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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첫째 금요일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Written by. 정용석   입력 : 2007-04-05 오후 6: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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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토예비군 창설식/1968년 4월 1일, 서울 동대문운동장

 4월 첫째 금요일(6일)이 무슨 날인지 아는 국민은 흔치 않다. 이 날은 '향토예비군의 날'이다. 정부가 1973년 3월 30일 대통령령으로 매년 4월 첫 토요일을 '향토예비군의 날'로 공포한데 근거한다. 향토예비군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의식과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이다. 향토예비군은 그 보다 5년 전인 1968년 4월 1일 창설되어 운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 8월 29일 공포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령에 의해 금년부터 4월 첫째 금요일을 향토예비군의 날로 정하여 시행키로 한 것이다.

 대체로 4월 하면 19세기 영국 시인 퍼시 셸리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린다. '4월은 잔인한 달' 그 대목이다. 그리고 부처님이 탄생한 4월 초파일, 4·19혁명, 심순애 작곡과 박목월 작시의 '4월의 노래' 등을 상기한다.

 하지만 국민들이 대부분 잊어버리고 지내는 4월 '향토예비군의 날'은 4월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뜻있는 날이다. 퍼시의 시, 부처님의 탄생, 4·19혁명, 4월의 노래 등이 과거 있었던 역사의 단편을 되새기는 것인데 반해, '향토예비군의 날'은 미래의 나와 조국을 위해 대비하는 중요 계기라는데서 그렇다.

 향토예비군은 내 가정과 일터의 후방을 비상시에 적으로부터 효과적으로 지키기 위해 조직된 후방 예비군력이다. 향토예비군의 창설은 막연히 다른 선진 국가들이 예비군을 두고 있으므로 우리도 해야 한다는 모방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향토예비군은 우리 국민들이 북한 공산군의 후방 침투에 의해 참혹하게 당하면서 통절히 느껴온 필수불가결의 자위수단이다. 1968년 10월 ∼ 12월 북한 무장게릴라의 끔찍한 울진·삼척 침투 살인만행을 그 비극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당시 북한은 특수 훈련을 받은 120명의 게릴러들을 강원도의 삼척과 울진 지역으로 침투시켰다. 북한은 게릴라들을 잠입시켜 주민들을 포섭하고 군사정보망을 만들며 정보가치가 있는 대상자를 끌고 월북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그러나 삼척·울진 게릴라들은 그 해 4월 창설된 향토예비군의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제압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치 못한 채 만행만을 저질렀다. 그들 중 107명은 사살되었고 5명은 생포되었으며 2명은 자수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죄 없는 양민 23명을 학살하며 공산주의자들의 잔혹한 반민족적 죄악상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 때 처절하게 죽어간 23명 중에는 이승복 어린이도 있었다. 북한 게릴라들은 이승복 어린이집으로 12월 9일 저녁 들이닥쳤다. 그들은 아홉 살밖에 안된 어린 이승복에게 "북한이 좋으냐, 남한이 좋으냐"고 물었다. 거기에 이승복이 거침없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북한 게릴러들은 이승복의 입을 벌린 후 대검으로 입을 찢어 죽였다. 이어 그들은 이승복의 7세 남동생과 4세 여동생을 벽에 던져 살해했고 어머니는 대검으로 수 차례 찔러 숨지게 하였다. 오늘 날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우리 끼리 함께" "민족공조"하자고 흰 잇빨을 내밀며 웃음짖는 모습이 얼마나 징그러운가를 새삼 깨우치게 한다.

 돌이켜보건데 울진·삼척의 북한 게릴라 침투 때 예비군이 조직돼 있지 않았고 우리 양민들이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더라면, 북한은 계속해서 특수 게릴라들을 후방으로 침투시켜 교란해 왔으리라 짐작키 어렵지 않다. 그러나 향토예비군의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대응으로 북한 공산 침투자들은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야만행위로 그쳤다.

 그런 맥락에서 향토예비군은 그 후 북한의 후방 게릴라 침투를 다시는 넘보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향토예비군은 제2, 제3의 이승복 어린이 희생을 예방할 수 있었고 내 고향의 평화와 안녕을 지키기 위한 민간 불침번으로 성장했다.

