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6·29서해교전의 진실①

韓哲鏞 前 5679부대장 備忘錄

Written by. 한철용   입력 : 2007-06-28 오후 4:49:03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10

 <코나스>는 6·29서해교전 5주기를 맞아 한철용(韓哲鏞, 예비역 육군소장) 전 5679부대장의 비망록을 소개한다. 韓 장군은 서해교전 당시 對北 통신감청부대인 5679부대장으로서 '북한 도발징후 軍 수뇌부 묵살 의혹'과 관련해 자신의 당시 심경을 이 비망록에 담았고, 그 해 월간조선 11월호에 전문을 공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韓 장군은 비망록에서 "(국방부가) 햇볕정책을 뒷받침한다고 북한군의 도발징후를 쉬쉬 하다가 엄청난 사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했으며, "정보본부는 교전 발생 닷새 뒤인 7월4일 서해교전 성격평가를 위한 韓·美 합동회의에서 『서해교전은 경비정의 우발적 단독범행』이라는 입장을 취해 『상부지시에 따른 계획적인 선제 기습공격』이라고 주장한 5679부대 및 미군 측과 갈등을 빚었다"는 등 서해교전 전후 정보보고와 관련한 내용들을 폭로했다.

 6·29서해교전 5주년을 맞는 현 시점에서 韓 장군의 비망록을 다시보는 이유는, 순수 군사정보가 군 수뇌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왜곡판단 될 때 제2의 서해교전은 언제든지 재발 할 수 있다는 시사점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2002년도 月刊朝鮮 11월호에 실린 韓 장군의 비망록 전문을 3회로 나누어 싣는다.<편집자>

 기무사로부터 「특수정보」 조사받다
 
 2002년 7월10일 저녁, 나는 공관에서 참모장, 기무부대장과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 지난 이틀 동안 서해 교전시 정보지원과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 하여 기무사령부에서 우리 부대(5679부대)를 중점 조사한 바 있었다. 그때 기무부대장이 우리 부대를 잘 홍보해 주었고, 기무사 요원들이 알기 쉽도록 설명을 잘 해주었기 때문에 그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저녁식사에 초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식사 중에도 「정보본부는 우리와 꼭 같은 정보를 가지고도 왜 정보 판단이 우리 부대와 180도 달랐는가」에 대해 성토했다. 기무사령부의 조사결과에 따라 정보본부는 곤욕을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북한에 대한 통신감청부대인 우리 부대가 기무사령부로부터 조사를 받는다는 자체가 언어도단이었다. 부대 창설 이래 근 50년이 지났지만 他기관으로부터 감청내용인 특수정보(SI:Special Intelligence)를 조사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런 부대에 대해서 서해교전 관련 특수정보(SI) 지원이 잘 되었는지 아니면 잘못되었는지를 조사한다는 것 자체가 무슨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부대는 있는 그대로 조사를 받았다. 결정적인 특이징후는 징후대로, 그리고 장관님의 지시사항도 그대로, 또 우리와 틀린 정보본부의 판단내용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설명했다. 때문에 우리 부대는 조사와 관련해서 불안하거나 신경을 쓸 일이 전혀 없었다. 나는 오히려 기무사령부의 조사로 장관과 정보본부장에게는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혹시 좋은 일 있는 것 아닙니까』
  
 공관 정원 잔디밭에서 즐겁게 식사를 하며 술도 두어 순배 돌아가고 분위기가 아주 좋게 무르익어 가고 있을 때 부관이 메모를 갖고 와서 읽어보았더니 「내일 오후 3시30분까지 정복 차림으로 장관님실로 출두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순간 나는 물론 참모장과 기무부대장도 출두이유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옆에서는 『혹시 좋은 일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나는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장관님께서 당신과 관련된 사항을 우리가 거론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하여 설명도 하고 이해시키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정복을 입고 출두하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출두 지시의 이유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궁금했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계속했다. 
  
 그리고 나서 10분쯤 지났을 때 부관이 팩스로 온 문서 한 장을 갖고 와서 보고하는 것이었다. 문서를 읽어 보니 여기 있는 우리 세 명 모두가 예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순간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당시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식사를 같이 즐겁게 하던 참모장과 기무부대장도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문서의 내용은 「서해교전과 관련해 경고장을 받으러 장관실로 출두하라」는 지시였다. 시간은 오전 11시 30분이고, 대상은 5679부대장인 나와 해군작전사령관 그리고 합참 정보본부장이었다. 
  
