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동맹 발전을 위한 對美 군사외교
지난 몇 해 동안, 특히 참여정부 시기에 우리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공평하고 평등해야겠다는 요구를 어쩌면 강박관념처럼 제기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미국에 일방적으로 종속되었던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내용 면에서 타당하고 정당할수록 그동안 우리가 준비를 소홀했거나 여건이 충분치 못했다는 반증이 된다. 그러나 준비 소홀과 여건 부족을 놓고 굳이 따지자면 적어도 안보면에서는 준비부족을 탓하기에 안타까운 면이 너무 많다.
그동안 우리 군은 정부 어느 부처와 비교하더라도 강한 규율이 유지되는 가운데 소요에 못 미치는 예산이지만 엄격히 집행하면서 오늘의 강력한 군사력을 건설해왔다. 그러나 선군정치를 앞세워 급기야 핵무기 개발에까지 이른 북한의 군사력과 대비하면 평시 압도적 억지력 확보와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고, 그것이 바로 한미동맹이 유지되어온 현실적 필요이자 논리적 근거였다. 더구나 군사력 사용을 손쉽게 결정하며 위기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쪽은 민주화 사회인 우리보다는 북한이다.
군사외교 추진에서 이러한 여건은 중요한 변수이자 고려사항이다. 특히 민간차원에서 우리의 부족한 여건을 적절히 고려하지 않고 미국과의 공평성을 요구할 때 군사외교의 어려움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국방개혁 2020을 통해 병력을 50만으로 과감하게 줄이려 하면서 주한미군이 감축되는 것은 반대하고, 전시작전통제권은 달라면서 위기 시에는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라는 모습을 미국 국민은 이해하기 어려워하고 있다. 우리 군에 대한 모든 권한을 넘기겠노라고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시작한 전시작전통제권 행사의 형태가 오늘날처럼 변화되어 왔다면 변화를 요구함에서도 응당 그간의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주장이 제기되어야 한다. 역사상 어느 나라도 전시작전통제권을 남의 손에 넘긴 사례는 없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역사상 어느 나라도 당하지 못한 절박한 위기상황을 그때 우리가 당했기 때문일 뿐이다.
여건과 군사외교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반환되는 미군기지의 오염치유 문제이다. 양측이 견해 차이를 보이는 근본 원인이 한미 간 협상과정에서 오염치유의 기준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을 미리 정해두지 못한 까닭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을 대미 군사외교의 전략 부재, 준비 부족 혹은 협상력 부족으로 탓할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고려되어야 한다. 전국의 수많은 주한미군기지가 반환되는 오늘날과 같은 상황을 일찍이 예상이나 할 수 있었더라면 ‘미측은 우리 환경법령 및 기준을 존중한다’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의의사록 제3조 2항과 같은 애매한 규정이 만들어졌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즉 주한미군의 활동을 지원하려는 분위기 속에 만들어진 1966년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의 내용을 당시와는 전혀 다른 상황과 맥락이 형성된 현재 시점에 적용하고 해석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반환기지의 오염치유와 관련해 한국의 국내 환경법령에 따를 것을 협상테이블에서 미국 측에 요구하기 전에 만일 우리 군에 대해 그런 기준을 적용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난감한 모습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2004년 현재 3,755세대에 인구가 9,191명인 울릉군에는 332명의 공무원이 지역개발과 환경보전, 사회복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중 30명은 환경보전과 소속으로 환경관리, 환경미화, 환경시설, 상하수도, 삼림 등 주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환경오염 문제는 환경미화담당 부서의 5명이 청소, 생활폐기물 수거 및 사업장폐기물 배출업소 지도관리, 재활용품 수집, 분뇨수거 및 정화, 오수처리, 축산폐수 처리 및 관리 등등으로 세분화된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아름다운 국제관광휴양섬 건설이라는 울릉도의 특수한 조건 때문에 환경보전과 소속 공무원의 수가 많을 수밖에 없는 점을 참작하더라도 각 일선 행정부서의 환경보전과는 최소한 10~20여 명의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최소한 2만 명이 넘는 사단급 부대에 환경전담 요원이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전무했던 것이 우리 군의 실상이다. 군무원을 보충해 업무를 맡기다 주요지역 부대부터 교육받은 부사관을 배치하기 시작한 것이 불과 얼마 전부터였다. 특히 행정부서와는 달리 법에 따른 환경업무 수행 경험이 없는 인원들이 우리 군의 환경업무를 맡다 보니 환경부와 건교부 등 부처와 관련된 300여 개의 환경 관련 법률을 포함해 1,000여 개에 달하는 각종 환경법령, 규칙에 대한 접근 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토양오염, 수질오염, 사격장의 중금속 오염 등의 업무를 전담해 처리해줄 미생물과 화학 관련 전문지식을 가진 담당자가 없다는 점도 현실적인 큰 애로가 아닐 수 없다.
