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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北頂上會談과 북한의 打算

Written by. 이동복   입력 : 2007-05-22 오후 2: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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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부터 96년까지 3년간 경제가 파탄된 북한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경험한다. 이 기간 중 북한에서는 3백만 명 이상의 동포들이 굶어 죽었고 수십만 명이 두만강을 야반(夜半) 도강(渡江)하여 주로 만주 일원을 배회하는 탈북 난민이 되었다. 그 가운데 1만여 명이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한국에 도착하여 탈북동포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1997년2월에는 북한에서 국가보다 상위에 군림하는 통치기구인 ‘조선노동당’ 비서로 ‘주체사상’의 대부(代父)로 알려져 있던 황장엽(黃長燁) 씨가 가족마저 뒤에 남겨 둔 채 의거(義擧) 월남(越南)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고난의 행군’이 무르익어 가던 1994년에는 북한의 비밀 핵무기 개발로 인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그 해 6월18일 워싱턴에서는 빌 클린턴 대통령(당시) 주재로 백악관에서 대북 군사제재를 논의하기 위한 국가안보회의가 소집되고 있었다. 바로 이날 평양에서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대동강에 띄운 배 위에서 북한의 독재자 김일성과 이틀째 회담하고 있었다. 카터와 김일성 간의 회담의 결과로 북한 핵을 둘러싼 한반도의 긴장상태는 일단 진정되었다. 이때 카터-김일성 평양회담의 부산물의 하나가 ‘남북정상회담’이었다. 남의 김영삼 대통령과 북의 김일성 주석은 카터의 중재로 이해 7월25일부터 27일까지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남북정상회담’은 7월8일 김일성의 돌연한 사망으로 유산(流産)되고 말았다.
 
 탈북에 성공한 후 서울에 정착하여 탈북 동포들의 대부로 이들을 이끌고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독재정권 타도 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황장엽 씨가 이 무렵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평양에서 김일성을 비롯한 ‘조선노동당’ 수뇌(首腦)들 사이에 오갔던 흥미로운 대화 한 토막을 전해 주고 있다. 황 씨는 그때 김일성 등 북한 수뇌들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매우 흥분한 분위기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흥분한 이유는 우리의 상상(想像)을 빗나가는 것이었다. 황 씨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때 김일성과 그의 부하들은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 남한으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경제원조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들떠 있었다. “그 때 평양에서는 당 수뇌부가 모이기만 하면 ‘이번에 정상회담이 열리면 남조선으로부터 매년 최소한 15억 달러는 받아낼 수 있다”면서 “그렇게만 되면 우리는 지금의 경제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오가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연간 15억 달러는 7월8일 김일성의 사망으로 ‘남가일몽(南柯一夢)’(?)이 되었다. 그러나 이 무렵에 있었던 또 하나의 웃어넘길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것은 당시 중국 만주 길림성(吉林省) 연길(延吉) 소재 연변(延邊) 과학기술대학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조선노동당’ 대남사업 부서와 줄이 닿아서 북한을 드나들고 있던 김진경(金鎭慶) 씨가 전한 이야기다. 김 씨는 지금은 연변 과기대 말고도 김정일의 요청에 따라 주로 남한의 교회에서 이루어진 모금(募金)을 재원(財源)으로 평양에 ‘평양 과학기술대학’을 세우고 있는 도중이다. 그는 1994년7월8일 김일성이 사망하자 ‘친북(親北) 해외교포’ 조문객(弔問客)의 한 사람으로 평양으로 가서 김일성의 장례(葬禮)에 참가했었다. 아래의 이야기는 김일성 장례에 참가한 뒤 서울로 온 김 씨가 그때 평양에서 있었던 일을 몇몇 친지들에게 전한 것이다. 필자도 그로부터 이 이야기를 직접 들은 한 사람이다.
 
