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사이비 종교 마피아집단”
주사파 핵심 '강철서신' 저자 김영환, NDI 세미나서 주장
1980년대 '강철서신' 저자이며 민족민주혁명당(반미청년회=한민전 서울대표부) 중앙위 출신으로 입북하여 김일성과 비밀회담을 한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은 "북한의 김일성 주체사상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사이비 종교집단의 미신이자 기도문에 불과하고 북한사회는 사회주의도 아닌 사이비 마피아 집단을 섞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몰아 부쳤다.
80년대 주사파 운동권의 핵심인물로 대학가에 주사파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던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은 '전향’과 관련해 북한사회를 통해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했다고 과정을 여과 없이 털어놨다.
김 편집위원은 ‘강철서신’으로 알려진 문건과 서적을 통해 주체사상과 민족해방(NL) 노선을 학생운동의 주류로 성장시켰던 인물. 그러나 그는 1991년 5월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을 만나고 북한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통해 방향을 전환했으며, 이후 북한 민주화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북한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역량을 쏟겠다고 의지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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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은 27일 아침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NDI·이사장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주최한 세미나에 초청강사로 참석, '한국사회의 진로와 좌파세력의 현주소' 주제 강연에서 자신이 걸어 온 길과 북한을 보는 시각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1991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두차례에 걸쳐 만나 주체사상과 관련해 얘기를 나눴으나 그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사상임에도 한번이라도 정확하게 정독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모르고 있었으며, 김일성이 생각한 주체는 30년대의 적당한 민족주의를 버무린 것에 지나지 않았고 북한사회 또한 독재자 한 사람의 권력유지를 위한 도구화된 사회에 불과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김 위원은 밀입북 몇 년 후 민혁당 핵심조직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며 "지금 북한은 지구상 어떤 나라보다도 악랄한 독재정치로 인민을 잔인하게 탄압하고 있다. 이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혁명가다. 혁명가는 인민을 위해서 하는데 그 인민의 적은 우리의 적이고 북한 정권을 볼 때 인민의 적이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이것은 명확하다. 이제는 우리의 혁명이 인민의 적과 맞설 때다. 나는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고 인민을 구하는데 남은 인생을 걸고자 한다"면서 그것이 바로 시대정신이라고 썼다고 밝혔다.
따라서 자신의 주장에 동조한 후배도 있었지만 거부하고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도 있었다고 하고 과거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이 오늘까지 우리 사회를 괴롭히고 있는데 대해 죄송스럽다는 말로 착잡한 마음을 표하고 최근 울산지역 금속노조 파업과 관련해 당시에도 민혁당 핵심 조직원 30여명이 현대노조에 침투돼 파업을 선동했으며, 지금도 노동계 뿐만 아니라 청와대, 국회, 교육계, 언론, 사법계 등 요소 요소에 깊숙이 침투돼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자신이 대학가에 민족해방운동론을 처음 전파하던 것과 관련해 “나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확산됐다. 서울대를 비롯한 연·고대는 불과 2, 3달만에 (민족해방-NL계열이)학생운동을 장악했고 전국에 걸쳐 8∼10개월만에 장악했다”고 스스로도 놀라와 했다 고 말했다.
그는 "당시 나를 잡기 위해 활동한 경찰이 400명 정도가 됐다. 고향 할머니 묘소에서 두달여 동안 지키는 것은 물론 막내 이모가 세 내준 세입자의 집까지 새벽에 급습하기도 했고 후배와의 만남 장소를 알아내 그의 얼굴을 본 뜬 가면까지 쓰고 약속장소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며 당시 그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이 얼마나 고심했던가를 일깨웠다.
김 위원은 안기부에 검거된 후 ‘47일간의 고문’을 떠올렸다. “1월 9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인데, 바로 내가 교도소에 들어간 날이다. 교도소에 가게 됐지만, 안기부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고 말하자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북한과 연계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공안당국의 역할이 필요한 측면이 있었지만, 당시의 고문은 오히려 혁명의지를 다지게 하는 부작용도 낳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문도 그의 신념을 꺾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그를 꺾은 것은 투옥과 고문이 아니라 ‘북한의 현실’ 그 자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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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은 또 방북해 북한을 본 느낌과 관련해서 “북한 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워낙 많이 알려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다른 측면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며 특히 “북한의 학자들과 주체사상에 대해 토론하는데 ‘수령이 문화대혁명과 같은 오류를 범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반복했지만 그들은 전혀 엉뚱한 대답만 늘어놓고 답을 하지 못했다”면서 “세상에서 주체사상을 연구할 자유가 없는 곳은 바로 북한이란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실제 친북이나 정통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세력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아니라 이미 학생운동을 벗어난 사람들”이라며 “당시의 ‘사회주의적 민족주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그것이 사회전반에 뿌리깊게 배어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사회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분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면서 “나는 북한 민주화를 위한 활동가로서 이 분야에 총력을 다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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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한 방청객이 김 위원에게 “대다수 국민들이 친북좌경화가 잘못된 길임을 일찍 알았는데 김영환 씨는 왜 그렇게 뒤늦게 그것을 깨달았느냐”며 비판하자, “그런 부분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과거 운동권의 잔재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부정적인 측면을 극복해나가야 할 부분에 책임감을 느낀다”고 대답했다.(Konas)
이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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