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 수교'-앞으로 어떻게 풀릴 것인가
"자- 저쪽에 김정일이 앉고, 여기에 당신과 내가 앉아서 함께 종전(終戰)서명을 하면 되지 않겠소?!"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우리가 함께 임기 중에 북핵 문제를 다 해결하자"면서 이 같이 허두(虛頭)를 꺼냈다고 한다. 작년 11월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중에 마련된 한·미 정상회담에서였다.
부시 대통령이 당시 내놓은 대북 제안은 1)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 2)북한체제 보장 3)미국의 대북 경제지원 참여 등 크게 세 가지이다.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도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명문 규정이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이번 제안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9.19 공동성명은 네오콘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합의된 것인 반면, 2.13 합의는 네오콘의 퇴장 이후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그 배경이 확연히 구분된다. 이번 한반도 '종전선언' 제의는 '부시대통령이 직접 언급'했다는 점 그리고 남북한과 미국의 정상- 이 3자가 참가한 가운데 '종전 서명식'을 갖자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거론된 점은 전례 없었던 일이다.
부시 대통령의 하노이 발언은 결국 '한반도 종전선언'과 '미(美)·북(北)수교'- 그의 집권2기 잔여임기 중에 이 두 가지 '정치적 수확'을 거두기로 작심하고 예정된 수순(手順)을 밟기 위한 '미국의 대북(對北)정책 전환 시그널'일 수도 있다. 달리 말해 이 문제들이 그의 임기(2008년 말)안에 의외로 쉽게 풀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핵문제'의 해결은 오히려 부차적 목표로 물러나 있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2·13 합의의 이행과정에 가로놓여있는 '몇 가지 걸림돌이 어떻게 풀릴 것인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다. 美·北 양측의 이해가 쉽게 조정되지 않거나, 북한이 마냥 버틸 경우 시간이 한없이 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북간 걸림돌은 대체로 7가지로 집약된다. 모두가 낙관만 할 수 없는 현안들이다.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이들 7가지 현안 중 핵심 3가지는 1)BDA문제 2)초기조치인 핵프로그램 목록협의과정과 불능화단계 신고과정에서 고농축우라늄(HEU)·이미 추출한 플루토늄·북한이 기(旣)생산한 핵무기문제 3)북한을 '테러지원국가 리스트에서 해제할 것인가' 여부와 일본인 납치문제일 것이다.
나머지 4가지는 <초기조치인 핵폐쇄단계 이후 불능화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노정될 관련국들간의 상호합의> <북한이 '핵 불능화' 보상조건으로 들고나설 '경수로 제공' 요구> <미국의 네오콘 세력이 재결집하여 북핵 프로그램의 불투명성·북한 인권문제·위폐(僞幣)문제·일본인 납치문제 등을 문제삼을 경우>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에 대한 북한의 지속적인 요구> 등을 들 수 있다.
첫째 BDA건은 결국 미국이 지난 10일 아무 조건 없이 동결자금을 해제하면서 북한의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다. 북한은 그 돈 돌려 받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돈 돌려받기'와 '시간 벌기'- 두 가지를 목적으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2500만 달러 동결'을 구실 삼아 지난 1년 여 동안 6자회담을 공전시키며 미사일실험과 핵실험까지 단행한 그들이다.
둘째 고농축우라늄(HEU)·플루토늄 추출분 등의 해결 전망도 그리 어둡지 않다. HEU문제는 북한이 20여개의 원심분리기(파키스탄에서 수입)와 알미늄관(러시아에서 수입)에 대한 용도를 밝히는 것으로 일단락이 날 수도 있다. 50kg 정도로 추정되는 플루토늄 역시 미국은 핵폐기가 이뤄질 경우 크게 문제삼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최종 관심사는 '보유' 그 자체가 아닌, '테러 지원용 핵(核)의 이동(판매)'이기 때문이다.
셋째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는 아직 향방이 묘연하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것은 1988년부터였다. 작년 5월에도 '국가별 테러리즘 보고서'에서 북한을 이란 쿠바 시리아 리비아 수단 등과 함께 테러지원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테러지원국 해제는 미 행정부의 재량사항이다. 2007년에 발표할 테러지원국 평가는 행정적으로는 이미 끝났다. 2·13합의 2조에는 "60일 이내에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으로부터 해제하기 위한 과정을 개시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해제가 아니라, '해제 절차에 착수'키로 했다. 그 결과(명단발표)가 이달(4월)말이나 5월초에 발표된다.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려면 미행정부가 45일 이전에 의회에 보고해야 하는 실무적인 절차로 인해 2007년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이 빠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정치적 배려'를 작심한다면 테러지원국 발표를 늦추거나, 추후 별도의 절차를 밟을 수 있는 여지는 있다.
