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롬멜 하우스'를 다녀와서

Written by. 김병관   입력 : 2007-04-20 오후 4:02:00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0

 향기 실은 봄바람에 꽃잎들이 눈송이처럼 날리는 아름다운 계절의 문턱에서 우리 한국체육대학교 WPTM 18기 원우 100여명의 첫 워크샵이 이루어졌다. 유명하기보다는 위대하다고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는 각 분야에서 성공한 CEO 출신 100여명의 원우들을 만난 것이 일생일대의 행운이라고 여겨져, 서로 간에 삶의 깊이를 가늠해보고 더욱 교분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에 열일 제쳐놓고 포항행 버스에 동승을 했다. 4대의 버스에 분승한 우리 일행은 각자 살아가는 얘기에 빠져 5시간여의 여행길이 짧게 느낄 정도였다.

 흔히 말하기를 고대문명 4천년과 디지털 정보화시대 1년의 변화가 동일하다고 할 정도로 정보의 홍수에 묻혀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만남을 통해 서로간의 유익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인지 금세 흉금을 터놓고 자신을 쉽게 드러내고 있었다. 올해 38세인 막내 철규군은 60대의 경자누님을 어머님이라고 부르면서 어깨를 주물러 주는 다정한 모습을 보면서 지위고하는 물론 나이까지 극복한 우리는 금세 몇 십년지기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본래 한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하는 인연은 300겁의 인연으로 형제의 연과 비슷하다는 설이 있다. 겁이라는 숫자는 인간이 만든 숫자 개념으로는 가늠하기 힘들고 하늘의 선녀가 100년에 한번씩 지상으로 하강하여 사방100리 바위산을 한바퀴 돌고 가는데 선녀의 치맛자락에 그 바위산이 다 닳아 없어지는 기간이라고 한다. 전세의 인연을 접어두더라도 100여명의 식구 중에서 금생에서 맺어진 연도 많았다.

 이렇게 우리는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만났기에 평생 동지로서 서로의 우정이 한순간에 돈독해지는 것은 당근이었다. 밤 11시가 넘어 목적지 포항에 도착했지만 여독도 잊은 채 단합행사를 하느라 밤이 새는 줄도 모르는 반도 더러 있었다.

 본 세미나의 하이라이트, 포항제철의 견학은 다음날 조반을 마치고 곧바로 이어졌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제철입국(製鐵立國)의 신화를 직접 접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제철소의 규모에 우선 놀랐지만 1400도의 열에 쇳물이 흘러나와 순식간에 철판으로 둔갑하는 공정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선조들의 피 값인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제철 공장을 지어 국부를 증대시키겠다는 비장한 각오는 가난을 극복해 보자는 영도자의 몫이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불같은 의지와 불굴의 투지로 이를 실천한 '철의 황제' 박태준 회장이 이루어낸 합작품임이 분명했다. 모래벌판에 세워진 첫 현장사무소가 2차대전 사막의 영웅 롬멜 장군의 야전사령부 같다고 하여 '롬멜 하우스'라고 불렀다. 고난과 역경의 시절을 언제나 기억하기 위해 전시관에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 작은 막사에서 철의 역군들은 세찬 모래바람을 맞으면서 피나는 노력으로 철강보국(鐵鋼報國)의 꿈을 키워 왔던 것이다.

 우리민족을 옥죄고 있던 가난의 굴레를 떨쳐 버리고 잘사는 나라를 이룩하겠다는 꿈에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이다. 우향우(右向右) 정신이라 하여 만약 이 과업이 실패로 끝난다면 민족사에 중대한 죄를 짓는 죄인이 되기에 우향우하여 영일만에 모두 빠져죽자고 결의했다는 안내원의 설명에 모두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네 번에 걸친 자금조달 실패를 비롯한 온갖 역경과 난관이 가로막았지만 단군이래 가장 큰 역사는 지도자의 영감과 우리 산업 전사들의 피와 땀 그리고 온 국민의 염원으로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각하! 불초(不肖) 박태준, 각하의 명을 받은 지 25년만에 포항제철 건설의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삼가 각하의 영전에 보고를 드립니다. 포항제철은 '빈곤타파(貧困打破)와 경제부흥(經濟復興)'을 위해서는 일관제철소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각하의 의지에 의해 탄생되었습니다. 그 포항제철이 바로 어제, 포항, 광양의 양대 제철소에 조강생산 2,100만톤 체제의 완공을 끝으로 4반세기에 걸친 대장정(大長征)을 마무리하였습니다."라는 박태준 회장이 박 대통령의 영전에 받치는 글 전문이 전시관에 보존되어 있었다.

