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정→미군철수' 노리는 북한 核의도
교착상태에 있던 북한 핵 문제가 방코델타아시아(BDA) 자금 전달,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의 전격 방북, 중유 5만t 선적,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영변 핵시설 폐기 검증 시작, 쌀 40만t 지원 재개 등으로 신속하게 해결의 가닥을 잡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보기와 다르다.
문제는 북한이 진정 핵 폐기 의지가 있느냐인데, 현재로서는 비관적 정황이 더 우세해 보인다. 북한은 중유가 도착하는 대로 영변 핵 폐기를 시작하겠다고 하지만, 영변 원자로는 이미 수명이 다했다는 점에 전문가 간 이견이 없고, 그 밖의 핵 시설 불능화와 특히 고농축우라늄(HEU) 핵 개발 문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번에도 ‘북핵’에 근본적 관심이 없는 노무현 정권과 최근 북핵 협상에 이례적인 조바심을 보이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노련한 협상전술에 ‘녹아웃’ 될 공산이 커 보인다.
핵 문제에 대한 북한의 진정한 의도는 의외의 곳에서 이미 표출되고 있다. 지난 4일 한성렬 전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는 런던에서의 연설을 통해 “주한 미군이 철수해야 핵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는데, 이야말로 북한의 의중을 핵심적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한다. 곧, 미국이 한반도에서 손을 떼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니, 북한을 한반도 대표주자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종전선언, 평화체제 수립, 연합제·연방제 통일로 이어지는 일련의 ‘한반도 안보구도 재편작업’에 미국이 협조하거나 최소한 관여하지 말아 달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평화협정’을 통해 한미동맹이 폐기되고 주한 미군이 철수하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이 새롭게 제시한 핵 폐기 조건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북한 외무성 산하 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비핵화의 근본 장애는 불안정한 정전체제”라면서,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강력히 요구했다. 아울러 북한은 “평화체제로 전환돼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한다면, 단 한 개의 핵무기도 보유하지 않겠다”는 확신있는 언질을 미국에 주고 있다.
이에 대해 부시 행정부가 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뜻을 이미 이해하고 핵 폐기를 위해 베트남식 해결까지 염두에 둔 것인지, 아니면 북핵 협상 성공을 위한 고도의 복합전술인지, 이미 부시 행정부는 평화협정 전환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이르면 올해 안에 북한과 ‘평화협정’ 문제를 협의할 방침이라고 미 주요 일간지인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하고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에 힘을 실어주듯 노 정권은 올 하반기에 남북정상회담 개최 및 종전선언 등 한반도 안보 구도의 근본적 개편에 나설 방침이라고 한다. 청와대 대변인의 9일 브리핑 내용이다. 이에 앞서 국방부 산하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지난 5월 정부 기관이 참여한 비공개 모임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4단계 추진전략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대선을 눈앞에 둔 오는 가을에 한·미 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 등 한반도 안보 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러한 급격한 시도에 미국 내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번 북한의 협상 대응 조치가 ‘기회주의 행동’에 불과하며, 자진해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북한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금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화두로 하는 거대한 기획성 음모가 벌어지고 있다. 집권 좌파 세력이 평화체제 시나리오를 대선 정국에 이용할 의도를 갖고 있음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선진·평화·개혁’ 구호 아래 북한과의 ‘교류협력’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야당은 무기력해져 이에 협조할 태세다. 오직 국제적 양심과 위기 때마다 나타나는 한국민의 저력을 믿어야 할 것인가.(konas)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재향군인회 안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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