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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방부의 '리처드 롤리스'를 아십니까

Written by. 정준   입력 : 2007-03-27 오전 10: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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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롤리스(Richard Lawless)'- 그가 누구인가를 올바로 알고있는 사람은 국내에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미 국방부의 아태(亞太) 담당 차관보가 그의 직책이다. 지난 4년간 '미군기지 재배치' '해외 주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 '전시작전통제권' 등 주요 군사현안은 주로 그의 손에서 이뤄졌다. 이들 현안에 관한 한 미국측 책임자였던 것이다. 그가 이제 동아시아전략 전체를 수립하는 자리로 옮겨 앉았다.

 펜타곤 내에서 한국 등 아태(亞太)지역을 담당하는 부서는 전(全)세계 모든 지역을 통괄하는 국제안보국(ISA·International Security Affairs) 산하에 있었으며, '차관보'급이 수장(首長)이었다. 그러나 ISA 업무가 이라크전 등으로 크게 증가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담하는 '아태안보국(局)’(Asian·Pacific Security Affairs)이 따로 신설된데 이어 그가 미 국방부의 동(東)아시아 전략 전체를 관장하는 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리처드 롤리스'가 이제까지 '한국을 움직이는 미국의 손'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그런 그를 돕고있는 두 인물은 두 명의 부차관보이다. 한 사람은 CIA출신의 조지타운대 교수 '제임스·신'(한국계)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동아시아문제를 담당하는 '존·힐'이다. 한국 담당 부서 역시 최근 '데스크'에서 '과(課)급'으로 승격됐다.

 럼스펠드 장관 휘하에서 핵심측근으로 분류되어 동반퇴진 관측까지 불러일으켰던 그가 로버트 게이츠 신임 장관 체제에서 오히려 더 막강한 위상을 누리게 된 것은 그의 능력 때문일 것이다. 그는 럼스펠드 국방 체제에서 한국 문제에 관한 한, 사실상 장관을 대신해왔고 대통령에게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소문났었다.

 직급이나 업무범위로만 보면 한국의 국장(局長)급에 불과하지만, 한국 관련 업무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에게는 장관급인 백악관 보좌관 이상이다. 그런 위상을 확보하고있는 '롤리스'의 동아태(東亞太) 담당 차관보 승진은 주목할 일인데도 정작 그의 사생활과 업무스타일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는 고위직 인사 80여 명의 이력을 공개하고 있지만, 그의 개인 이력은 CIA출신이라서 베일에 가려져 있다. 1946년생. 외모로 보나 휴가를 이탈리아로 자주 간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혈통으로 추정될 뿐이다. 부인은 한국계(系)이다.

 알려진 바를 종합하면 이렇다.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1970년대 초반에 '평화봉사단(Peace Corp)'으로 전라도 지역에서 2년 가량 일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평화봉사단이 대학재학 이상의 학력을 요구한다는 점에 비추어 대졸(大卒)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국방부 차관보 인사발령을 앞두고 간략하게 소개된 기록에는 그가 1972년에 미 중앙정보국(CIA)에 '입사'한 것으로 되어있다. 평화봉사단 활동을 마치고 CIA에 들어갔는지, 아니면 평화봉사단원으로 가장한 CIA 요원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이후 1987년까지 16년간 CIA 요원으로 본부와 일본 한국 유럽 등지에서 근무했다.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주한미국대사관에서의 근무기간은 '외교관 신분'이었다. CIA 한국지부장은 아니었지만, 수 백 차례 서울을 드나들며 활동하면서 명실상부한 한국통(通)으로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미국인'이라는 별칭이 따른다. 2005년 워싱턴의 한국식 주점에서 열린 한미 군사회의의 뒤풀이자리에서도 소주와 맥주를 뒤섞은 폭탄주로 잇따라 '원샷'을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취흥을 돋아 주위를 놀라게했다고 들린다.

 그의 18번은 '눈물 젖은 두만강'. 그러나 1970∼80년대 유행 한국 가요들도 그리 서툴지 않은 발음으로 불러 제친다는 것. '한국말에 대한 이해 정도'도 '평범한 한국 관료가 영어를 하는 수준'이며, 업무차 한국에 오면 반드시 용산의 한 고깃집에서 삼겹살과 소주를 즐긴다는 것, 술자리를 좋아하는 등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사람 같은 정서를 과시하곤 한다는 것 등이 확인됐을 뿐이다.

