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점차 보수화되고 있다
'진보' 22.7%에 '보수'는 32.6%‥‥북핵 ·노조파업 등 영향 받은 듯
노무현 정권 들어 국민은 점차 진보진영에서 이탈, 보수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을 ‘진보’라고 밝힌 응답자는 22.7%인데 반해, ‘보수’는 32.6%에 달했다. 지난해 1월 조사에서 자신을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는 21.5%였다. 이후 5월(한국일보 조사), 8월과 10월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선 25.4% →28.6% →31.5%로 점차 증가했고, 노무현 정권의 인수위 시절인 올 1월엔 34%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노풍과 촛불시위 등을 겪으면서 국민이 진보성향으로 바뀐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노정권 출범 8개월여가 지난 올 11월 뉴스위크 한국판의 국민 이념 조사에서는 자신을 ‘진보’라고 밝힌 응답자는 22.7%, 과거 대비 3분의1에 가까운 국민이 진보 색채를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조사에서 자신을 ‘보수’라고 밝힌 국민은 32.6%로 지난해 초보다 4.1%포인트가 늘었다. 자신을 중도라고 밝힌 국민(36.3%)은 지난해(49.5%)와 비교해 많이 줄었다. 결국 노정권 초기 자신을 ‘진보와 중도’라고 밝혔던 국민이 보수 진영으로 대거 넘어간 것이다.국민의 이념성향이 보수화됐다는 것은 10점 척도(0으로 갈수록 진보, 10으로 갈수록 보수. 5는 중도) 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초 정책을 통해 평가된 국민 의식 평균점은 4.5였다.
그러나 올해는 4.7로 약간 더 보수화됐음을 알 수 있다. 흥미 있는 결과는 이 수치가 지난해와 올해 모두 민주당(지난해 3.7, 올해 4.2)과 한나라당(지난해 5.3 올해 5.2) 평균이념 성향의 중앙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올해 민주당 일부 의원이 이탈해 좀더 진보적인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이념 스펙트럼은 이동하지 않았다.
이 역시 국민의 보수화와 관련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여론조사의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심지연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보수세력이 조직화되고 시위를 통해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민들이 이들의 말에 귀기울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바에 따르면 정치분야(외교안보정책·국가보안법·대북 지원)에서 국민의 보수화 색채가 가장 짙어졌다. 국민의 성향은 5.3으로 지난해 4.8보다 보수화로 기울었다.
지난해와 비교해 보수화의 정도가 가장 큰 항목은 외교안보정책분야였다. 지난해 국민 평균은 4.1이었으나, 올해는 4.8로 높아졌다. 응답자의 42.5%는 한·미 동맹의 새로운 관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미국 중심의 외교안보정책에서 탈피, 점차 다변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1.6%가 이 항목을 지지했다. 그러나 13.7%의 응답자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 유지에 더욱 협력해야 한다고 답해 지난해(6.6%)와 차이가 컸다. 한·미 동맹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셈이다.
국가보안법 개정 문제에서도 국민은 지난해보다 보수화됐다. 올해 평균은 5.7로 지난해 5.1보다 보수화됐다. 지난해 설문에 응답한 국민의 40.6%는 “인권침해와 법규남용의 소지를 줄이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올해는 응답자의 46%가 “현행대로 유지하되 인권침해의 소지가 없도록 신중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개정’에서 ‘신중’으로 보수화된 것이다.
대북 지원 문제에서도 국민의 견해가 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평균(5.1)보다 올해 평균(5.4)이 높아졌다. 좀더 보수적 의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인도적인 지원을 하되 지원 규모를 줄이자는 의견(지난해 41.1%에서 올해 44.2%)이 늘어났고, 대북 지원을 더욱 확대하자는 의견은 지난해(20.5%)보다 더 줄었다(올해 13.9%). 확대하지 말고 줄여나가자는 쪽이 늘어난 셈이다. 김민전 경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세 문항을 분석해보면 우리 국민은 미국도 싫어하고 북한도 싫어한다. 국제관계의 냉정한 현실 속에서 실사구시적인 대안을 찾는 과정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문에에서는 진보의 목소리가 조금 더 높았다. 이라크 파병문제에서는 응답자의 36%가 파병반대, 29.1%가 비전투병을 보내야 한다고 못박았다. 미국이 원하는 규모의 전투병을 보내야 한다는 의견엔 9.9%만이 찬성했다. 이번 여론조사를 분석하면서 이라크 파병 문제는 이념과 정서적 접근이 혼재된 사안이라 이념분석에서는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 국민의 이념 성향은 연령별·학력별·직업별·소득별 차이에 따라 상이한 태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지역별이나 지역 크기별로는 이념의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연령별로 보면 20대가 가장 진보적으로, 50대 이상이 가장 보수적으로 나타났다. 학력별로는 중학교 졸업자가 보수적, 대졸자가 진보적이었다. 직업별로는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국민이 가장 보수적이었고, 학생과 화이트 칼라가 진보적이었다. 상대적으로 블루칼라와 자영업자·무직자는 보수적이었다.
소득별로는 1백만원 이하만 보수적 성향을 띨 뿐 1백1만원 이상은 성향에 별 차이가 없었다. 이런 결과는 과거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한국사회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이념의 분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구처럼 저소득-블루칼라의 진보성, 고소득-중산층의 보수성의 등식이 성립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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