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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협정 체결해선 안된다

Written by. 김성만   입력 : 2007-07-02 오전 9: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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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큰 재앙이 서서히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국민은 정작 이런 사실조차도 잘 모르고 있다. 바로 한국전쟁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이 그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협정은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나라나 지역에서 군사행동을 중지하고 평화상태를 회복하거나 우호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맺는 협정을 말한다.

 2007년 6월 22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차관보는 서울 기자회견에서 2·13핵합의의 초기이행을 낙관했다. 이제 영변 핵시설 폐쇄를 넘어 다음단계 이행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차례가 된 것이다. 바로 2·13 합의에서 명시한 동북아 냉전구조 해체와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이다.

 한국전쟁이 종료된 지 54년이 지났지만 한반도는 아직 종전선언조차 하지 못하고 불안한 정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2·13 핵합의(2007년)와 9·19공동성명(2005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성과들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역사적인 진전이라 할 수 있다. 바야흐로 한반도가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바뀌는 큰 변화의 기류를 맞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50여 년간 체결하지 못한 것을 왜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로 완전무장한 지금에 와서 본격적으로 추진되는지와 그 파장은 어떠한지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평화협정 문제는 지난 2006년 11월 18일 APEC회의(하노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한국전쟁의 종전선언과 평화조약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고 제안한데서 부터 시작되었고, 한국정부도 부시 대통령의 제안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후 정부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2007년 6월 22일에 개최된 제주평화포럼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반세기를 넘어온  정전체제도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북핵문제가 진전돼 6자 외무장관 회담이 성사될 경우 종전선언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정부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종전선언은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지난 40년간 줄기차게 요구해오고 있는 ‘미·북 평화협정 체결, 남·북 불가침선언’과 같은 것이다.

 북한은 핵문제 초기부터(1993년) 미·북 양자회담을 선호했다. 한국을 배제한 채 중요한 사안을 서로 결정하고 뒷처리(경수로 건설비 부담 등)는 항상 한국의 몫이었다. 이번에도 미·북은 그렇게 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김계관의 초청으로 북한을 6월 21~22일 간 깜작 방문하고 북한이 원하던 양자회담을 했다. 흘러나오는 소문에 의하면 2008년 연말까지 적어도 부시행정부 기간 내에 미·북 관계 정상화를 전제로 물밑대화가 급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미·북 연내 한국전쟁 종전선언 추진설, 8·15 남북 정상회담 추진설, 연내 남·북·미 정상회담 추진설 등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

 평화체제의 사전구축 없는 상태에서 맺은 평화협정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가를 자유월남 공산화실례로 살펴보자. 다음은 이대용 예비역 장군(82세, 1963~75주월공사)의 ‘파리휴전협정에서 얻은 교훈’(북한연구소·북한학회주최, 제26회 학맥강좌, 2007.4.20)에서 가감없이 그대로 발췌했다.

 『1973년 1월 27일에 체결된 파리협정에는 겹겹의 안전장치가 있었다. 12개국이 이 조약을 담보했다. 미국은 철수하면서 월남과 방위조약을 맺어 월맹침공 시 해군·공군이 즉각 개입, 북폭(北爆)한다고 약속했다. 월남의 병력을 125만 명으로 증원시켰다. 당시 월맹의 111만 명을 앞지르는 수치다.
 신예장비를 공급받은 월남공군은 세계4위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게 됐다. 일종의 인질도 잡았다. 월맹 외무부 차관급인 하반라우 육군대좌를 포함, 월맹군 150명을 사이공에 머물게 했다.
 파리협정이 체결된 배경에는 월맹에 대한 방심도 한몫했다. 당시 월맹은 그야말로 ‘거지’였다. 국민들이 쌀을 두 끼만 먹는데도 한 해 80만~100만 톤이 모자랐다. 부식은 소금이 전부였다. 군인들은 부서진 타이어를 잘라 샌들을 만들어 신었다. 옷은 월남에서 뺏은 것을 걸치고 속옷은 누더기였다.
 그러나 10년 내 망하다던 월맹(북월)은 파리평화협정을 깨고 1975년 3월 10일 월남을 침공했다. 침공 직후 36시간 동안 26만 명의 월남인이 학살됐다. UN의 경고로 캄보디아와 같은 대량학살을 간신히 면했을 뿐이다. 4월 30일 사이공 함락으로 월남은 패망했다.