초기조치인 핵폐쇄단계 이후 불능화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노정될 관련국들의 '상충되는 이해(利害) 조정'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북핵 해결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상호합의를 볼 것이다.
정작 이 과정에서 해결되어야 할 더 큰 현안은 '불능화' 개념에 대한 상호합의가 우선해야 한다는 점이다. '불능화'와 '핵 폐기'의 차이를 명백히 해야하고, '불능화'와 관련하여 '핵시설의 범위·대상·방법' 등에 관해 이견(異見)이 조정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미·북간 합의가 필수적 선결조건이다. 또한 이 단계에서 북한에의 '95만t 중유 지원'에 대해서도 5개국이 '자국(自國) 몫 줄이기'를 위해 몸을 사릴 것이다.
북한은 북핵 불능화 단계로 가는 과정에서 경수로 제공을 요구해올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관련 5개국의 격렬한 논쟁이 예상되는 최대의 복병(伏兵)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은 '핵폐기 이후'라고 못박고 있으나, 북한은 경수로 지원을 핵 불능화와 핵 폐기 선행조건으로 내세울 것이 자명하다.
북한의 핵 폐기와 불능화를 일정에 올려놓고도 미국 등 관련국들은 이 단계에서 취해야할 상응조치에 대해서는 2·13합의에서 합의를 보지 못한 상태이다. 따라서 충분한 상응조치가 뒤따르지 않을 경우 북한은 그 이행에 한없이 늑장을 부릴 우려가 크다.
한편 현재 숨을 죽이고있는 미국의 네오콘 세력이 재(再)결집하여 2.13 합의 이행 저지에 나설 수도 있다. '북한 핵프로그램 신고의 미흡' '납치문제' '북한 인권문제' '위폐문제' 등을 문제삼아 북미관계 진전과정에서 목청을 높이거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다만 강경파의 구심점이 '체니를 중심으로 계속 유지될 것인가'가 변수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지속적으로 '중단'을 요구해온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한 대응이다. 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미국이 북한의 요구에 부응하여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한 적은 있었으나, RSOI-FE(한미연합상륙훈련)의 경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따른 보강조치 차원에서 '유사시에 대비하여' 지속한다는 것이 한미양국의 입장이다. RSOI-FE가 중단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4월말이나 5월초에 6자 외무장관회담이 열리면 앞서 기술한 적지 않은 현안(懸案)들에 대한 조정이 시도될 것이다. 초기단계·불능화단계·핵 폐기단계에서 예상되는 걸림돌이 될 쟁점 제거와 관련국들의 상호조치에 대한 합의가 고위급 협의과정(6자 외무장관회담)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6자 외무장관회담이 열릴 경우 미·북 외무장관은 별도의 회담을 가질 것이고, 북한은 그 자리에서 라이스 미 국무를 방북 초청할 수도 있다. 그의 방북은 2·13 합의 이후 거론되어온 '南·北·美 3자 정상회담' 또는 '南·北·美·中 4자 정상회담' 등 다양한 형태의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릴 수 있는 기초가 될 것이다. 세인들이 '라이스의 방북(訪北) 여부'를 주목하고있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9.19 공동성명에 언급되어있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南·北·美·中 4자 평화포럼'이 5월경에 열린다면 부시의 하노이에서의 종전(終戰)선언 발언이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로 이어지는 배턴·터치가 이뤄지는 셈이다. '南·北·美 종전선언'으로 급진전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럴 경우 미(美)·북(北)관계는 수교(修交) 논의로 이어지는 등 정상화의 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 길고 길었던 한반도의 냉전체제가 운명을 다하게되는 것은 크게 반길 일이라지만, 문제는 '평화협정 체결'이 아닌 '평화체제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한반도에서 냉전체제가 철저한 검증을 거쳐 해체됨으로써 '평화와 공존(共存)'의 완벽한 보장이 이뤄진다면 이를 마다할 국민이 있을 리 없다. 다만 이런 흐름이 북한 주도의 '남조선 해방(=적화통일)로 이어지는 어떠한 단초(端初)도 남겨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자면 이 같은 일련의 프로세스가 좌파(左派)정권이 아닌, 정통보수정권의 치밀한 계획 아래 이뤄져야하며, '북한 핵의 완벽한 폐기'와 '주한미군의 상주(常駐)'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절대조건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konas)
정 준 (코나스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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