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정치적 자유보다 더 중요한 경제적 자유

Written by. 김상호   입력 : 2007-07-31 오전 9:55:38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0

 1960년대 이후 35년 동안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자원이 없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루어낸 것으로 많은 후진국들에게 용기와 영감과 통찰력을 제공해왔다. 한강의 기적은 배고픔에 굶주렸던 국민들을 기아로부터 구제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을 선진국의 문턱으로 가뿐히 올려놓았다.

 한국의 성장, 개발독재의 산물?

 그러나 지난 14년 동안 세 번의 소위 민주화 세력들이 정권을 잡는 동안 한국경제를 이끌었던 지도자는 독재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역사의 뒤안길을 쓸쓸히 걷고 있었을 것이다. 이 세력들은 한국경제의 발전을 개발독재의 산물로 단순화시키고 평가절하 함으로써 눈부신 경제발전의 역동성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했다.

 한국이 경제적인 도약을 시작했던 무렵 전반적인 국가상황은 대부분 국민들이 기근에 시달릴 정도로 매우 심각했다. 때문에 1960년대 산업화가 시작되자 농민들이 대규모로 도시로 그리고 공장으로 유입되었다. 대부분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을 제공했던 어린 소녀들을 고용해 국제시장에 저렴한 제품을 공급할 수 있었다. 기술과 자원이 없어 싸고 풍부한 노동력이 유일한 경쟁력의 원천이었다. 이 시기 공장에서 경제성장의 원천을 제공했던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한국의 경제성장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취업과 노동은 강요되지 않았던 자발적인 개인의사 결정에 따른 것이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농촌을 떠나 공장에 취업하는 것은 가난한 가족에게 큰 희망을 주었으며 본인에게도 굶주림과 이를 해쳐나가기 위한 더 힘든 다른 노동의 고단함으로부터 해방시켜준 축복이었을 것이다. 공장에서 어린 딸이 보낸 돈으로 오빠와 동생이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며, 또 그 돈이 소나 농기구를 사 농사를 짓거나 장사하는 밑천으로 사용되어 많은 국민들을 가난으로부터 구제할 수 있었다.

 경제적 자유는 풍요를 가져왔다

 한국은 이제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으로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경제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들은 1960년대에 감히 꿈꿀 수 없었던 소비와 생산 활동을 영위하고 있다. 세계를 선도하는 많은 산업과 기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명품들의 유력한 소비시장으로 주목받고 있을 정도이다. 한국 여행자들은 전 세계를 누비고 있으며, 세계 유명 대학과 중고등학교는 한국 유학생들로 넘쳐나고 있다. 경제성장이 제공한 선택 기회의 확대는 매우 창의적이어서 거의 무한할 정도로 보인다.

 중국은 개방을 시작한 이후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세계 5위의 경제규모를 유지하는 거인으로 성장했다. 중국경제가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에 주로 의존해왔다는 사실은 한국의 경제성장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중국에는 시장경제가 배출한 벼락부자들이 즐비하지만 이들이 제공한 일터에서 땀을 흘리는 셀 수 없이 많은 노동자들도 있다. 이들 두 당사자가 모두 중국 경제를 돌리는 원동력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들 노동자들에게 공장은 혹독한 착취의 장일까? 이러한 일자리를 찾으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도시로 몰리는 사람들에게 이주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음을 생각해보자. 이 일자리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며, 본인들에게는 희망을 주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개방정책이 급물살을 타던 1989년 6월 초 중국에서 천안문 사태가 있었다. 경제적 자유는 확대되었으나 정치적 자유가 크게 억압된 상태에서 공산당의 부정부패, 인플레이션의 급증과 소득격차로 야기된 불만감이 급진 개혁주의자로 학생들의 추앙을 받던 후야오방의 사망으로 표출되었다.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은 계속된 시민ㆍ학생들의 시위를 무력으로 제압했으며, 이 과정에 천안문에서는 1400여 명의 사망자와 1만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덩샤오핑이 권력에 눈이 먼 사람이었기에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졌을까? 마오쩌둥이 벌인 권력투쟁의 희생양으로 인고의 세월을 거쳐 개방을 이끌어온 그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렇게까지 현상유지를 원했던 것일까? 그것도 노동자 천국의 파수꾼임을 자임하는 공산당의 수장으로서 말이다. 아마도 국가의 앞날과 노동자들의 권익이 정치자유를 억압하는 체제를 통해 극대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하튼 중국은 정치적인 자유를 억압하는 길을 택했고, 지도자들은 전 세계로부터 그에 대한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 후 중국은 유래 없는 경제성장을 계속했으며, 국민들은 예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 축적된 부는 국민들을 세계 곳곳에 여행할 수 있게 했고, 가장 많은 유학생을 세계로 내보내게 했으며, 또 중국을 세계적인 명품의 주요 소비시장으로 부각시켰다. 마오쩌둥 시절 자본주의에 물드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금지되었던 해외여행과 외국유학 그리고 중국시장에 감히 들어올 수 없었을 사치품들이 넘쳐나는 달러로 인해 자유롭게 소비되고 있다. 경제적인 풍요가 해외여행과 소비의 자유라는 개인행동을 제약하는 정치적인 자유의 폭을 확장시킨 셈이다.

