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차 '뮌헨안보정책회의'와 미러관계
지난 2월 북경에서 9.19 합의 17개월 만에 6자회담 참가자들이 북핵 불능화 방안을 도출하던 시점, 6자회담의 한 당사국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독일의 남부 도시 뮌헨에서 또 다른 6자회담 당사국 미국의 대외정책을 그 어느 때보다도 강도 높게 비난하였다.
1960년대 초 발족한 ‘뮌헨안보정책회의 (Munchner Konferenz fur Sicherheitspolitik) (이하 ‘뮌헨회의’)’는 미국-유럽 연례안보대화로서 그 43차 회의가 지난 2월 9일-11일, 3일간 ‘글로발 도전과 대응’이란 제하로 개최되었던 것이다. 푸틴 대통령, 독일의 메르켈 총리, 신임 미국 국방장관 게이츠, NATO 사무총장 쉐퍼, EU 외교안보위원장 솔라나, 이스라엘 외무장관 리브니 등 40여개국 300여명이 이에 참가하였다. 개최지 안전을 위해 3,500명의 경찰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주최측은 국제경제 차원에서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World Economic Forum)’이 있다면 국제전략 차원에서는 뮌헨회의가 있다고 한다. 그간 뮌헨회의는 기본적으로 NATO와 EU 문제를 주요의제로 하였으며 그때그때 주요 국제안보 이슈를 첨가적으로 논의하여 왔다. 올해는 “EU가 평화, 안전, 복지를 위한 지역기구 모델이 될 수 있는가” “글로발 도전속 NATO의 역할을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가” 등의 역내 문제외에 중동의 평화, 국제테러리즘, 그리고 러시아의 국제적 역할 등 3개 의제가 첨가적으로 부각되었다.
올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뮌헨회의에 참석, ‘국제정치에서 러시아의 역할’이란 제하의 연설을 하게 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참석은 2007년 전반기 EU 의장국인 독일 메르켈 총리의 초대에 따른 것이다. 러시아로부터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을 기대하는 EU는 이즈음 부쩍 러시아의 에너지 정책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소련지역 신생국들에 대한 러시아의 에너지 가격 인상, 나아가 우크라인, 그루지아, 그리고 최근 벨라루스와의 관계에서 보았듯 에너지 일시 공급중단 등 서유럽국가들은 러시아가 언젠가 자신들과의 관계에서 에너지를 지렛대로 사용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안고 있다. 이것이 금년 뮌헨회의에서 러시아가 주요 이슈중 하나로 선정된 배경이다. 푸틴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러시아는 철저히 “시장원리” 에 따르고 있다며 서구의 러시아 비판을 역공하였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요지는 대미비판에 있었다. 푸틴 대통령은 서두, 청중들에게 외교적 언사를 모두 생략하겠으니 자신의 말에 화를 내지 말라고 주문한 후 미러간 불편했던 국제적 의제들을 차례로 제기하면서 불만을 토로하였다. 이례적으로 “미국” 을 직접 거명해 가면서 세계가 민주주의적이지 못하고 “하나의 주인, 하나의 주권, 단극체제”를 이루고 있다고 하였다. 이라크전을 들어 “오늘날 국제관계에서 무력이 절제 없이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NATO의 동진은 NATO의 현대화와 무관하다”며 “누구에게 대항하기 위해 확장하는가 물을 권리가 러시아에게 있다”고 하였다. “미국이 OSCE (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의 성격을 자국 외교정책의 수단으로 바꾸어 버렸다” 고도 했다. OSCE가 구소련지역 국가내 인권, 법의 지배, 민주화 구현의 일환으로 국제선거 감시단을 파견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또 미러 ‘전략핵무기 감축조약’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베게 속에 여분의 탄두를 감추었을까봐” 걱정이라고도 하였다. 또한 만일 미국본토를 방어하는 미사일방어체계가 개발된다면 이는 냉전기 핵 평화를 유지해온 상호확증공멸 체계를 흔드는 것이라 경고하면서 넌지시 러시아의 새 탄도미사일 ‘Topol-M’이 어느 정도는 이에 대한 응대라고도 밝혔다. 러시아 언론들은 미국이 과거 공산권 국가였던 체코 및 폴란드 내 미사일방어망 배치 계획을 갖고 있다며 근래 부쩍 이에 대한 비판과 자국의 “효과적 대응책”을 경고해 왔던 바이다.