 순간 나는 우리 부대가 1999년 연평해전 때처럼 부대표창은 못 받을망정 경고장은 받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왜냐하면 이번 서해교전의 책임은 우리 부대에 있지 않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고 소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분명 장관의 「책임전가」이고 정보본부장의 「음해」라는 판단이 섰다. 또한 기무사령관이 우리 부대를 표적조사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순간 나는 경고라는 징계를 받느니 우리 부대의 명예를 위해서 차라리 전역하는 것이 낫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몇 분간 생각을 정리한 다음, 국방부 차관보인 오치운 장군에게 전화를 걸어 『그런 징계를 받느니 내일 전역하겠습니다. 내일 경고장 받으러 안 가겠습니다』라고 나의 결연한 뜻을 전하였다. 그래도 분이 삭지 않아 장관보좌관인 이봉원 준장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장관님께 李장군이 당장 직접 보고하시오. 내일 경고장 받으러 안 가겠으며 대신 내일부로 전역지원서를 제출하겠다고 보고해 주시오』라고 통보했다. 
  
 갑자기 내가 내일부로 전역지원서를 내겠다고 하자 같이 식사하던 참모장과 기무부대장도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데 대하여 안타까워만 했다. 이어서 부관이 합참의장 전속부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하여 『전화를 안 받는다고 하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합참의장이 직접 전화 걸었다고 해서 받았다. 나를 설득하려는 전화였다. 
  
 약 30분 동안 통화했는데 너무 흥분된 상태에서 전화를 받았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전부 기억할 수는 없었다. 다만 합참의장은 경고장을 수여하는 국방부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요지로 말했고, 나는 『우리 軍을 사랑하지만 장관님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지휘부에 대해서는 충성은 물론 존경하는 마음도 없어졌다』고 나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고는 내일 경고장 접수 거부와 전역지원서를 제출한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렇게 서로 평행된 주장만 하다가 결론도 못 내리고 전화 통화는 끝났다. 그러나 전역지원서를 내겠다는 나의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귀가 중인 나의 처 秋順三(추순삼·45)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전역 결심을 알렸더니 묵묵부답이었다. (계속) (konas)

 韓哲鏞 / 前 5679부대장·예비역 육군소장
 출처: 월간조선 2002년11월호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영웅들, 지금은?    수정

    알고 보니 그는 ‘빨갱이’가 아니었다. 그는 대한민국 경찰관이었다. 서해교전 전사자의 아버지가 대한민국을 위해 죽은 자식을 생각하며 통곡하는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경찰관은 인공기를 사수하기 위해 달려들었던 것이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6-29 오전 9:50:31
    찬성0반대0
  • 영웅들, 지금은?    수정

    대회가 끝날 무렵, 주최측에서는 인공기를 불태우려 했다. 그 순간 한 사내가 연단에 뛰어올라 그 인공기를 나꿔채 쏜살같이 달아났다. 참석자들은 ‘저 빨갱이 잡아라“라고 외치며 그를 쫓았고, 성난 시민들에게 붙잡힌 그는 죽신하게 얻어 터졌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6-29 오전 9:50:05
    찬성0반대0
  • 영웅들, 지금은?    수정

    연단에 오른 황 중사 부친은 “도현아~,도현아~”를 되풀이 하며 울음을 삼켰다.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나라를 위해 자식을 먼저 보내고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인의 분노가 그 속에 담겨 있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6-29 오전 9:48:50
    찬성0반대0
  • 영웅들, 지금은?    수정

    전사한 황도현 중사의 부친은 한동안 애국집회에 열심히 나왔었다.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북한측 관계자들이 애국시위대를 폭행한 사건 직후, 서울 광화문공원에서 열린 규탄대회 때에도 황중사의 부친은 모습을 나타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6-29 오전 9:47:44
    찬성0반대0
  • 영웅들, 지금은?    수정

    김종선씨는 남편이 목숨바쳐 지킨 나라를 떠나면서 “나라 위해 죽은 분들을 홀대하는 것은 (나라가) 썩은 거 아니냐?”는 말을 남겼다. 서해교전 당시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부상병들을 돌보다 전사한 의무병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는 "금쪽 같은 내 아들,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바쳤나?"라며 절규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

    2007-06-29 오전 9:46:11
    찬성0반대0
12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