 특히 대한민국과 같은 자유체제 사회일수록 후방의 방위구조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개방적이며 자유분방한 생활습성으로 북한 공산 게릴라들의 침투와 만행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내가 사는 내고장을 방어하기 위한 향토예비군의 역할은 더욱 절실해진다.

 향토예비군은 후방을 든든히 지켜줌으로써 전방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는 후배 현역들에게 안도감을 준다는데서 입체적 국가방위에 크게 기여한다. 뿐만 아니라 향토예비군은 전시엔 현역으로 출동해 그동안 갈고 닥은 군경력으로 적을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다. 거기에 향토예비군은 내 일터를 내가 지킨다는데서 더욱 더 자부심을 금할 수 없다.

 향토예비군은 저 같은 입체적 역할과 효과로 인해 많은 국가들에서 매우 중시되어 있다. 이스라엘과 스위스 같은 국가들에서는 향토예비군의 전력이 정규군 보다 크다. 향토예비군의 존재적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선진 국가들에서 실증해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한국과 같이 북한의 6·25 기습남침을 당했고 울진·삼척 공비의 만행을 겪어야 했던 나라로서는 향토예비군의 역할이 아무리 강조돼도 지나치지 않다. 핵폭탄까지 만들어 남한 적화를 노리고 있는 북한은 남한의 향토예비군 보다 몇배 강력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는데서도 그렇다.

 북한의 예비전력은 14세로부터 60세까지 편성되어 있다. 전 인구의 30%로서 770만명에 달한다. 17∼45세의 남자와 17∼30세의 여자로 구성된 '교도대'는 정규 보병사단에 준하는 편제와 무장을 한다. 교도대는 정규군과 함께 합동훈련하고 연간 훈련기간은 40일에 달한다.

 '노농적위대'는 개인화기가 지급되며 연간 30일의 훈련을 받는다. '붉은청년근위대'는 14∼16세의 고등중학교 4∼6학년들을 대상으로 하며 매주 토요일 4시간씩 훈련받고 여름방학 기간엔 7일간 입영한다.

 그러나 우리의 향토예비군 입영훈련은 제대 후 4년 동안은 연간 3일 실시하고 그 후 2년 간은 연 20시간의 훈련을 받는데 그친다. 북한에 비하면 훈련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향토예비군은 내 고장을 내가 지킨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며 국가 안녕에 크게 기여한다.

 4월 첫째 금요일(6일)이 '향토예비군의 날'임을 상기하면서 예비군에 대한 끝없는 신뢰를 보낸다. 그런 신뢰 속에서 마음놓고 대한민국은 세계 11대 경제 대국으로 클 수 있었다. 경제대국 성장동력 뒤에는 묵묵히 산업현장을 지켜주던 향토예비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향토예비군의 불침번 속에서 자유와 풍요가 넘치는 복된 나라로 계속 성장할 것임을 확신한다.(konas)

 정용석(단국대 명예교수·재향군인회 안보정책 자문위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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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비역상병    수정

    좌파정권이 북한과 공존하고 현실이 웃긴다.ㅋㅋ</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4-06 오후 5:26:07
    찬성0반대0
  • 조피디    수정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4-06 오후 1:03:49
    찬성0반대0
  • 안보불안    수정

    지금은 예비군 창설당시 보다 안보위협이 더 가중되고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비군 줄이고, 군 병력 감축과 함께 복무기간도 단축하려 한다. 여기에다 자주국방을 외치며 주한미군 몰아내고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기로 했다. 적은 군사력을 키우는데 우리는 감축해서 되겠는가???</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

    2007-04-06 오전 10: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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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kwj3697    수정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자"의 슬로건으로 창설된 예비군 39년이 지나간다. 국가재건의 일선에서, 국가안보의 2선에서 오늘의 이나라가 있기까지의 무수한 산고를 격어 왔으며. 공비토벌작전 등을 통해 북의 간담을 서널하게 만들었던 예비군, 예비군의 날39주년을 진김으로 축하합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

    2007-04-06 오전 9: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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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카혀~    수정

    한 손엔 총칼들고, 한 손엔 망치들고... 건설현장에서 농촌에서 직장에서 모두가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했네! 그래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 아닌가! 예비군 창설 39주년을 축하합니다. ^0^*</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4-06 오전 8: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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