이란핵 문제의 해결책으로 푸틴 대통령은 작년 러시아가 제안했던 바 있는, 자국 내 제3국의 평화적 핵사용을 위한 우라늄농축센터 건립을 제안하였다. 그간 관련국들의 호응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러시아는 대이란 원자로 건립계약 및 미사일 개발지원 의혹 등 미국과 EU, 그리고 이스라엘의 우려를 키워온 것이 사실이다. 회의 전야 만찬연설에서 이스라엘 외무장관 리브니는 국제사회와 이란과의 타협에 대해 경고하였다. “세계는 핵국가 이란을 수용할 수 없다.” 그녀는 러시아-이란의 긴밀한 관계를 암시하듯 “옳은 결정에 따르는 값을 치루지 않으려는 자들이 있다” 고 첨언하였다.
푸틴 대통령은 질의응답 시간 청중들로부터 자신과 입장을 달리하는 다수의 논평을 들어야 했다: 최근 러시아의 대벨라루스 원유수송 중단에 대한 비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푸틴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당시 소련이 “민주주의, 자유, 개방, 그리고 거대 유럽가족 구성원들과의 진실된 동반자관계를 선택했기 때문” 이 아니라 “미국이 서유럽국가들과 함께 이룬 결실” 이라는 상반된 역사인식; “러시아의 대내외 정책이 유로-아틀랜틱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에 위배되는 한, 서구와 참된 동반자관계를 향유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는 조언 등이다. 뿐만 아니다. 이튿날 단상에 선 게이츠 미국방장관은 미국-유럽관계에 대한 자신의 연설문 발표에 앞서 냉전기 푸틴 대통령의 KGB 경력과 자신의 CIA 경력을 빗대며 다음과 같이 짧게 소감을 밝혔다. “어제 연설자중 한 분이 이미 흘러간 과거의 이슈들을 거론하였습니다. 냉전기 전사의 한 사람인 저로 하여금 덜 복잡했던 (less complex)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낄 정도로요. 여러분들 대부분은 외교나 정계 경력을 가졌지만 어제 그 분과 저는 스파이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과거 스파이들은 거칠게 말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난 4년반 재교육 캠프에 투입되었었습니다. 즉, 대학총장으로 재직하면서 교수들과 생활하였던 것입니다....오늘날 세계는 20-30년 전과 다릅니다. 우리는 러시아를 포함한 여타 국가들과의 동반자관계를 통해서만 해결해 나갈 공동의 문제와 도전에 접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는 금주 푸틴 대통령과 이바노프 국방장관의 초대를 수락했던 것입니다....”
대부분 관측자들은 푸틴 대통령의 연설이 냉전을 회상케 하였다고 평하고 있다. 참석자중 한사람이었던 미 공화당 상원의원 그래함(Lindsey Graham)은 그의 연설이 지난 몇 년 그 어느 때보다 미국과 유럽을 하나로 묶는 역효과를 낳았을 뿐이라고 한다. 한편 크렘린 대변인은 푸틴의 연설이 냉전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아랍은 물론 유럽에서도 많은 이들이 미국주도 단극체제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푸틴 대통령의 연설을 정당화 하였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러시아가 중요한 국제행위자로서의 입지를 되찾게 되었다” 고 하는 크렘린 대변인의 첨언은 좀 어색한 느낌을 준다. 중요한 국제행위자는 스스로의 말로서가 아니라 국제평화와 안보에 기여하는 “책임 있는 행동과 실천” 으로서 저절로 성취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러시아가 고유가와 경제개혁으로 인해 급성장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또 이에 따라 러시아의 국제적 지위 역시 신장될 것이라 본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연설을 통해 미러관계가 전적으로 냉각되었다고 전제하고 우리의 외교정책을 펼쳐서는 안 될 것이다. 잦은 자극적 반미언사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을 포함한 러시아 엘리트들은 기본적으로 자국의 국익이 경제이던 안보이던 미국과의 우호관계 속에서만 효과적으로 실현가능하다는 사실을 그 어느 나라 엘리트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아태지역 호주와 일본은 뮌헨회의에 관심을 두고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정부도 안보 국제화의 조류에 따라 구미 정책 입안가들과 이들이 초대한 이들의 보다 솔직한 안보관을 들을 수 있는 본 회의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konas)
정은숙 (세종연구소 지역연구실장 chunges@sejong.org)
출처:세종연구소 세종논평 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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