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열차 '이벤트'와 짓밟힌 태극기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 철도가 6·25 전란 이후 반세기 만에 17일 시험 연결 운행되었다. 분단의 한(恨)과 설움을 잠시나마 씻어준 상징적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단 1회 시험 운행으로 끝난 열차 ‘이벤트’를 보면서, ‘평화’와 ‘통일’이라는 낭만적이고 비현실적 구호와 환상에 젖을 수만은 없는 우리의 냉엄한 현실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재론할 여지없이, 현재 북한 핵문제의 해결 기미는 전혀 안 보이고 북한의 군사위협은 상존하고 있다.
2·13 합의 조치 이행이 마냥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북핵’을 외면한 채 과속으로 달리는 남북 협력 가도(街道)에 6자회담과 속도를 맞춰달라는 미국 측의 경고성 언급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또 120만 정규군을 가진 북한의 주력 부대가 휴전선 북방에 전진 배치된 현실도 망각돼선 안 된다.
대북정책과 전략을 전담하는 이재정 통일부장관이 이번 철도연결에 즈음해 “국민이 얼마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지 반성할 일”이라고 했다니, 북(北)으로부터의 실재하는 위협을 외면하고 구호만으로 ‘평화’에 취하고자 하는 그의 왜곡·전도된 시국관에 통탄을 금할 수 없다.
더욱이 1회성 흥행을 위해 들어간 5천여억 원의 경비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철도 연결을 통해 대륙 진출기회를 바라보는 분석도 있으나, 이 역시 비현실적 환상에 불과하다.
노후화된 북한 철도시설의 복구를 위해 3조원 가량의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은 차치하고, 상식적으로 남북 간 첨예한 군사대치 상황에서 어떻게 철도가 남북을 관통하는 시나리오를 그릴 수 있는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정부가 철도 연결을 정치성 ‘평화’ 홍보로 몰아간다면 이는 용서하기 어려운 국민 기만이다.
이번 철도 연결 행사 속에 다시 한 번 상기된 문제는 대북정책과 관련된 국가 정통성과 정체성 이슈였다. 조선닷컴 동영상은 17일, 태극기를 흔들며 “북핵폐기 없는 남북 철도연결 반대”를 외치는 구국결사대와 라이트코리아 등 시민단체의 시위 모습을 방영했는데, 놀라운 것은 이들의 시위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우리 경찰관에 의해 무참히 짓밟혀지는 태극기의 모습이었다.
이 사건은 지난 2005년 ‘자주 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이란 행사 와중에서 태극기와 “대~한민국” 응원 구호를 전면 금지하려 한 노무현 정부의 태도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통일부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관행”이라는 변명을 했었고, 이해찬 당시 총리는 “인공기 소각 등 훼손 행위를 엄벌하겠다”고 발언, ‘HID특수임무청년동지회’의 총리사퇴 요구와 목숨을 건 올림픽대교 난간 고공시위를 유발한 바 있다.
이번 행사에서 열차가 군사분계선을 통과하자마자 이재정 장관은 준비된 한반도기(旗)를 흔들며 환호했다는 소식이다. 이 또한 대한민국 각료로서는 용인되기 어려운 행동이다. 노 정권 들어서서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를 사용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거니와, 이는 가뜩이나 ‘좌편향’ 지적을 받는 노 정권이 대한민국의 한반도 유일합법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 이념적 정체성을 위협하는 징표가 아닐 수 없다.
통일은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할 때만이 민족의 자유와 번영을 담보할 수 있고, 평화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제거함으로써만이 달성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차제에 재확인 했으면 한다. 또 국가적 정통성과 정체성을 외면한 평화와 통일의 추구는 ‘허구’이며, 북한의 ‘연방제 통일론’에 입각한 대남 적화전략에 이용될 뿐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겼으면 한다.
태극기가 짓밟힌 이날의 남북열차 이벤트 속에서, 북한 측 인사말 ‘반갑습니다’가 씌여진 한반도기는 보란 듯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konas)
홍관희(안보전략연구소장/재향군인회 안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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