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h, You Too!"
I
자신을 철저하게 믿었던 인물에 대한 배신으로 최후를 마감한 경우로 로마의 최고실력자이면서 위대한 장군이었던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100-BC.44)의 경우보다 더 극적인 예는 역사에서 흔치 않을 것이다.
기원전 44년, 로마의 독재관 카이사르가 원로원에서 암살되었다. 수십명의 謀叛者들이 흉기를 들고 각자 한 번씩 케사르를 찔렀다. 거사의 이유는 카이사르가 로마공화정을 폐기하고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반자들은 각자 한번씩 카이사르를 찔렀는데, 최후로 카이사르의 심장을 단검으로 찌른 인물이 바로 당시의 법무관 마르쿠스 유니우스 부르터스였다. 그는 카이사르가 매우 아끼던 인물로서 카이사르의 오랜 愛人의 아들인데, 부르터스가 카이사르의 實子라는 소문이 나돌 만큼 두 사이는 마치 父子之間처럼 친밀한 사이였다. 단검을 쥐고 나타난 부르터스를 바라본 카이사르의 배신감은 세익스피어가 묘사한 "부르터스 너마저(Et tu, Brute!)."라는 카이사르의 절규(絶叫)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II
카이사르가 부르터스에게 내뱉은 독백(獨白)을 상기하면서, 필자는 오랜 기간동안 난항 끝에 마련된 베이징 6자회담의 2.13합의를 바라보면서, 조지 W. 부시에 대한 쓰라린 배신감에 떨칠 수가 없다. 카이사르가 부르터스에게 “너마저 부르터스”라고 외쳤듯이, 필자도 “부시 당신마저(Bush, You Too!)”라고 절규할 수밖에 없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조지 W. 부시는 과연 어떤 정치가였던가? 2002년 부시가 연두교서에서 김정일 정권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하였을 때, 우리는 얼마나 통쾌해 하면서 박수갈채를 보냈던가! 한국의 대통령이 언급했어야 할 용어를 미국 대통령이 대신함으로써 한국인으로서 무척이나 부끄러워했었다. 부시는 해마다 연두교서에서 김정일 체제와 열악한 북한인권 상태를 비판하면서 북한을 압박하였고, 2005년에는 탈북자이며 『평양의 어항』 저자인 강철환을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그를 격려했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다. 그뿐 아니다. 미 재무부가 재작년 가을부터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의 김정일 비자금을 동결했을 때, 우리 보수애국세력은 쾌재(快哉)를 부르면서, 코너에 몰린 김정일의 누적된 수많은 지나간 범죄행위를 국민대중에게 폭로하였으며 그의 민족공조 책략에 동조하면서 ‘퍼주기식 묻지마’ 대북지원을 강행하는 남한의 친북좌파를 규탄하는데 일에 무척이나 바빴었다. “김정일의 命運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배가 고파서 여자까지 중국으로 팔려가고 사람고기(人肉)까지 먹었다고 하는 북한동포가 해방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생쥐와 바퀴벌레로 연명하는 지옥의 감옥이라 불리는, 요덕수용소의 해체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이렇게 우리는 철석같이 믿었었다. 그리하여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을 실천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투쟁의 대열에 나섰다. 집권당 열린우리당은 작년 중간선거에서 모두 40대 0의 완패를 기록하였고, 열우당은 민심의 이반에 놀란 나머지 각자 살길을 모색하기위해서 줄줄이 탈당사태가 이어지면서 집권당의 해체내지 공중분해가 초읽기에 들어갔던 것이 작년 여름부터 올해 정해년 초에 이르기까지 우경화된 국내 민심의 변화와 정국의 현주소였다,
III
그러나 그토록 믿었던 부시 대통령은 베이징 2.13합의를 통해서 한국의 보수애국세력의 기대를 철저히 배신하고 말았다. 과연 미국이란 한국에게 어떤 나라인가? 다시 한번 미국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한국에게 “病도 주고 藥도 준 나라”다. 한마디로, 무작정 좋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워할 수도 없는 “愛憎이 교차되는 나라”인 것이다. 만약 미국의 태평양전쟁 참전이 없었다면 또 6.25동란시 미국이 지원이 없었다면, 오늘날처럼 번영을 구가하는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점을 인정하면서도, 2.13합의를 바라보면서, 과거 100동안에 걸쳐 미국이 한국에게 섭섭하게 한 것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미국의 정체를 좀 더 냉철하게 파악해 보자는 동기에서이다. 왜냐하면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친구도 없으며, 영원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1. 1882년 제물포에서 한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일방이 제3국의 위협을 받을 때는 ‘거중조정(good office)'을 하도록 했다. 조약 상대국이 제국주의 침략의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하는 ‘보호장치’였다. 대한제국은 이 조약후 미국에 최초의 철도부설권과 운산금광 채굴권 등 막대한 특혜를 주고 루스벨트에게 ‘거중조정’을 요구했지만 거부되었다. 일본의 야욕을 간파한 고종이 '제발 조선을 살려달라'는 애끓는 간청을 냉혹하게 뿌리친 나라가 바로 미국이었다.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외교공관을 제일 먼저 철수시켰지만, 30년대까지 끝까지 남아서 금광을 부지런히 파내 간 나라도 바로 미국이다. 미국인들은 조선인들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Don’t touch라는 말이 와전되어 ‘노다지’(금)라는 말로 와전되었던 것이 여기에서 연유되었다.
