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평화한국'과 해외파병
한국군의 레바논 파병
지난 7월19일 한국의 동명부대 본대가 레바논의 평화를 위해 먼 길을 떠났다. 1978년의 레바논 내전을 계기로 유엔평화유지군은 이미 주둔해 왔다. 그러나 약 2000명이 채 못되는 병력으로 2006년 7월에 발생한 이스라엘 - 헤즈불라 간 교전을 막을 수 없게 되자 유엔은 같은 해 8월 평화유지군의 병력증강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안보리결의안 1701호의 채택과 함께 회원국에 파병을 요청하였다.
이에 분쟁당사자인 이스라엘 - 헤즈불라 간 정전상태를 유지하고, 레바논의 평화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30개 국가가 파병하기로 약속했는데, 약속한지 11개월만에 이들 국가 중 가장 마지막으로 한국군이 떠난 것이다.
평화유지활동 관련법이 부재한 탓에 적시에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여 안타까운 마음 크지만, 이제라도 중동의 평화를 위해 장도를 내디딘 자랑스런 우리 군에 아낌없는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
해외파병의 의미 : 도의적 차원에서
사실 해외파병 문제와 관련하여 부족한 것은 법과 제도만이 아니다. 해외파병정책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이해도 상당히 부족한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해외파병을 무조건 잘못된 행위인 것처럼 매도하는 사람들도 있고, "위험한 곳에 왜 한국군이 가야 하는가?" 혹은 "안전을 고려할 때, 전투부대 대신 지원부대가 더 낫지 않은가" 라는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주장들이 곧잘 제기되곤 한다.
그런데 다른 나라도 아닌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곤란하다. 대한민국이야말로 바로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국가존망의 위기를 극복하고 가까스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젠 우리도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 희생을 치른 국제사회에 역사적으로 진 빚을 갚아야 할 때가 되었다. 특히 분쟁지역의 어려운 국가들일수록 6·25전쟁의 폐허 위에서 기적처럼 아시아 최고수준의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세계 경제력 11위의 국가로 도약한 '모델 한국'으로부터 뭔가를 배우고, 또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 생존의 기로에서 스스로 평화를 지켜나가지 못하는 민족들을 한국이 국제사회와 함께 경제적인 방법으로든 아니면 유엔평화유지군의 형태로든 돕는 것은 도의적 측면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해외파병의 의미 : 국익차원에서
국익차원에서도 해외파병을 적극 추진해야 할 이유는 적지 않다.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2007년 7월에 GDP 대비 71.5%이다. 국제안보환경이 악화되어 수출입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타격을 받게 되는 경제구조다. 특히 세계 석유매장량의 61.5%(2006년 말)를 차지하는 중동지역에서 분쟁이 악화되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진전될 경우, 세계경제는 물론 한국경제도 흔들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라크전쟁 후 중동질서가 재편되면서 요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라크, 레바논, 이란 등 중동지역에서 사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탈냉전 이후 최대의 위기가 자칫 중동지역에서 출발하여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의 시야가 너무 좁은 나머지 동북아시아를 벗어나지 못하고, 중동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세계정세의 주요 흐름을 보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선진국이 되고자 한다면 이제는 대중동전략, 대유럽전략 그리고 대아프리카전략 등을 포괄하는 세계전략을 갖추어야만 한다. 세계전략으로 국제사회에서 '평화의 촉진자' 역할을 하며 불안정한 지역에 평화를 유지·조성시켜 나갈 때, 상생하면서 무형의 국익을 유형의 국익으로 전환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평화유지활동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도덕적 권위와 리더십을 축적함으로써 유엔 관련 주요 현안 결정 시에도 우리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유엔평화유지활동에의 참여는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필요하게 될 국제사회의 지지와 지원을 확보하는데도 도움을 주는 군사외교적 투자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해외파병을 통해 장병들로 하여금 국제무대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고 인식의 지평을 확대시킴으로써 향후 유엔 평화유지국 내 군사부를 비롯하여 평화유지활동 미션 본부의 사령관, 부사령관, 참모장 등 주요 직책을 수행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한반도 유사시 대비 한국군의 질적 역량도 강화할 수 있다.
'선진평화한국'의 이미지를 세계 도처에 심어 나감으로써 한국기업이 해당 지역에 진출하는데 유리한 여건을 조성할 수 있음도 물론이다. 이라크에 파견된 한국의 자이툰부대가 현지에서 쿠르드 지방정부와 주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을 정도로 親韓化를 이루어내고, 향후 우리기업들이 이라크에 본격 진출 시 타국의 기업에 비하여 유리한 위치에 설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해외파병의 의미는 이렇듯 도의적 명분과 국가이익이라는 차원에서 모두 발견할 수 있다.
