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외교협상이나 조약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7월 11일 버시바우 (Vershbow) 주한 미국 대사는 “미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 과정을 올해 안에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물론 “평화체제 수립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필요로 한다”고 전제 했지만 북한의 태도에 따라 미국과 북한 간에 모종의 협상이 진행 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말이다. 한국 정부는 7월 12일 버시바우 대사의 언급에 대해 “논의가 가급적 조속히 진행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직접 당사국으로서 적극적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7월 13일 북한 판문점 대표부 이찬복 상장은 돌연 미국과의 1:1 군사회담을 제안했다. 통일원 장관은 이에 대해 “왜 우리를 빼고 요청했는지 진의를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늘 그래 왔지만 외교관들이 부지런히 만나서 대화를 하면 그것은 평화가 도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을 때면 그것은 긴장상태가 지속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모습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측 6자회담 대표의 방북,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방북, 미국 측의 대 북한 협상의지 표명 등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몇 가지 외교적 교섭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보고 요즈음을 평화의 계절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제일 큰 정당인 한나라당이 최근 발표한 새로운 대북정책이라는 것도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솔직히 말해 외교관들이 빈번히 만난다는 것은 국제상황이 오히려 불안하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불가침 협정을 맺은 나라들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 할 확률이 그렇지 않는 나라들 사이에서의 전쟁발발 확률 보다 높다는 사실은 국제정치에서의 협상과 조약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웅변적으로 말해 준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은 국가들이 무기를 많이 갖추다보니(군비경쟁) 전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기 보다는 국가들은 전쟁을 할 것 같아서 무기를 많이 갖추게 되었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은 훌륭한 조약이나 국제기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군사력과 힘의 관리를 통해 국제평화가 유지 되는 것으로 본다.
1953년 7월 6.25 전쟁 휴전이후 한반도에는 비록 완전한 평화는 아니지만 평화가 유지 되었다. 지난 반세기 이상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즉 평화가 유지될 수 있게 한- 결정적인 요인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군사력 이었다.
버시바우가 의미하고 한국 정부가 말하는 소위 “평화체제” 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그동안 유지되어 왔던 한미 군사동맹과 주한 미군에 본질적인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지금과 같은 북한체제가 그대로 존속하는 것이라면, 그런 평화체제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나락에 빠트릴 것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미국과의 단독 군사회담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궁극적 폐기와 철수를 목표로 하는 것임이 불 보듯 뻔하다. 통일원 장관이 왜 우리를 제외 시켰는지 진의를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지만 북한은 북한의 그릇된 행동에 대해서 거의 아무 말도 하지 못한 한국을 전략적 대상으로 고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국제정치에서 평화는 “말”이나 “문서”로서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북한 사이에는 이미 최고의 평화협정이 존재하고 있다. 15년 전 체결 되었던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가 바로 그것이다. 황장엽 선생의 지적처럼 이미 휴지조각에 불과하지만 더 이상 나무랄 데 없는 최고의 평화 문건이다. 이보다 훨씬 못한 합의서를 한 장 더 만들기 위해 고생하는 우를 언제까지 계속 범해야 하는가? (Konas)
이춘근(자유기업원 부원장, 국제정치학 박사)
출처 : http://www.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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