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 輕水爐 제공' 요구는 核 포기 않겠다는 것
北의 ‘先 輕水爐 제공’ 요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북한은 필자가 예상했던 대로 또 경수로 카드를 들고 나왔다. 20일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을 끝내고 베이징으로부터 평양으로 돌아간 6자회담 북한 대표단장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21일 "영변 핵 시설을 해체하려면 경수로가 들어와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북한이 경수로 카드를 들고 나왔다는 것은 북한의 생각이 6자회담을 진전시키지 않고 다시 교착시키겠다는 것임을 의미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경수로 선(先) 제공 주장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김계관의 이 같은 발언은 2005년9월19일자 베이징 6자회담 공동성명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9.19 공동성명>에는 많은 합의 사항들이 망라되어 있지만 그 핵심은 북한과 미국 등 5개국이 교환한 다음과 같은 약속이다. 북한은 두 가지를 약속했다.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것과 함께 “조속한 시일 안에 핵확산금지조약(NPT)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약속한 것이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국 등 5개국은 역시 두 가지를 약속했다. 북한의 ‘평화적 핵 에너지 이용권 보유’ 주장을 ‘존중’하기로 하고 “적절한 시기에 대북 경수로 제공 문제를 논의”하는데 동의한 것이다.
여기서 북한의 ‘약속’과 미국 등 5개국의 ‘약속’ 사이의 ‘선후관계(先後關係)는 <9.19 공동성명>에 명문화되어 있다. 즉, 북한의 ‘약속’ 이행 시기는 ‘조속한 시일 안’이고 미국 등 5개국의 ‘약속’ 이행 시기는 ‘적절한 시기’로 되어 있다. 당연히 북한이 ‘약속’한 “NPT와 IAEA 안전조치에의 복귀”가 먼저이고 미국 등 5개국이 ‘약속’한 “대북 경수로 제공 문제 논의”는 다음인 것이다. 더구나, 양측이 ‘약속’한 내용이 다르다. 북한은 ‘복귀’를 약속했고 미국 등 5개국은 ‘논의’를 약속했을 뿐이다. 이로 본다면 “경수로를 먼저 제공하라”는 김계관의 요구는 <9.19 공동성명>을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의 ‘경수로 선 제공’ 요구는 단순히 <9.19 공동성명> 위배 여부의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상황 하에서 경수로는 이를 북한에 제공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994년10월21일자 <제네바 합의>에서 북한이 흑연감속로를 포기하는데 대한 반대급부로 미국이 경수로를 북한에 제공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흑연감속로에서 우라늄 연료를 연소시키면 거기서 나오는 사용후 연료에는 Pu239의 함량이 90% 이상인 무기급 플루토늄이 대량 함유되어 있으나 경수로에서 우라늄 연료를 연소시키고 난 뒤의 사용후 연료에는 Pu239 함량이 90% 이상인 무기급 플루토늄이 거의 없게 된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그 당시에는 경수로를 가리켜 ‘비확산 원자로(Proliferation–resistant Reactor)’라고 일컬었었다.
그러나, 이 사정에는 곧 변화가 생겼다. 미국의 <로렌스 리버모어 핵무기 실험소>(Lawrence Livermore Nuclear National Laboratory)에서의 실험 결과 경수로도 보통 상업용 발전 목적으로 가동시킬 경우 거기서 나오는 사용후 연료에는 ‘무기급(Pu239 함량 90% 이상 순도) 플루토늄’ 함량이 떨어지지만 ‘무기급 플루토늄’ 제조 목적으로 방식을 바꿔 가동하면 거기서도 ‘무기급 플루토늄’이 다량 생산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로렌스 리버모어 실험소>의 실험 결과에 의하면 북한에 지어주기로 한 100만kw 용량의 경수로 2기를 ‘무기급 플루토늄’ 제조 전용 방식으로 가동하면 거기서 연간 330kg의 ‘무기급 플루토늄’이 생산되고 이만한 양의 ‘무기급 플루토늄’은 나가사키 형 표준 원자탄을 연간 65개씩 제조할 수 있는 양이라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미국이 신포에서 건설 중이던 대북 경수로 건설을 취소하는 결정을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다른 여러 나라에서 지금 경수로가 가동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는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그것은 지금 경수로를 가동하고 있는 모든 나라들은 모두 NPT에 가입하고 NPT가 요구하는 대로 IAEA와의 ‘안전조치협정(Safeguards Agreement)’을 체결한 뒤 이 협정에 따른 모든 ‘안전조치’를 수용함으로써 보유하고 있는 경수로를 군사용으로 전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북한도 NPT에 가입하고 IAEA와의 ‘안전조치협정’을 체결하여 협정 상의 ‘안전조치’를 전면적으로 수용하기로 하고 이를 실증할 경우에는 당연히 경수로 가동이 허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일단 가입했던 NPT를 탈퇴했고 IAEA와 체결했던 ‘안전조치협정’도 폐기했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와 정면으로 대결하면서 핵무기 개발•생산을 강행해 온 나라다. 이 같은 나라에 경수로를 제공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경수로를 제공 받으려 한다면, 북한은 먼저 NPT와 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뿐 아니라 이들 조약과 협정 상의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9.19 공동성명>에서 북한이 ‘먼저(조속한 시일 안에)’ NPT와 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하기로 약속하고 이것이 이루어지면 미국 등 5개국이 ‘뒤에(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하기로 약속한 것은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한다면 매우 당연하고도 정상적인 일의 수순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경수로를 먼저 주지 않으면 핵 시설 해체에 응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경수로를 먼저 달라”는 불가능한 요구를 관철하는데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이를 빌미로 “핵 시설 해체에 불응하겠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표명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의 거듭되는 ‘경수로 선 제공’ 주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이 분명해 보인다. 6자회담을 다시 무기한 교착시키겠다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무한정 지연시키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에 대해 한•미 양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노무현 정권은 이것도 북한이 “무엇을 더 달라는 수작(酬酌)”이라고 보고 대북 ‘퍼주기’를 배가(倍加)하여 북한을 “달래려” 할 가능성이 크다는데 문제가 있다.
지금 노무현 정권에 이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쇠 귀에 경 읽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정권의 핵문제에 관한 대북정책은 분명히 잘못 되어 있다. 지금이라도 재고(再考)하고 새로운 정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해 마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북한에 무엇을 주고 달래서 핵무기를 포기시킬 수 있다”는 환상(幻想)을 가지고 국민을 오도(誤導)하는 것을 그만 두어야 한다. 북한은 권력이 아버지 김일성(金日成)으로부터 아들 김정일(金正日)에게 물려지고 다시 손자에게 물려지려 하고 있는 ‘김씨왕조(金氏王朝)’가 붕괴되기 전에는 핵무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분명한 사실을 이 나라의 위정자(爲政者)들이 깨우치게 되기까지 우리는 과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생각할수록 답답하기만 하다. [끝]
이동복 / 전 명지대 교수http://www.dblee2000.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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