1997년 이후 공병학교에서 환경특기병이 배출되어 일선에 배치되고 있다 하지만 환경 관련 소요에 비해 환경전문인력이 절대 부족한 것은 우리 군의 엄연한 현실이다. 일반 행정부서 및 지자체의 환경사업소와 비교해보면 열악한 여건은 너무나 명백히 두드러진다. 국민소득 증대에 따라 환경문제는 국민의 요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분야로 그만큼 비판적 감시도 엄격해지고 있다. 사격훈련장의 소음과 토양오염 등 군민 간 접촉이 가장 넓은 분야가 바로 환경 부문인데도 우리 군은 이에 대한 여건 개선을 최근까지 크게 배려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환경보호라는 측면에서 군의 법개념과 인식이 크게 부족한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군의 얼굴’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환경문제에 그동안 우리는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환경분야 관련 제도를 마련하고 인력을 확충하는 일에 우리 군이 그동안 신경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점을 우리 군의 태만과 준비 부족이라고만 비판해야 할 것인가. 높아진 국민의 환경의식을 군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것이 무리한 일은 아닐까. 더 나아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계기로 미군이 한국 땅에 주둔하기 시작한 1953년 이후 지금까지 반세기 이상을 ‘군사목적’으로 사용하면서 어지럽힌 토지에 대해 현재 우리의 국내 환경법령과 기준에 따라 ‘원상복구’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과연 얼마만큼 타당한 일인가. 그리고 그런 법령과 기준 및 조건을 우리는 우리 군에 적용하고 있는가.
국제사회에서의 달라진 위상과 국가 자존심을 거론하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요구하는 우리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우리 스스로 최소한의 국제적 기준에 맞게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여건을 정비함으로써 미국과의 수혜적 동맹관계를 기정사실(fait accompli)로 여기던 과거의 개도국 맨텔리티를 발전적으로 극복하는 일이야말로 대미 군사외교를 진정 당당하게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그 외에도 한미가 포괄적, 역동적, 호혜적(comprehensive, dynamic and mutually beneficial) 동맹을 지향하기 위한 과정에서 짚어보고 수정해야 할 사항은 너무나 많다.
앞으로 우리는 한미동맹을 유지 발전시켜가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따라 동맹의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군사외교의 전략과 기법을 가다듬는데 이와 같은 기준을 보다 강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전략과 기법은 되도록 국제사회 보편의 규범과 부합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대미관계에서 입지를 좀 더 명확하게 설정하고 대미 군사외교의 일선에 선 국방부가 양쪽 정부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자주적’이란 개념으로 실무차원의 업무추진에 혼란을 가져와서는 곤란하다. 자주국방은 차라리 ‘자주외교’라는 말만큼이나 현실적이지 못하다. 세계가 협력국방의 시대이며 이라크전쟁을 치르는 미국이 국제공조를 위해 우방과의 군사외교에 기울이는 노력은 현저하다. 평택 기지이전을 둘러싸고 벌어진 사태의 본질은 ‘미군 물러가라’였지만, 정부는 이 본질은 외면한 채 마치 제3자인양 질서유지와 양측의 자제를 호소하는 태도로만 일관하였다. 시민사회운동의 무리한 요구가 때로 정책추진의 걸림돌이 될 때에는 적극적으로 그들의 이해를 구하고 법에 의해 정해진 범위 안에서 공권력도 적절히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기지이전 문제를 둘러싼 국력낭비 사례에서 비싸게 얻어진 교훈이다.(konas)
엄태암(KIDA 안보전략연구센터 미국연구실장)
**이 글은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발행하는 '국방정책연구' 2007년 봄호에 게재된 필자의 '한국의 대미 군사외교' 논문 중 한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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