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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동란(動亂) 57周를 맞으며

Written by. 홍관희   입력 : 2007-06-27 오전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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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전·통일전쟁’ 시각은 전쟁의 이념적 성격을 배제하고,
 북한의 ‘남침’ 전쟁범죄를 희석시키려는 시도

 금년은 6·25 동란 57주가 되는 해다. 1950년 김일성 공산집단은 스탈린과 공모, 모택동의 동의를 얻어 불법 남침을 감행했다. 이 전쟁으로 인명 피해만 400만에 달했고, 미군도 5만 명이 희생됐다. 부산 교두보를 남겨놓고 존망의 기로에 섰던 대한민국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기사회생했다.

 서울 탈환 후 일제히 북진하던 UN군은 중공군의 매복에 걸리고 말았다. 보급 병참 문제로 중공군 대병력이 전쟁에 참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과신(過信)이 화근이었다. 더욱이 중공군은 대륙에서 훈련된 유격전술로 UN군을 괴롭혔다. 東西 전선 사이 거대한 갭이 생긴 것도 중공군의 우회·포위 전략을 성공시킨 원인이었다.

 6·25 전쟁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분기점이다. 전쟁 前 대한민국은 국가적 입지가 취약했고 내적으로 공산주의자들의 국가전복 준동에 시달렸다. 左右 개념 등 국민들의 가치관도 분명치 않았다. 그러나 전쟁을 통해 北공산집단의 정체와 의도를 생생히 알게 되었다. 6·25 후 남한은 확고한 反共사회로 변화되었고, 韓美동맹을 구축하여 확고한 국가안보 태세로 경제발전에 매진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볼 때 6·25는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정통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6·25를 ‘내전’이니 ‘통일전쟁’이니 하여 국가관과 역사관을 파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안타깝게도 전 현직 대통령이 이에 앞장서고 있으니, 이 나라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내전·통일전쟁’ 시각은 6·25 전쟁이 ‘있을 수 있는 집 안 싸움’ ‘통일하기 위해 있을 수 있는 일’ 쯤으로 치부하여, ‘공산침략’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수호’라는 전쟁의 이념적 성격을 배제하고 특히 북한의 ‘남침’ 전쟁범죄를 희석시키려는 시도라 할 수 있으니, 이는 곧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역사 인식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젊은 세대의 6·25 인식이 김대중 정권 시절보다 훨씬 나아지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희망을 준다. 일간지 보도에 의하면, 6·25가 북한의 ‘불법 남침’이라는 인식이 2002년에는 31%였으나, 2007년에는 53%로 상승했고, 특히 대학생의 경우 2002년 17%에서 2007년에 41%로 증가됐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자유민주·보수세력이 지난 수년 동안 분투해 온 결과임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konas)

 홍관희(안보전략연구소장/재향군인회 안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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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kwj3697    수정

    6.25 전쟁 57주년을 맞이하면서 현재에 이즌것은 무엇이며, 남은 것은 무엇인가? 지금도 정신적으로 전쟁을 치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느낌을 받을때가 종종 있다. 언제 이런 느낌없이 편안히 지낼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어본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6-28 오전 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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