점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항이다.
특히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와 같은 안보협의체를 이 지역에 설립하는 노력이 구체화될 경우 미래 북핵위기와 유사한 지역안정 저해요인에 대한 즉각적인 감시와 논의, 해결책의 모색이 제도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 한다. 러시아가 의장국을 맡을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실무그룹 혹은 초기조치 이행 직후로 예정되어 있는 6개국 외무장관 회담이 그동안 학문적 사변의 장에서 맴돌던 다자안보협력기구의 설립을 촉진하거나, 6개국이 적절한 별도 포럼을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작업이 바람직한 결실로 이어져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물론 그 과정이 매우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릴 것임은 자명하다.
초기조치 이후 단계의 안보적 과제
이처럼 이번 6자회담에서 합의된 초기조치들이 의도대로 실천될 경우 역내 안보환경 개선에 미칠 긍정적인 면은 실로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이번 초기조치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나가려는 관련국의 노력이 아무리 가상하더라도 2·13 초기조치에 미처 반영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다음 단계 협의과정으로 미뤄둔 난제들 혹은 뜻밖의 사태로 말미암아 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는 파국적인 상황 등 장애요인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심각한 경제난에다 핵실험 이후 사용할 만한 외교적 카드도 소진된 북한이 핵 폐기 원칙에 합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더라도 앞으로 진행될 실무그룹 회의에서 이미 제조해둔 핵무기 혹은 여타 핵물질의 폐기 등 중요한 여러 사안마저 원만히 타협해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 가지 사례가 될 것이다.
아울러 이번 제5차 3단계 6자회담은 순수하게 안보라는 측면에서 평가해볼 때도 주의를 기울여 대비해야 할 여러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우선 여태까지 주적이라 여기던 상대가 6자회담 합의를 통해 화해와 협력, 상생의 대상으로 갑자기 탈바꿈함으로써 우리가 부득이 겪어야 할 인식상의 혼란이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정세 분석으로부터 시작해 북한을 포함한 주변국의 위협에 대한 평가와 대비태세의 수립 및 군사력 건설과 배비, 방위기획 및 전쟁계획의 수정과 보완 등등 실로 다양한 과제가 현실적인 문제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미국과 NATO 회원국 등 주요 국가들이 1990년대 초부터 경험했던 탈냉전의 안보환경 변화를 지연 경험하는 데서 발생하는 심리적, 물리적 충격과 그에 대비하는 어려움은 어쩌면 생각 밖으로 심각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 등 한미동맹관계에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정체성 있는 안보관을 확립하는 한편으로 재정지출도 늘여야 하는 가중된 부담이 적절한 완충장치 없이 2006년 여름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북핵위기 해결 가능성과 한미동맹
6자회담에 의한 북한 핵문제 해결 가능성과 연계하여 우리의 안보태세를 점검하고 보완책을 마련하는 작업은 특히 한미동맹을 관리하고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보환경 변화에 따라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소여(所與) 혹은 기정사실(faitaccompli)로 여기던 맨털리티를 발전적으로 극복하는 한편으로 자유민주주의 윤리와 가치를 바탕으로 미래 국제질서에 적합한 한미 동맹관계의 비전을 개발 및 공유함으로써 한국전쟁 이후 60여년 동안 우리를 지켜주었던 안보협력관계가 적어도 과도기적 상황이 지속되는 상당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번 제5차 3단계 6자회담의 초기조치 합의문 제2조 3항에서는 핵문제 해결과 병행하여 미국과 북한이 양자 간 현안을 해결하고 전면적 외교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대화를 개시하며, 미국은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고 북한에 대한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종료시키도록 노력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물론 북한의 핵 폐기 이행절차가 진행된다는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마침내 미북 간에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연락사무소 내지 대사급 외교관계가 개설되는 상황이 도래한다고 가정할 때 북한의 남침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한미연합방위조약 및 한미연합군사령부(CFC), 유엔군사령부(UNC) 체제 등 우리 안보구도의 중요한 부분들이 존립근거를 잃고 조정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북핵 위기의 해소로 안보환경이 구조적으로 개선된다면 우리의 대비태세 조정작업 또한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 및 주변국가들로부터 있을지도 모를 안보위협에 독자적으로 혹은 주변국과의 안보협력관계를 바탕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비태세를 갖추는데 소홀할 경우, 그런 대비태세 부족 자체가 없던 위험을 불러오는 화근이 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전쟁의 위협이 사라진 안정 속이라 해서 남북한관계가 반드시 평화통일로 이어지리라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한국과 북한 모두와 수교관계에 들어갈 미국과 일본이 남북한을 대상으로 외교적 선택지를 엄청나게 확대하는 상황을 예상하면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을 바탕으로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비교적 초연한 상태에서 경제개발에 전념할 수 있었던 과거 시점이 오히려 안보스트레스가 적었다고 여겨질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과는 별개로 남북관계에서 과거처럼 거리를 둘 경우, 혹은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내세워 우리와의 관계에서 좀 더 수월하게 이익을 챙기려 할 경우 우리가 처하게 될 어정쩡한 상황은 참으로 우려스런 현실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런 가능성은 현 단계에서는 가설에 불과하다.
다행히도 현재 한미동맹관계는 한국 내 미군기지 이전 및 부대 재배치, 전시작전통제권 한국군 이양 등 주요 현안을 중심으로 협조관계를 잘 발전시켜가고 있다. 그리고 급변하는 안보여건이 비단 우리에게만 부담이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한미동맹이라는 안보자산의 객관적 가치를 좀 더 인식하는 위에 남북관계와 동북아 안보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는 국방 및 안보 대비태세를 정비할 수 있도록 혼연의 노력이 경주될 필요가 있다. 6자회담에 따른 북핵문제 해결 가능성은 우리의 안보위협 평가, 군사력 건설 및 배비 등 안보태세 점검과 조정작업이 좀 더 정교하게 진행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과도기 상황을 보다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도, 돌발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비전에 토대를 둔 한미동맹관계 발전은 그 중요성이 좀 더 강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konas)
엄태암(한국국방연구원 미국연구실장 ota1133@kornet.net)
출처:KIDA
- 관련기사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