앞서가는 일본
해외파병정책과 관련하여 일본의 경우 2006년 6월에 집권 자민당이 '해외파병 항구법'의 초안을 마련하여 제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기존에 자위대의 '부수적인 임무' 차원에서 실시되어 온 국제평화협력업무와 이라크 특조법에 입각한 활동 등을 2006년 12월에 '기본임무'로 설정하고 대외적 역할 확대를 적극 도모하고 있다.
2007년 1월에는 긴급사태대응체제를 강화한다는 명분 외에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체제를 정비한다는 이유로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시켰다. 점진적으로 확대하게 될 자위대의 해외파병에 대비하기 위하여 방위대신 주관하에 통막장과 육·해·공막장 및 방위성 내국국장 등이 참석하는 '국제평화협력 활동 관련 회의'도 매월 1회 개최하기로 하였다.
유엔평화유지활동 관련 해외업무만을 담당하는 '국제평화협력활동지정 방면대'도 신설하고 '북부방면대'를 첫 대기부대로 지정하였다. 이 북부방면대는 2007년 초부터 수송·시설(공병)·후방지원부대를 중심으로 1,260명을 선정, 훈련해 왔는데, 2008년 3월 31일까지 '중앙즉응집단' 소속 '국제활동교육대'와 함께 국제평화협력활동 임무를 담당한다.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주변국들에 대한 침략행위를 통하여 많은 피해를 입히고도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는 일본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적극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며 해외파병을 위한 법·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하고 일본의 국제적 위상 제고를 도모하는 가운데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가해자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수정하지 않은 채 군사대국화를 다시 추진하는 일본이 가고자하는 길과 피해자의 슬픈 역사를 극복하고 과거의 우리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한 민족들을 진심으로 돕고자 하는 '선진평화한국'이 지향하는 비전은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실천적 측면에서 일본이 우리보다 한 발 앞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음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 모두에게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의 자세
현재 우리는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파병을 요청할 경우, 사안이 발생하고 나서야 준비하는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국제사회의 파병요청이 있으면 통상 1개월∼3개월 내에 호응하는 세계적 추세와는 달리 우리의 경우 파병안이 상정될 때마다 개별적인 특별법 형식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회의 동의안 처리까지만 몇 개월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평화유지활동의 임무를 즉시 수행할 수 있는 상비부대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은 탓에 국회 동의안이 처리되고 나서도 몇 개월의 준비기간이 걸린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시급히 해외파병 관련 법·제도를 정비함은 물론, 평소부터 분쟁지역 및 유엔의 정책방향과 평화유지군 파견 예상지역 등을 분석하는 국가적 차원의 평화유지활동 교육·연구시스템과 상비부대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레바논에 파견된 동명부대원까지 포함하여 한국인으로서 활동중인 유엔평화유지군 388 명으로서 오늘날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엔평화유지군 83,312 명의 0.5%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의 국력, 유엔평화유지활동 분담금 기여수준 그리고 우리 군의 규모 등을 고려할 때, 1%인 800명 정도는 파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해외파병을 추진하는 우리의 인식 및 자세와 관련하여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테러와 대량살상무기 확산 등 하나의 국가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다양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간에 힘을 모아 공동으로 안보문제를 풀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많은 국가들이 국제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여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다.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에는 2007년 7월 11일 현재 총 44개 국가가 47,591명을 파견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철군하기로 결정한 우리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 210명의 장병을 파견해 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데,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이해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동의·다산부대는 2002년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이후 24만 명 이상의 현지 주민들과 동맹군에게 의료지원을 수행해 왔으며, 아프가니스탄 결핵환자 진료체계를 구축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럼에도 최근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무장세력이 한국의 민간인들을 납치한 사건이 발생하자 한국정부의 해외파병정책을 우리사회 일각에서 왜곡하고, '미국 하수인'의 '들러리 파병'처럼 매도함으로써 한국정부가 해외파병정책을 통해 여러 지역에서 그 동안 이루어놓은 성과를 흔드는 것 같아 심히 안타깝다. 이국땅에서 고생하며 국위를 선양하는 한국군 장병들에 대한 심각한 모독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가슴 아픈 주장들을 이제는 그만 두어야 한다.
정부입장에서는 분쟁지역에 장병들을 파견하면서 안전을 최대한 강구해야겠지만, 설혹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정책이 쉽게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의 의지와 이것을 뒷받침하는 국민적 의식이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선진평화한국'을 건설할 수는 결코 없기 때문이다.(Konas)
정상돈(박사. 한국국방연구원)
* 이 글은 한국국방연구원의 협조아래 게재한 글임.
- 관련기사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