 붓으로 정성스럽게 쓴 박태준 회장의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뜨거운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체로 눈물이 없는 필자가 박 대통령 때문에 또 한번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1997년 12월 국가부도사태인 IMF를 맞아 풍전등화 같은 나라의 운명이 어찌될까 안절부절 하던 시절에 제3공화국 초기 나라경제에 얽힌 애화 하나를 백영훈 박사를 통해 들었다.

 5·16직후 제3국의 보증이 되지 않아 경제건설에 필요한 차관을 빌려오지 못한 나머지 독일에다 광부와 간호사들을 보내놓고 그들의 임금을 담보로 눈물겨운 차관을 빌려온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그들은 우리 모두의 배고픈 아버지였고 누이들로서 이 땅의 이름 없는 구국전사들이 분명했다. 탄광 막장과 병원의 시체를 닦는 일이였지만 그나마의 일자리에 감동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여 전 독일 국민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는 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의 박정희 대통령을 국빈자격으로 초청까지 하였다고 한다.

 조국의 대통령이 왔다는 반가운 소식에 막장에서 일하던 광부들은 시커먼 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환영식장으로 몰려들었다. 연단에서 그들을 내려다본 박 대통령은 억장이 무너져서 "여러분 조국이 못살고 가난하여 이역만리 타국까지…"하고는 목이 메여 더 이상 연설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환영식장은 예기치 않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각하! 저희들만 남기고 가십니까?"라고 울부짖는 광부들을 뒤로한 채 아우토반이라는 고속도로에 올랐다. 차창을 바라보는 박 대통령의 눈에선 비 오듯 눈물이 쏟아지고, 옆자리에 앉은 70세의 독일 대통령은 아들 같은 박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기에 바빴다고 한다. "울지 마시고 그 대신 잘사는 나라를 만드시오" 뤼브게 대통령은 울먹이는 박 대통령을 위로하였다. 통역을 맡은 백영훈 박사도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통역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백 박사의 생생한 증언을 들으면서 필자 역시 서러워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IMF로 온 국민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이렇게 어려운 시절도 극복해 왔다는 이야기를 만나는 사람마다 하고 다녔는데 듣는 사람마다 한결같이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기에 바빴다. 나라가 위기를 맞자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있었다. 92년부터 경제위기를 경고하는 칼럼을 써 오다가 너무 허탈하여 붓을 꺾고 있던 중이였지만, 이 내용만은 국민들에게 꼭 알려야겠다는 의욕이 솟구쳐 "대통령의 눈물"이라는 칼럼을 발표했다. 반향은 크게 일어났다. 전화며, 팩스며 우리 회사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왜 이 글을 이제야 쓰느냐면서 필자를 나쁜 사람이라고 나무라는 사람부터 당신의 칼럼을 읽고 이 아침이 왜 이렇게 서러운지 모르겠다는 어느 독자의 푸념도 있었다. 갑자기 수많은 팬레터가 날아오고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3공의 주요인사들이 친히 격려를 해주시기까지 했다. 학창시절에는 3선 개헌을 강행하는 박 대통령을 증오하던 필자가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신자가 되어 있었다. 물 한방울도 아끼고자 변기에 벽돌을 넣었고, 유류파동이 나자 유일하게 즐겼던 수영장을 폐쇄하고 돈 안드는 배드민턴을 치며 운동량을 메웠던 지도자의 솔선수범이 찌들었던 가난을 몰아내는 원동력이었다.

 "나는 임자를 알아.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떤 고통을 당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한 몸 희생할 수 있는 인물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어. 아무소리 말고 맡아!" 박태준 회장을 신임한 박 대통령은 모든 외압을 방지하기 위해 박태준 회장에게 신종 마패까지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지난 4반세기 동안 연 인원 4천만 명이 땀 흘려 이룩한 포항제철은 이제 세계의 철강업계와 언론으로부터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철강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천하지는 않고 말로만 나라를 위하는 요즘의 정치꾼들이 한번쯤 다녀갔으면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자원(資源)은 유한(有限), 창의(創意)는 무한(無限)"이라는 포스코의 슬로건을 가슴에 새기면서 우리일행은 다음 일정에 따라 경주로 향했다.(konas)

 김병관(서울시 재향군인회장)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