 밀튼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경제적인 자유는 본질적으로 자유의 매우 중요한 한 부분으로 그 자체로 자유의 주요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경제적인 자유는 정치적인 자유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갈파했다. 모든 것을 계급투쟁으로 해석해 갈등을 유발시키길 좋아하는 정치인들과 인생의 물질적인 측면을 경멸하는 지식인들은 흔히 경제적인 자유를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경제적인 자유는 자유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수단임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프리드먼의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해외여행이 자유로운 국가에서 돈이 없어 다른 국가를 여행하지 못하는 것은 돈이 있으나 정치적으로 여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해외에 가지 못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어느 경우이든 이 사람에게 해외에 갈 수 있는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과 중국 경제의 성장 경험이 경제적인 자유의 확대가 가져오는 그 결과의 풍요로움을 보여준다는 점은 쉽게 이해된다. 하지만 경제발전이 자유 그 자체를 본질적으로 확대시켰다는 사실은 늘 간과된다. 한국의 경우 1960년대 이전 대부분 국민들은 단순한 호구지책에 일생을 억매여야 했으나 경제성장은 이들에게 다른 많은 것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했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시시콜콜 모든 것을 국가의 뜻에 따르던 예속상태로부터 국민들을 해방시켜 이들을 모든 경제활동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경제적인 자유인으로 끌어 올렸다. 이 두 나라의 성장은 경제적인 자유가 정치적인 자유를 신장시킴을 잘 보여준다. 한국의 경우 경제발전이 민주화를 선도했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를 보기 위해서는 가난한 국가들에서 정치적인 자유를 찾을 수 없음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마찬가지로 중국 국민들이 해외여행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는 점은 이전에 믿기 어려운 정치적인 자유의 확장임에 틀림없다.

 민주화를 외치며 자유를 억압하나?

 역사는 자본주의가 정치적 자유를 위한 필요조건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즉 정치적 자유는 분명히 자유시장제도와 함께 했으며, 자본주의제도의 발달과 함께 이루어졌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에서 경제성장을 이끈 박정희 전 대통령과 중국 개방을 통해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덩샤오핑은 그들의 조국에 자유에 대한 근본적인 토대를 제공한 민주화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들이 본질적으로 추구한 것은 경제 성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자유의 확대로 이어졌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성장으로 결국 더 이상 국민들의 정치적인 열망을 누를 수 없을 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정치적인 억압으로 확대된 경제적인 자유를 마냥 억누를 수 없음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덩샤오핑은 경제성장이 경제적인 자유를 보장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만 가능함을 사회주의 경제의 참담한 실패를 통해 뼈저리게 배웠을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눈부신 성공도 큰 깨달음을 주었을 것이다. 실용주의 노선을 걷던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들이 젊음을 바쳐 믿어왔던 공산주의 교리를 쉽게 저버리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들이 예측한 대로 경제적인 자유의 확장은 중국경제의 팽창을 가져왔다. 이들이 미처 예측하지 못한 것은 이 자유의 확장으로 인해 정치적인 자유도 점차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 중국의 변화로부터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소위 민주화 세력들이 주도한 한국의 최근 정권들은 국가운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들 정권의 일관된 특징은 “성장보다 분배”였다. 이를 위해 현 참여정부는 세금을 꾸준히 더 걷었으며, 정부규모를 엄청나게 확장했으며, 각종 규제도 증가시켰다. 이 집단이 예측하지 못한 것은 이러한 정책이 국민들의 경제적인 자유를 크게 훼손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화를 자처한 세력들이 자유를 억압하는 정책을 계속해 펼쳐온 꼴이다.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정부가 부의 지역적인 분배를 위해 공장입지를 제한할 때 기업 의사결정의 자유는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투자를 제한하는 각종 정책으로 투자기회를 놀칠 경우 기업의 자유는 다시 위축되었다. 이 정권이 부의 계층 간 재분배를 위해 더 많은 소득세를 걷었기 때문에 가처분 소득이 줄어 과거 할 수 있었던 많은 일을 포기해야 했던 국민들에게 자유는 현저히 희생되었다. 높아진 물품세로 소비를 줄여야만 했기에 국민들의 소비 선택의 자유는 거듭 침해되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제약으로 공장이 문을 닫고 일자리가 줄어 국민들의 자유는 회복하기 어려운 큰 상처를 입었다. 세금을 걷어 복지를 늘리려는 선의의 정책들이 결국 시민의 자유를 제약하는 결과를 가져온 꼴이다. 이제라도 정책입안자들은 시민들이 경제적인 자유를 정치적인 자유 못지않게 더 열망하고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Konas)

 김상호 / 호남대 교수
 출처: http://www.cfe.org/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