 월남사람이 누리던 모든 자유도 박탈됐다. 화폐개혁으로 구화(舊貨)는 무효화됐고, 금(金)을 가진 사람은 총살당했다. 장사도 할 수 없게 됐다. 무려 116만 명이 보트피플이 돼 해외로 탈출했고, 그 중 11만 명이 죽음을 당했다.
 350만 명은 수용소로 끌려갔다. 재교육이라는 명분이었다. 월맹당국은 ‘몇 주간 교육을 시킨 뒤 집에 돌려보낼 것’이라고 선전했지만, 실제는 달랐다. 수용기간도 무한정이었다.
 역사는 아이러니다. 월남에서 反정부시위를 주도하던 좌익들까지 모두 잡혀갔다. 골수 몇 몇을 빼곤 親월맹인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번 반역하면 또 다시 반역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수용소에선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맞아서 죽고, 굶어서 죽고, 병 걸려 죽었다. 80년대 후반 베트남은 고르바초프 개혁·개방노선을 수용했다. 그러나 수용소 해체는 90년대 중반에야 시작됐다.
 베트남은 공산화된 후 12년간 지옥 같은 암흑을 헤매야 했다. 그 12년을 모른 채 ‘베트남은 통일됐고, 지금은 잘 살지 않느냐’는 말은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인가?
 김정일은 연방제로 한반도를 적화시킨 후 이런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한다. “천만 명은 해외로 탈출하도록 내버려두고, 남북한 5천만 명으로 ‘통일국가’를 만들겠지만, 남한의 700만 명 정도는 용서치 않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진술한 이대용 공사는 월남의 멸망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다. 그는 체포되어 5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했다.

 이상하게도 당시의 월남·월맹과 지금의 한반도 남·북한 상황이 섬뜩할 정도로 너무나도 흡사하다. 북한이 핵무기를 모두 폐기한다고 해도 대량살상무기(탄도탄, 화학무기)는 건재하다. 현역 117만, 예비역 770만 명에 젊은이는 하나같이 남조선 섬멸에 총·폭탄(총탄·폭탄)이 되겠다며 벼르고 있다. 한마디로 ‘가미가제 특공대’가 되겠다는 결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67만에 예비군도 304만 명 수준으로 초라하다. 여기에 젊은이의 70%는 북한은 형제이고 미국·일본이 우리의 주적이라고 한다. 종전선언·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유엔군사령부가 해체되고 주한미군도 모두 철수하게 된다.      이제 북한이 남침해도 미국이 도와줄 수가 없다. 월남의 경우와 같이 한반도내의 전쟁은 한민족 내부 분쟁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작년 10월  ‘핵실험’ 성공을 거둔 김정일이 “남조선이 경제는 발전했지만 (언제라도) 먹어버릴 수 있다.”고 호언하기에 이르렀다. 평화협정 체결은 북한의 한반도 적화통일의 초대장이 될 것이다. 이것이 파리평화협정의 모델이고 월남의 패망이 진정 우리에게 주는 교훈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평화협정(종전선언 포함)을 체결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 50여 년 간 한반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못한 것은 끊임없는 북한의 휴전협정 위반(수십만 건)과 변함없는 그들의 한반도 적화통일의 야망 때문이다. 더구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2000년) 이후 북한의 군사도발은 더욱 격화되어 가고 있다.
 2001년 북한상선 영해침범, 2002년 서해교전, 2006년 탄도탄 무력시위·지하 핵실험 등이다. 이것도 부족해 선군정치에 국가지도자 명칭을 국방위원장으로 고집하고 있다.
 그리고 평화협정 체결이 없어도 미·북, 일·북 간 외교관계 수립에는 하등의 지장이 없다. 현재 일·러 간의 관계가 그 예다. 북방 4개도서 분쟁으로 일본과 러시아는 종전선언·평화협정체결 없이도 정식 외교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고 있다.
 
 둘째, 꼭 체결해야 된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한국에 대규모 주한미군의 계속주둔을 반드시 명시해야한다. 북한의 호전성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은 협정 따위의 약속보다 강력한 미군사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의 대남적화통일 정책의 포기, 선군정치제도 폐기, 대량살상무기(핵무기·화학무기·생물무기·탄도탄 포함) 완전폐기, 북한군 현역 및 예비군 한국수준으로의 감축, 한국 수도권에 위협을 주는 장사정포의 후방철수가 완료되어야 한다.
아마 수년 또는 수십 년이 소요될 것이다.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김정일 정권의 존립기반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핵문제와 후속조치들을 수시로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야 한다. 그리고 국가의 중요정책 사안이면서 국가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한국전쟁 종전선언, 불가침선언, 평화협정 체결, 정상회담(남북, 한국전 당사자), 남북외교관계 수립 등은 국민(국회)의 사전 동의를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이다. (konas)

 김성만 (전 해군작전사령관, 예비역 해군중장)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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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iren    수정

    월남의 공산화 직전 상황과 지금의 한반도 안보상황이 하나도 다를바 없다. 문제는 이런 안보위협에 대한 국민들의 경계심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식자들이 경고음을 자주 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7-02 오후 12:29:41
    찬성0반대0
  • 반핵반김    수정

    북한하고 미국이 평화협정이라??? 말이 평화협정이지 적화승인장이나 마찬가지다. 절대로 속지말아야 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7-02 오후 12:2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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