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한국전쟁의 교훈을 잊지 말자

Written by. 김성만   입력 : 2007-06-21 오전 8:46:10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11
 ▲ 1950년 6월28일 서울 중앙청 앞에 나타난 북한군 T-34전차.

 57년 전인 1950년부터 3년간 한반도는 6·25전쟁의 참화를 겪었다. 북한 김일성은 구소련과 중국의 사주 하에 6월 25일(일) 새벽 4시에 38도선 전 전선에 걸쳐서 선전포고 없이 대한민국을 기습 공격하여 전쟁을 도발했다. 동족상잔의 엄청난 피해, 1천 만 이산가족의 아픔, 전범(김일성 등) 미처리 등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6·25전쟁에 대한 교훈은 여러 각도에서 많이 도출되었다.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게 결론적인 교훈이지만, 이러한 감상적인 교훈은 군인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군인은 적의 침략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고, 항시 위기에 대비하면서 전쟁이 일어나면 국민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적을 격멸해야 한다.

 그러나 6·25전쟁에서 우리 군은 전쟁을 사전에 막아내지 못했고,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국민에게 주었다는 점에서 남다른 시각으로 6·25를 회고하고 교훈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6·25 제 57주년을 의미있게 맞는 일이라 생각된다.

 6·25전쟁은 한마디로 무능한 국군 지휘부의 안이한 상황판단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다. T-34 전차와 야크 전투기를 비롯해 현대식 장비로 무장한 잘 훈련된 북한군 앞에서 전혀 준비가 안 된 최악의 상황임에도 허풍만 떨다가 기습적으로 당한 전쟁이다.

 해방에서 건국으로 이어지는 극도의 혼란한 정국 속에서 남과 북에 각각 진주한 미`소군이 1948년 12월 말까지 한반도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우리 국민들은 곧 전쟁이 터질 것이라는 불안에 떨며 전쟁을 예감하고 있었다. 실제로 1948년 12월 소련군이 철수하고 난 직후인 1949년 1월부터 38선 여기저기에서 북한군의 도발로 남북 간에 크고 작은 무력충돌이 잦았다.

 북한군은 소련군이 철수하면서 넘겨준 공격용 군사장비(전차·야포·항공기)로 중무장하고 이후 신형장비를 추가로 지원받았다. 북한은 한반도적화를 위해 전쟁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국방장관은 대통령에게 명령만 내려주면 ‘아침은 서울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라고 호언장담했다. 준비 없는 허황된 ‘북진통일’만 입에 담았다. 설상가상 미국은 한국의 전쟁도발을 우려해서 변변한 방어무기조차 남기지 않고 1949년 6월 전원 철수해 버렸다.

 이후 북한군의 대규모 남침징후에 대한 일선부대의 적정보고(敵情報告)가 1950년 4월부터 수차례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 군 수뇌부는 이를 철저히 묵살 내지 무시했다. 이상하게도 육군은 6월 10일 육군본부 주요 참모, 전·후방 사단장과 연대장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교류와 인사이동을 단행했다. 그리고 6월 13~20일에는 전·후방부대의 부대이동 조치도 했다. 이렇게 되어 지휘관들이 적정(敵情)과 지형(地形)은커녕 부하들의 신상 파악조차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맞게 된 것이다.

 또 군은 북한의 위장 평화공세에 따라 6월 11일 발령했던 비상경계령을 특별한 이유 없이 6월 24일 00시를 기해 이를 전격 해제했다. 바로 전군의 1/3병력을 농번기 휴가로 귀가조치하면서 추가로 6.24(토)~25(일) 외출·외박을 전면적으로 실시했다. 부대에는 1/2병력만 남아 있었다.

 전쟁이 임박한 상황에서 스스로 적전(敵前) 무장해제를 단행한 것이다. 군 수뇌부에 오열(五列)이 침투해 있었음을 능히 의심케하는 대목이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차원에서 반드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통탄할 일이 또 있다. 6월 24일 저녁에 육군회관(지금도 국방부 안에 있음)에서 회관 신축을 축하하는 낙성식 댄스파티가 있었다. 군 수뇌부가 여기에 참석했고, 전·후방부대 지휘관까지도 초청되었다. 흥에 겨운 파티는 25일 새벽까지 계속되었고 2차까지 벌어진 술판으로 일부 지휘관들은 만취되고 말았다. 6월 25일 아침, 숙취상태에서 전쟁발발 보고를 받은 군수뇌부는 우왕좌왕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군은 결국 소수의 지휘관·간부와 병사들 밖에 없는 상황에서 적군의 기습을 받은 것이다. 충격과 혼란 속에 지휘체계가 무너지고 전투편제도 와해된 상태에서 후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서울을 3일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을 무릅쓰고 북한의 공격에 맨몸으로 맞섰던 ‘육탄 10용사’ 등 하급간부와 병사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군은 전열(戰列)을 정비하기도 전에 북한군의 파죽지세에 밀려 순식간에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했다. 다행스럽게도 전쟁 발발 당일 미국 대통령의 신속한 참전결정과 즉각적인 대규모 유엔군의 파병(21개국의 전투병·지원병) 덕분에 공산화직전에서 한국은 소생했다. 그러나 준비없이 당한 전쟁의 대가는 엄청난 희생이었다. 한국전쟁이 우리 군인에게 주는 교훈의 무게는 이처럼 무겁다.