2. 미서전쟁(1898)으로 승리한 미국이 필리핀에 대한 항구적 식민지화의 야심을 품었을 때, 그것을 국제적으로 공인받기를 갈구했다. 나쁘게 말해서, 양심이 찔린 미국은 일본이라는 共犯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1905년,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육군성장관 윌리엄 태프트에게 일본에 들러서 카츠라와 비밀협약을 체결하도록 종용하였다. 이것이 유명한 태프트-카츠라 密約이다. 밀약의 요지는 “일본은 필리핀에 대해 하등의 침략적 의도를 갖지 않으며 미국의 지배를 확인한다”는 것과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종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밀약 다음 해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탔다. 이런 밀약을 한 이유를 내건 루즈벨트의 변명 내지 대의명분은 “일본으로 하여금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팽창주의를 저지하도록 하겠다”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1905년 밀약 당시, 러시아는 이미 일본에 패한 상태였으므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3. 애국지사들이 1919년 3.1만세운동을 결행했을 때,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한 가닥 희망을 품었었다. “설마 미국이 좌시하지는 않겠지???” 그래서 착한 우리 선조들은 맨손으로 태극기를 들고 전국방방 곳곳에서 만세삼창을 불렀다. 그러나 서방 민주국가들로부터 믿었던 지원은 아무 것도 없었다. 얼마나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군의 잔인한 진압작전에 목숨을 잃었던가? 총알이 아깝다고 하여 죽창으로 찔려죽었고, 교회당을 불 질러서 불에 타 죽었다. 미국인 선교사들의 빗발치는 항의가 있었지만, 미 국무부에서는 “일본의 만행에 유감”이라는 성명서 한 줄 뿐이었다.
3. 2차대전 당시 이승만은 상해임정을 외교적으로 인정받으려고 온갖 애를 다 썼다. 그는 혹시 무기대여법에 의한 약간의 원조라도 받고 싶어했다. 그러나 미국은 소련의 눈치를 보면서, 상해임정의 승인(承認)도 불허했으며, 영국과 소련,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 등 연합국에게 무려 총 550억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무기대여원조를 제공했지만 단돈 1달러도 이승만이나 임정에 지원하지 않았다.
4. 2차대전 말기, 미국은 일본본토에 상륙하게 되면 50만명의 미군사상자가 날 것이라는 육군참모부의 오판에 의해서 그 당시 일본과 불가침협정을 체결했던 소련을 동아시아전쟁에 끌어드리게 된다. 그 댓가는 일본을 분할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분할로 처리되었다.
5. 6.25동란시에 미국은 한국의 안전보장을 확실히 하지 않은 채, 공산측과 서둘러 협상을 마치고 철수를 하려했다. 그러자 이승만이 거제도 반공포로석방으로 애를 먹이자, 그후 미국은 에딘버러 작전을 통해서 이승만 제거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서 국무부와 주한미대사의 반대로 기각된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이승만의 위치를 대신할만한 지도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 작전이 실행에 옮겨졌으면, 아마도 월남전에서 디엠 암살을 묵인, 방조했던 케네디 행정부의 전철이 되어 남한의 공산화 내지 그에 준하는 극심한 혼란이 초래되었을 지도 모른다.
6. 커터는 후보시절부터 주한미군철수를 주장한 인물이었다. 그는 박정희의 핵개발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카터 행정부시절에 박정희 대통령은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했다. 그리고 한국내의 인권개선을 요구하면서 박정희를 압박했고, 1979년 김대중 납치사건에서도 주한미대사관을 통해 김대중 구명운동을 지시했다. 그러나 카터는 북한의 김일성에 대해서는 호감을 가졌던 인물로서 북한인권의 개선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던 二律背反的인 인물이었다.
7. 클리턴 행정부 시절, 미국은 파리에서 한국대표단을 참석시키지 않고 일방적으로 북한측과 협상하여 소위 KEDO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미국은 북측에 제공되는 핵발전소를 한국형 원자로 건설이라는 핑계를 만들어서 한국에게 일방적으로 재정적 부담을 강요하였다.
