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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사의 죽음이 남긴 화제

Written by. 손충무   입력 : 2007-07-16 오전 8: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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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워싱턴 코리언 커뮤니티 에서는 지난주 세상을 떠난 한 목사의 죽음을 둘러싸고 2가지 화제가 번지며 여러 말들이 많다.

 세상을 떠난 후에 “잘 죽었다”고 하는 비판과 “북한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었는데…’ 하는 아쉬움의 소리가 나돌고 있는 故人의 이야기는 정성철 목사(63)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세상을 떠난 정성철 목사가 사실은 어느 신학교를 졸업하고 언제부터 목사가 됐는지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을 위해 몇 년 동안 상당히 애를 쓰며 노력한 흔적은 남아 있다.

 별로 알려지지 않던 그가 한국 이민자 동포사회에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 2005년 6.25 때 쯤으로 보인다. 워싱턴 인근 지역에서 ‘사랑 선교회’ 활동을 한다는 소식과 함께 “6.25를 사랑의 날로 부르자- 6.25 기념 사랑의 음악회 개최” 광고를 신문에 크게 내면서부터 시작이다.

 ‘6.25를 사랑의 날로 부르자’고 주장하며 ‘6.25날 사랑의 꽃 달기’ 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전하자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동포들이 벌떼처럼 항의하며 일어났다.

 특히 6.25 전쟁에 직접 참전했다가 부상당한 애국자들, 상이용사들이 분노를 터뜨리며 항의하고 나섰다. ‘6.25는 남쪽에서 이승만 정권군대와 미군이 합세 북침을 했다’고 주장하는 정 목사는 오랜기간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김정일의 아비 김일성에 의해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겨우 유치원 다니는 정도의 나이 밖에 안된 그가 “6.25를 사랑의 날로 하자”고 외치는 소리에 6.25 전쟁을 몸소 겪은 세대는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했다.

 제1회 음악회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던 그는 음악회에 들어온 돈을 갖고 2005년 평양에 가서 ‘평양금성제일중학교’에 빵공장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무료로 빵을 제공했다고 한다.

 그 후부터 그는 1년에 몇 번씩 돈을 마련 평양과 워싱턴 사이를 부지런히 왕복했다. 그러나 누구인가 그 빵공장을 가본 사람도 없고 빵이 만들어져 아이들이 나눠 먹는 것을 본 사람은 없다.

 그래서 여러 말들이 나돌았으며 그러다가 지난 7월초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양에 갔다가 워싱턴으로 돌아온 며칠 후 갑자기 세상을 하직했다.

 그가 죽자 ‘김정일 타도, 공산주의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은 “빨갱이 목사 시원하게 잘 죽었다”고 하는 소리가 많은가 하면  “북한을 위해 욕을 먹으며 우직하게 일하다 사망한 목사”라는 평가도 일부 있다.

 하나님 보시기에 먼 훗날 역사의 기록에서 어느 쪽 행동이 올바른 것이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Konas)

 손충무(국제저널리스트, www.usinsideworld.com 편집인 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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