 얼마전 필자는 문제의 육군회관에서 주한외국무관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정규 한국군이 한국전쟁에서 수도 서울을 3일 만에 적(敵)에게 내어준 원인을 무엇으로 분석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답변을 못한 채 당황한 적이 있었다. 3일만의 수도(서울) 포기는 인류 전쟁사에서 새로운 기록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은 6·25전쟁을 특이한 전쟁사례로 보고 자세히 토의한다고 하였다.

 필자가 지휘관으로 근무 시 군내 회식문화·음주문화 개선을 위해서 각별히 노력한 이유도 6·25전쟁의 교훈 때문이었다. 주요 지휘관과 참모는 항시(휴가기간 포함)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늘 강조해왔다. 이것이 바로 군인이 갖추어야 하는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과 ‘항재전장(恒在戰場)’의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57년 전 6·25전쟁 직전의 안보상황과 지금은 어떤가.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북한은 지금 핵무기, 탄도탄, 117만의 정규군과 770만 명의 예비군으로 무장하고 있다. 장병의 복무기간은 평균 10년이다. 세계로부터 군사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이젠 선군정치(先軍政治)다. 그러면서 노골적으로 ‘남한은 북한 선군정치의 은덕을 받고 있다'고 위협한다. '쌀·비료·생필품을 북으로 보내라’,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한반도는 핵전쟁의 화염에 휩싸일 것이다’는 등 조폭같은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

 북한에 비해 우리는 67만의 정규군과 304만 명의 예비군이 전부다. 핵과 탄도탄에 대한 대응책은 아예 없다. 한마디로 초라한 군사력이다. 그런데 국방부는 우리의 군사력이 북한에 비해 질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어디에 근거한 평가인지 밝히지 않는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상한 ‘국방개혁 2020'을 수립하여 정규군 50만, 예비군 150만 수준으로 감군을 실행하고 있다. 복무기간도 2년에서 6개월 추가로 단축 중이다. 여기에 2012년 4월에는 전시작전통제권을 단독행사하게 되고, 이에 따라서 한·미 연합사령부도 해체하게 된다. 서울 전방에서 수도권 방어의 핵심전력 역할을 해오던 미2사단도 후방(평택)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한미동맹이 예전같지 않은 어수선한 분위기여서 벌써부터 연합전투력은 하루같이 약화되고 있다. 국방부는 또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적(敵) 앞에 스스로 무장해제다.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지금은 한국전쟁 직전과 유사한 안보상황이다. 그래서 군 원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안보위기를 걱정하면서 노구를 이끌고 거리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제2의 한국전쟁을 예방해야 한다며 현충일(6.6)에 예비역들이 서울 시청광장 '6·6국민대회'에서 ‘북한 핵 완전폐기’를 소리 높여 외쳤다. 6·25 그 때와 같이 정세를 오판하고 있는 군 수뇌부에게 더 이상 국가의 안보를 맡기고 한가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군은 한국전쟁의 뼈아픈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한번으로 족하다. 그 때처럼 군무를 소홀히 하는 군인이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 앞에 고개 숙여 삼가 명복을 빈다. (konas)

 김성만(전 해군작전사령관, 예비역 해군중장)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망둥어    수정

    북한은 지금도 전쟁준비를 하고있을지도 모른다.57년전에도 북은 전쟁을 안할것처럼 하다가 갑자기 기습공겪을 해왔다. 제2의 6.25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를 철저히 해야할것이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6-27 오전 10:00:12
    찬성0반대0
  • 충혼탑(park4579)   

    호국보훈의 달 6월뿐만 아니라, 우리는 항시 6.25전쟁을 되새기면서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6-22 오전 10:26:53
    찬성0반대0
  • 상기하자, 6.25!    수정

    天下雖安 忘戰必危... 상기하자 6.25! 쳐부시자 공산당! 때려잡자 남한의 좌빨덜..!!!</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6-22 오전 9:56:33
    찬성0반대0
  • 망국전선?    수정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처럼, 6.25전쟁도 한국전쟁이라고 부른다. 6.25사변이라면 내란을 의미하는건데, 6.25는 김일성 단독 작품이 아니고 소련과 중군이 개입했고 실제 참전도 했던 국제전쟁이다. 용어가 문제가 아니라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개뿔도 모르면서 뭘 구국하겠다는건가?</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

    2007-06-22 오전 8:51:43
    찬성0반대0
  • 구국전선    수정

    한국전쟁이라고? 에라이 또라이같은 장군, 좌파들이 주장하는 논리를 간파하지도 못한 작자가 작전사령관하였다? 왜 한국전쟁인가? 6,25사변이지</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6-21 오후 5:28:04
    찬성0반대0
123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