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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밀사파견은 대한제국 최후의 구국외교"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100주년 맞이 학술대회

Written by. 김영림   입력 : 2007-06-22 오후 12: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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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 6월 이상설, 이준, 이위종 으로 구성된 3명의 특사가 고종의 밀명을 받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파견 되어 일제에 의해 강요된 을사늑약의 불법성과 조약의 무효를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한지 100주년을 맞았다.

 이에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국가보훈처의 후원으로 22일 오전 10시 서울 프레스센터(20층 국제회의장)에서 “헤이그 한국특사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움”을 개최, 특사사절단의 외교활동을 재조명하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로 삼았다.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22일 오전 10시 서울 프레스센터(20층 국제회의장)에서 “헤이그 한국특사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움”을 개최했다. 사진은 행사에 앞서 순국선열에 대해 묵념하는 참석자들의 모습.ⓒkonas.net

 ‘만국평화회의와 한국특사 100주년의 역사적 의의’라는 대주제로 열리는 이번 심포지움에는 러시아, 일본 등 국내외 학자들이 대거 참가하여 총 10개의 주제가 발표되었으며, 만국평화회의와 세 특사의 활동 및 그 영향 등을 함께 논의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제1부에서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의의 개최 배경과 그 실상, 제2부에서는 한국특사들의 헤이그 현지 활동상과 러시아, 미국, 일본 등 주변국의 입장과 상호관계, 헤이그 특사행이 국내외 독립운동에 미친 영향 등을 다각도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제3부에서는 이상설, 이준, 이위종 세 분 특사의 생애와 활동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재조명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으로 심포지움을 마무리 했다.

 이날의 심포지엄에서는 이준 열사의 순국만이 포커스가 아니라 헤이그 특사 파견을 대한 제국 최후의 구국외교라는 점이 부각되었으며, 강대국 이권의 각축장이 되었던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의 성격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종전보다 더욱 심층적인 접근이 이루어 졌다.

▲ 이번 심포지움에는 러시아, 일본 등 국내외 학자들이 대거 참가했다. 사진은 발표에 임하는 모스크바 러시아국립 인문학 대학교의 따치아나 심비르체바 교수. ⓒkonas.net

 또한 일부 국내외 사학자가 헤이그 특사파견을 두고 주로 고종의 순진하고 무지한 대외 인식을 꼬집었던 것에 대해서도 모스크바 러시아국립 인문학 대학교의 따치아나 심비르체바 교수는 주권을 잃은 고종 황제가 세계에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재평가 했으며, 모스크바 대 한국학 센터의 박종효 객원교수 역시 주권상실을 고종의 무능 만으로 돌릴 수 없다 라고 말했다.

 한편 박종원 교수는 발표후기에서 당시 조선이 국권상실을 초래한 원인은 열세한 국력과 산업현실 때문이라고 결론짓고 중화학공업과 수출주도 기반인 지금의 한국과 비교하면서 박정희 전대통령의 역할을 재평가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konas)

 김영림 코나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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