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정상의 '케니벙크포트' 회동의 의미
지난 7월 1-2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부시 미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 동부 케니벙크포트 (Kennebunkport) 부시家의 별장을 방문하였다. 부시(George Herbert Walker Bush) 제41대 미대통령도 합류하였다. 부시 父子와 푸틴 대통령이 함께 모터보트, 낚시, 별찬을 즐기는 등 통상의 정상회담이라기보다는 비공식적이고 가족적인 성격의 회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얼마간 급격히 복잡해진 미러 전략관계로 인해 이 부문 관측자들에게는 이번 회동이 주는 의미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부시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좀 더 부드럽게 접근함으로써 전략문제에 대한 러시아측의 이해를 얻으려 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미국이 현재 체코에 레이다 기지, 폴란드에 요격미사일 배치를 구상하고 있는 바, 올 들어 지난 몇 개월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안팎에서 기회있을 때마다 자국이 이에 대해 모종의 맞대응을 할 것이라는 등 격한 비난을 서슴치 않아 온 것이다.
예컨대 지난 2월 ‘뮌헨안보정책회의’나 4월 러시아내 국정연설은 그 대표적 예로서 전자가 미국과 유럽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후자는 자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토로였다고 하겠다. 미국측은 동유럽 방어망 배치계획의 동기가 러시아와 무관한 것으로서 이란 등 소위 ‘불량국가’들로부터의 잠재적 미사일 공격으로부터의 보호에 있다고 주장하여 왔다. 반면 러시아측은 이는 핑계이고 사실상 자국의 대미 전략억지력을 저해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해 왔다. 적지 않은 이들이 러시아측의 주장이 과장이라고도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소련붕괴 이후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상대적 지위 격하에도 불구하고 냉전기 유산으로 인해 지구상 러시아만이 유일하게 대미 핵억지력을 소지하고 있는 바, 러시아측의 민감성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푸틴 대통령은 급기야 지난 6월 독일 하일리겐담 (Heiligendamm)에서 개최된 G8정상회의에서 절충안의 하나로 아제르바잔의 가발라 (Gabala)에 배치된 구소련의 레이다 기지를 미-러가 공동으로 사용하자는 파격적 제안을 하였다. 이번 케니벙크포트 회동에서도 그는 현재 러시아 남부에 짓고 있는 신형 레이다를 공유하자는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뿐만 아니다. 기존 ‘NATO-러시아위원회’가 공동의 미사일방어망을 주관하며 이에 따라 모스크바와 브뤼셀 등 유럽도시에 조기경보 센터를 설치할 것도 제안하였다.
푸틴 대통령의 이러한 공세적 제안에 대해 이번에는 미국측에서 절충적 답안을 제시하고 있다. 즉, 한편으로는 비로소 러시아도 불량국가들로부터의 잠재적 미사일 공격위협에 공감을 표한 것이라며 반갑게 받아들이는 가운데 장차 미-러 미사일방어 부문 협력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것이 곧 미국이 현재 구상중인 동유럽 미사일방어 요소 배치계획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단정하지는 않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번 케니벙크포트 기자회견 중 부시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제안이 “진실되고, 혁신적이며, 전략적”이라고 극찬하면서도 여전히 체코와 폴란드가 통합 방어체계의 일부분이어야 한다”는 종전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미국측은 자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망 계획이 레이다 하나 혹은 둘의 문제가 아니라 ‘통합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정작 미사일방어 요소 배치대상국인 체코와 폴란드 역시 과거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의 안보불안감을 고려하기 보다는 바야흐로 신규 NATO의 회원국으로서 미국의 제안에 훨씬 더 강하게 협력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실제 러시아 지도층이 염려하는 바는 군사적 차원에서의 대미 전략억지력 약화보다는 차라리 정치적 차원에서 러시아의 위상하강을 직시해야 하는 일일 것이라고까지 갈파하고 있다.
여하한 경우에도 가뜩이나 러시아군의 몰도바와 그루지아 주둔 문제로 인해 1999년 이래 CFE (유럽재래식전력)조약 이행과 관련하여 러시아와 NATO회원국간 갈등이 불거져 온 터에 미사일방어망 문제까지 터져 적어도 향후 얼마간 유럽안보 무대에서 양측간 설왕설래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이처럼 유럽안보 공간내에서 배태된 자국의 대서방 불신감을 유라시아 6개국 (중국, 러시아, 카자크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크스탄) 안보기제인 SCO (상해협력기구) 내에서 분출하고 있다.
6월말 키르기즈스탄 (비쉬케크)에서 개최된 SCO 국방장관 회담에서 러시아 국방장관 세르듀코프는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망 계획이 “군사, 전략적 균형을 깨뜨릴 뿐 아니라 러시아의 대EU 및 NATO와의 안보협력을 위협하고 있다”고 피력하였다. 물론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중국에게도 러시아에게만큼 절실하게 군사적, 정치적 위협으로 비추어질지는 의문이다. 중국에게는 이보다는 알라스카 소재 미국 미사일방어 요소 그리고 미-일 공동의 미사일방어 계획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이 복잡한 전후 사정으로 미루어 향후 미러 전략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국제적 관심지사가 아닐 수 없다. 21세기 미러가 각각 상호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차원에서 테러와의 전쟁, 그리고 비확산은 미러 공히 최대 국제안보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는 경제적 차원에서의 국익까지 감안, 한층 더 미국과의 협력이 요구되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러는 냉전기 미-소 경쟁의 유산속 상호비등한 핵억지력을 소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경쟁적이다. 소련붕괴 후 대부분의 동유럽과 상당수 CIS국가들이 이미 정치 및 경제적으로 친서방 혹은 친미노선을 걸어온 것이 사실이지만 미사일방어망 부문에서의 합류는 현재까지 없었던 새로운 시도이고 이에 대해 러시아는 본능적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틀간의 케니벙크포트 회동은 미러간 이처럼 상호일치하기 어려운 안보이해에도 불구하고 양 정상간 어느 정도 친목 도모와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때로 내게 거북한 말을 할 때도 있지만 적어도 그가 솔직한 사람”이라며 칭찬하였다. 그는 양 정상간 미러 쌍무현안은 물론 “이란과 북한의 핵문제” 등 거의 모든 주요 국제적 사안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도 “부시 대통령의 초대와 부시 가족의 따듯한 대접에 대한 감사”를 표하였다.
진부한 얘기이지만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체코, 폴란드 모두 국익이라는 명제 속에서 계산하고 그에 따라 정책을 수립, 결정하고 있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인정하던 인정치 않던 한미동맹, 북핵 6자회담 등 미국과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 한, 동북아에만 국한하지 말고 유럽무대에서의 첨예한 미러 전략관계 추이도 늘 주시할 필요가 우리에게 분명 있지 않을까.(konas)
정은숙(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지역연구실장 chunges@sejong.org)
출처:세종연구소 '세종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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