 김 씨에 의하면 김일성 장례기간 중의 어느 날 상주(喪主)인 김정일이 조문을 위해 평양에 온 해외교포들을 한꺼번에 접견했다. 김 씨가 전해 준 이 자리에서 있었던 이야기 가운데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한 토막을 이 기회에 되살려 보고 싶다. 그것은 이러한 이야기였다. 이 자리에는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조선노동당’ 대남 담당 비서 김용순(金容淳)이 배석하여 김정일을 거들고 있었다. 그런데, 환담 도중 김용순이 앞에 놓인 다탁(茶卓)을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다음과 같이 울분(鬱憤)을 토로하더라는 것이었다. “사실은 이번에 남쪽의 김영삼이 평양으로 오면 여기서 분에 넘치는 환영 행사로 그의 혼(魂)을 쑥 빼 놓고 그리고 8.15 때 위대한 수령님을 서울로 모시고 가서 나라의 통일을 단걸음에 완성시키겠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뜨셨기 때문에 모처럼의 황금의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고 안타까워하더라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김정일의 북한은 1994년 김용순이 그렇게 아쉬워하던 일을 2000년6월 김대중(金大中) 씨(당시 대통령)가 4억5천만 달러 + 알파라는 거액의 ‘검은 돈’을, 그것도 기업의 돈을 뜯어서 국가정보기구를 시켜서 김정일의 비밀계좌로 입금시키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북한에 건네주고 그의 평양방문과 이를 통한 김정일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을 때 결국 실행에 옮기는 데 성공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정일은 2000년6월13일 김대중 씨가 탑승한 전용기가 평양 순안 공항에 착륙했을 때 예고도 없이 항공기 타랍 아래서 직접 김대중 씨를 마중했을 뿐 아니라 공항으로부터 숙소인 백화원(百花園)에 이르는 연도(沿道)에 수십만의 북한 사람들을 동원함으로써 김대중 씨의 혼을 빼 놓았었다. 그때 연도의 발을 동동 구르는 북한 인파(人波)가 연호(連呼)한 것은 ‘김정일!’ ‘김정일!’이었다. 그러나 엄청난 인파에 혼이 빠진 김대중 씨의 수행원들은 이들이 ‘김대중!’ ‘김대중!’을 연호하는 것으로 착각했을 지경이었다.
 
 문제의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북쪽이 아니라 남쪽에서 엄청난 변화가 진행되었다. 김정일의 북한은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원래 보수우익 세력에 주류였던 남조선 사회에서 반공보수 세력은 변방으로 쫓겨나고 친북진보 세력이 주류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노무현(盧武鉉) 정부는 ‘6.15 남북공동선언’의 결과로 남쪽으로부터 연간 10만 명 이상이 방북을 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이 10만 명의 대부분은 ‘친북ㆍ반미ㆍ좌경’ 성향의 사람들이다. 그런가 하면 남쪽에서는 이른바 ‘386 세력’이 정부 안팎을 점거하고 있는 가운데 해방 전후의 기간 중 ‘남노당(남조선노동당)’을 하던 사람들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여 훈장을 추서하고 연금을 지급하는가 하면 제주도 ‘4.3사건’이 ‘민주화운동’으로 둔갑하고 있는 이변(異變)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이래서 남한사회의 전통적 주류세력인 보수ㆍ우익 세력에서는 “대한민국은 아직 적화(赤化) 통일에 이르지는 않았더라도 이미 적화는 되어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이제 남북 간에는 또 다시 ‘남북정상회담’이 화두(話頭)로 등장하고 있다. 남쪽의 노무현 정권과 이 ‘친북ㆍ좌파’ 정권을 어떻게 해서든지 재창출하겠다는 ‘범 여권’에서는 워낙 이반(離反)된 민심(民心)으로 정권 재창출의 모든 묘방(妙方)이 꽉 막히자 궁여일책(窮餘一策)으로 결사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북측에 구걸하고 있는 중이다. 북측의 응수(應酬)가 주목의 대상이다. 2000년의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으로부터는 ‘퍼주기’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막대한 액수의 대북 경제지원이 제공되었다. 한나라당의 통계 수치에 의하면 2006년까지 이미 제공된 대북 경제지원의 총규모는 70억 달러를 상회한다. 70억 달러라면 연평균 4억4천만 달러이고 이 액수는 1994년 북한의 수뇌부가 “남북정상회담만 열어주면 남쪽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고 김칫국부터 마셨던 연간 15억 달러에는 훨씬 못 미치는 액수다.
 
 그렇다면 김정일의 북한이 이번에 슬그머니 ‘남북정상회담’에 호응해서 오는 12월의 17대 대선에서 남한의 ‘범 여권’을 도와주고 그 대가로 북한이 원하는 연간 15억 달러와 그 동안 실제로 이루어진 연간 대북지원 4억4천만 달러 사이의 차액을 챙기려 하는 것은 아닐까. 이해찬(李海瓚)ㆍ정동영(鄭東泳)ㆍ김근태(金槿泰)ㆍ장영달(張永達)ㆍ김혁규(金爀珪)ㆍ손학규(孫鶴圭) 씨 등 지금 열심히 ‘남북정상회담’의 군불을 때고 있는 ‘범 여권’ 잠룡(潛龍)들의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은 어떤 것인지 궁금한 마음이 없지 않다. [끝]

 이동복 / 전 명지대 교수(http://www.dblee2000.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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