그렇다면 이번 베이징의 2.13합의는 미국이 한국에게 병을 준 경우인가 약을 준 경우인가? 6자회담에서 2.13합의는 북한이 60일 이내에 핵실험 불능화(disabling)조치와 IAEA사찰단 복귀를 수용할 경우 상당의 경제 에너지 지원(중유 100만톤)을 하기로 합의되었고, 앞으로 美北관계정상화, 北日관계정상화, 동북아평화안보 메커니즘 등에 관한 실무단 일이 가동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존의 핵무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것은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중대한 양보를 전제로 한 것이다. 북핵 실험을 강행한 점에 대한 제재가 전혀 없다. BDA에서 동결된 김정일 비자금도 곧 해제될 것이라고 전해진다. 외교적 업적에 골몰하게 된 부시는 “악행에 대한 보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미국 보수파 논객, 니콜라스 에버스타트 미 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은 지난 26일 AEI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2·13 북핵 합의는 외교적 승리를 가장한 전략적 대(大)실책”이라고 지적했다.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북한은 미 달러를 위조했고 미사일 발사·핵 실험으로 미국과 동맹국들을 위협했는데, 그 대가로 미국은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를 풀어주고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며 수억 달러 어치의 에너지 지원을 결정했다”고 분석했다.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이번 합의로 인해 한국은 당장 5만톤의 중유를 북에 제공해야하는데, 한국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로서 미국에서의 석유 값보다 2.5배가 넘는다. 비싼 석유를 수입해서 북에 퍼 주어야한다. 세계 최강대국이면서 최고의 富國 미국이 원해서 북한과 합의했는데, 미국이 아니고 왜 한국이 先物로 북측에 석유를 제공해야하는가? 결국 한국은 국제적 봉인가? 북핵이 폐기된다면, 한국이 가장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는 논리인가?
왜 부시는 이런 합의를 지지했을까? 그 주된 이유는 미국은 이라크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진퇴양난의 곤경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미군사상자가 이미 3,500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번 2.13합의는 부시행정부의 외교적 돌파구를 찾기 위한 몸부림으로 볼 수 있다. 작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상·하원에서 공화당은 모두 민주당에게 패배했으며, 부시는 그 책임을 물어서 국방장관 럼스펠트를 해임하였다. 부시를 설득하여 이라크전쟁을 주도했던 네오콘 핵심인물인 부통령 딕 체니는 곤경에 처했으며, 언제 사임할지 모르는 지경에 처해졌다. 국무부와 국방부 내부에서 이라크 전쟁과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딕 체니, 럼스펠트 등 네오콘 강경파와 라이스-힐 라인의 국무부 온건파가 사사건건 대립해 왔는데, 대선의 패배를 기점으로 부시는 온건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여기에 이란의 핵개발 여파로 부시 행정부로서는 북한 핵에만 몰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을 무력으로 때려서 미국이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라크처럼 석유를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칫하면 중국과 대결하게 된다. 또 아무런 외교적 업적도 없이 이라크에서 미군사상자만 증대한 채, 임기를 마치게 된다면, 실패한 대통령이란 歷史의 罪人으로 멍에를 쓰게 될 것을 두려워한 부시는 국제관계에서 도덕주의적 이상주의를 버리고 실용주의적 현실주의 노선을 채택한 것이다. 이것이 ‘악과의 공존전략’이다.
IV
그러면 한국의 보수우익은 2.13합의를 어떻게 수용할 것이며, 앞으로 전개될 친북좌파들의 대대적인 평화공세를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친북좌파가 집요하게 추구하는 미북 평화체제 합의, 미북修交, 남북정상회담, 남북연방제 합의, 군복무기간 단축, 남북한 병력감축 및 군축, 한미연합사 해체, 주한미군철수 등 남한의 공산화 방향으로 이행되는 일련의 시나리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래서 필자는 작년부터 유엔이나 미국, 일본 등 우방국들에 대한 보수애국세력의 다양한 외교활동을 누누이 강조한 바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결코 2.13합의를 ‘밤중에 별 보듯이’ 우두커니 용납할 수는 없는 것이다. 國運의 문제이고, 국가안보의 문제이며, 국가 자존심, 즉 國格의 문제가 걸려있다. 나라가 이지경이 된 점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국정운영의 무능함과 利敵, 反逆행위를 다반사로 한 집권층인 친북좌익세력에 대한 엄중한 역사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보수애국세력의 大悟覺醒과 奮發을 다시한번 촉구하는 바이다.
이주천/원광대 사학과 교수ㆍ뉴라이트 전국연합 공동대표
출처:월간조선닷컴 http://monthl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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