 롤리스 부차관은 1987년부터 2002년 국방부 부차관에 임명될 때까지 민간인이던 시절 그가 설립한 'US Asia Group'에서 대만 한국 일본 등지에서 컨설팅 업무를 수행했으며, 'US Asia Group' 한국사무소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그가 2년 전 한국 매스컴에 잠시 각인된 적이 있었다. 2005년 2월말 롤리스 부차관이 용산기지 이전협상·주한미군 감축 등의 사안과 관련하여 대립각을 세워온 이종석 NSC 차장의 경질을 정동영 장관(NSC의장)에게 요구했기 때문. "NSC 이 차장이 한미간 합의한 내용에 대해 자꾸 입장을 번복하고 있다"며 정 장관에게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항의했었고, '미군기지의 평택(平澤) 이전 지연(遲延)'에 대해서도 그는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린 전력(前歷)이 있다.

 지난 4년간 그의 손을 거쳐 수립된 '미국의 군사전략'을 되돌아보자. 먼저 미군기지 재배치 문제-.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지난 2월4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이렇게 연설했었다. "미군은 20세기에 전쟁이 일어났던 곳이 아니라, 잠재적 위협에 대비할 수 있는 곳에 주둔해야 한다" 그것이 '미군기지 재배치'의 핵심이다.

 전세계 26개국에 배치되어있는 700여개의 해외 미군기지 재배치 구상은 '21세기형 위협'인 테러 및 대량파괴무기 확산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혁신 개념에서 출발했다. 미국의 이런 구상은 2차대전 이후 냉전시대에 미국 본토와 유럽 동북아 중동 등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곳에 똬리를 틀고 눌러앉는 '고착형'에서 신속성과 기동성을 갖춘 '유동형'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9·11 사태와 이라크 전쟁 등을 거치면서 그런 변화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됐을 것이다.

 '해외주둔미군 재배치계획'(GPR) 역시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에 신속하게 파견해 전쟁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그 뜻이 있다. 언제라도 신속하게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유연성을 염두에 둔 개념이다. 미국이 추진하는 GPR의 완성은 해외주둔 미군의 이런 유연성을 전제로 한다.

 이 전략은 언제라도 신속하게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유연성이 생명이다. 이 유연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미국이 추진하는 'GPR'은 완성될 수 없는 실로 거대한 사업이다. 이러한 재편이 주한미군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되어 미 문제가 한때 여론의 물살을 탔던 것이다. 주일미군의 경우 미국은 미일(美日)상호방위조약에 규정된 극동 지역의 범위를 넘어 중동까지 활동 범위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작권 전환'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로 인해 한미연합사 해체→ 휴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주한미군 철수 명분 부여→ 작전계획 5027계획의 한국군 독자 수립계획 등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유사시 미군 증원'이 약조되어있는 키로 되어있는 작계 5027의 향방이 문제가 된다. '전작권 전환'은 미국이 한반도에 육해공군 해병대 69만 명, 함정 160여척, 항공기 2천여 대를 투입하도록 되어있는 '전시증원전력'계획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국방부는 "주한미군 주둔과 증원전력 지원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근거를 두고 있어 전작권 환수와 무관하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미국의 전시증원을 강제할 연결고리가 사실상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한국군 주도의 작전을 펼치게 될 경우 미국이 신속하게 증원전력을 파견하는 문제에 대해 세심한 한미간의 추가합의가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한미연합사 해체되는 '2012년 4월 한미연합사 해체 이후에도의 미군 증원 전력 파견'이 차질없이 이행될 수 있도록 미국의 한반도 안보전략 수립의 실질적 핵심인 '리처드 롤리스'와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추가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밤늦도록 이어지는 '술자리에서의 여흥' 솜씨와는 달리, 한낮의 협상 자리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냉정함을 보이는 것으로 소문난 그다. '한국을 움직이는 미국의 실질적인 손'은 이제까지 무대 뒤에 숨어있었던 '리처드 롤리스'였던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나 로버트 게이츠 신임 미 국방부장관만이 '미국의 얼굴'일 수는 없다. (konas)

 정   준 (코나스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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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생초    수정

    친한파인줄 알았더니 업무에 들어서는 냉정하기 짝이 없다?? 그것이 바로 '프로' 근성인가?? 한국 관리들이 배울 점이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3-27 오후 9: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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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소리    수정

    '리처드 롤리스'선생- 용산 고깃집에서 쇠주 한잔 기울려봅시다. 한국여자 아내분은 잘 계시우?</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3-27 오후 5: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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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국보수    수정

    2012년 4월 한미연합사 해체 이후에도 미국이 유사시 증원전력 파견을 보장할 수 있을지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리처드 롤리스'와 이야기 좀 잘 풀어봅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3-27 오후 4: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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