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간의 강온(强穩) 양면전략 이해하기
최근 미국과 북한 사이에 오가고 있는 북핵 문제 논의와 수교(修交)를 향한 일련의 외교적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급속한 진전'에 놀랍다 못해 '참으로 현란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보수성향의 학자들은 이번 2·13 합의를 두고 미국이 결국 또 한 차례 북한에 속았다고 주장하면서 부시를 '미숙한 텍사스 소년'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북핵문제 해결을 빌미로 미국에 수교를 간청하고있는 북한의 '다급한 입장'에 주목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북한이 자발적으로 응해온 측면 역시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대미(對美) 수교를 통해 '체제안정' '경제교류' '테러지원국(불량국가) 명단 벗어나기'에 주력할 것임은 사전에 예측됐던 일이다. 하지만 이번 합의 도출과정에서 보인 일련의 유화적 제스처는 북한정권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시점에 도달해있음을 역설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미국이 자국에 가장 '위협적인 요인'으로 꼽는 대상은 '알카에다 테러리스트 그룹'이고 그 다음이 북한이며, 이어 이란 이라크 등의 순이었다. 민주당이 중간선거 승세를 바탕으로 요즈음 대북(對北) 외교에서 협상과 대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대북 강공(强攻)론은 당초 미국 공화당이 아닌 민주당의 몫이었다.
지난 94년 3월 한반도 핵 위기 때 미국이 영변(寧邊) 일대의 북핵시설 폭격을 검토했던 것도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였다. 클린턴의 자서전에는 이에 대한 상세한 경위가 설명되어 있다. 최근까지도 북한의 핵시설을 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클린턴 대통령(민주당) 시절의 국방장관이었던 윌리엄 페리(William Perry)였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민주당의 부시에 대한 공격은 주로 대(對)이라크 정책과 관련된 주문이었을 뿐, 대(對)북한정책이 그 대상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번 5차 6자 회담의 맥락을 살펴보면 북한이 처해있는 '절박한 상황'이 어느 정도인가를 미루어 알 수 있다. 전례 없었던 특이사례인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북한의 유화적 태도에 놀아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은 지난 3월 25일부터 1주일간 핵 항모 레이건호까지 동원하여 시행한 '전시증원훈련'(RSOI연습)에서 F-117과 F-22를 배치했었다. 그것은 '북한 당국자들이 이들 전투기의 영공침투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북핵 시설과 북한 지휘부까지도 격멸'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미국은 놀랍게도 이처럼 북한에 대해 '외교적 유연성'과 '군사력 압박'을 병행하고 있다.
미국은 정치적으로 BDA 자금 2500만 불을 동결 해제했지만, 북한측은 중국은행의 비협조로 그들의 의도가 차질을 빚자 '당황할 수밖에 없는 촌극(寸劇)을 드러냈다. 북한이 외화자금에 얼마나 목말라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은 이미 5년 전 미국이 PSI(WMD 非확산구상)를 통해 북한의 중요한 자금줄을 차단하면서부터 극심한 외화난(難)을 겪어왔다.
이로 인해 2006∼2007 동안 혹독한 겨울 추위에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동사했고, 국경경비대마저 탈출하는 어이없는 사태들이 잇따랐다. 건강한 국가가 지니는 정상적인 기능이 모두 와해되는 모습이었다. 북한이 오죽하면 '2·13 공동합의' 도출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유연성을 보였을 것인가.
북한이 4월 15일 이후 진정으로 핵 시설 불능화(不能化) 조치를 단행할 것인지 약속 이행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하지만 부시가 최근까지도 북한 정권을 지속적으로 몰아붙여 코너로 몰고 가는 '강압외교(coercive diplomacy)' 정책을 펼쳐왔음을 부인하려 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북한에 '핵 폐기' 수용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있는 분명한 이유는 북한당국이 테러리즘과 연계되어있고, 국제테러리즘을 지원해왔으며, 앞으로도 핵폭탄을 테러리스트에게 건넬 의도가 있는 '불량정권'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냉전 종식 후로는 러시아의 수천 발의 핵을 더 이상 문제삼지 않고 있다. 인도에 대해서는 오히려 민간용 핵개발을 지원해주겠다고 할 정도로 입장을 바꾸었다. 테러와의 전쟁시대에 미국의 동맹국이 된 파키스탄의 핵무기에 대해서도 눈감아 주고 있다.
'테러리즘과의 대치'는 미국이 글로벌 패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과 관련하여 풀이할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중국은 미국 패권에 대한 미래의 주요 도전국이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과 적대관계를 해소한다는 것은 미국이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거점(據點)'을 하나 더 확보하는 것이 된다.
실제로도 평양에 미국 대사관이 들어설 경우 중국은 더 이상 북한에 대한 연고권(최근 중국은 한반도 북한이 전부 중국영토였다는 東北工程을 노골화해왔음)을 내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역시 한미동맹의 위세가 고조되어있을 때에는 침묵했었다.
이번에 미(美) 북(北)이 외견상 유화적 분위기를 유지하며 상호 근접하고있다고 해서 우려하는 것은 우매한 짓거리가 될 것이다. 이번 한미간의 FTA는 경제적으로도 한미관계를 기존의 '한미 안보동맹' 이상으로 결속시켜 새로운 시대로 거듭나는 기폭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konas)
정 준 (코나스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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