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전의 양상과 우리의 대응 ①
아래 글은 '조화정치연구원장' 김강녕 박사가 성우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自由' 8월호에 기고한 논문입니다. 미래전의 양상을 예측하고 대비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사료되어 2회로 나누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I. 서론
전쟁은 인류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고 인류역사가 지속되는 한 피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치른 후 인류는 세계평화가 보편적 가치임을 유엔헌장 등을 통해 규정하기도 했지만, 전쟁은 국제정치상의 투쟁수단 중 가장 적극적이고 가장 결정적인 최후수단으로서 존재해왔다. 모든 전쟁이 인간의 본능인 경쟁의 본능, 파괴의 본능, 투쟁의 본능, 질투심, 자기보존의 본능과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전쟁의 형태와 양상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지식/정보사회의 등장으로 안보의 패러다임도 변화되고 첨단무기 확보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즉 안보의 패러다임은 ①군사중심에서 경제, 기술, 환경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안보개념’으로 확대, ②영토 개념을 벗어나 ‘우주 및 사이버’ 공간까지 전장영역의 확장, ③양적 대군주의(量的 大軍主義)에서 질적 정예주의(質的 精銳主義)로 군사력 건설 개념 전환 등 패러다임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에 따르면, 제1물결시대(농업혁명에 따른 농업사회)의 전쟁형태는 백병전이나 근접전쟁이었고, 제2물결시대(산업혁명에 따른 산업사회)의 전쟁형태는 대량파괴ㆍ대량살륙전이었으며, 제3물결시대(정보혁명에 따른 정보사회)의 걸프전 등과 같은 하이테크전쟁으로 상정되고 있다.
미래전의 양상은 작금의 현대전에서 벌어지고 있다. 21세기 최초의 전쟁이 된 이라크전은 걸프전과 아프가니스탄전 이후 더욱 발전된 감시 및 통신위성 등을 동원한 고도의 정보력과 정밀타격력에 의한 네트워크 중심전, 전자정보전에 입각하여 최소한의 인명피해를 목적으로 한 전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걸프전(1991), 코소보전(1999), 아프가니스탄전(2001), 이라크전(제2걸프전, 2003)에서 볼 수 있는 정밀폭격도 미래전의 양상을 예견케 해주고 있다. ‘점표적 공격’(pin point strike)라고 할 정도로 거의 오차 없이 원하는 적의 주요 군사시설을 민간인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공격은 고도의 정보능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수행이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걸프전 이후에 군사전략가들은 향후 새로운 전쟁양상으로 정보전 개념을 발전시켰다. 또한 고도의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을 여러 형태로 설명하고 있다. 걸프전이 발생한 시점은 묘하게도 냉전직후였기 때문에 냉전시대와는 분쟁의 원인이 다르다는 것도 새로운 특징이라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전쟁이란 상당한 기간동안 상당한 규모의 군대에 의해 수행되는 정치집단, 특히 주권국가간의 갈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2001년 9ㆍ11테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주권국가로 보기 어려운 테러집단에 의해 수행되기도 하고, 1967년 중동의 ‘6일전쟁’이나 2003년 3~4월에 걸쳐 사실상 3주일만에 결판이 난 ‘이라크전쟁’에서 보듯이 전쟁기간도 짧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글은 이러한 미래전의 양상과 우리의 대응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무기와 전쟁의 발전사의 개요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II. 무기와 전쟁의 발전사
미국의 역사학자요 철학자인 윌 듀란트(Will Durant)는 그가 쓴 '역사의 교훈'(The Lessons of History)에서 “역사에 기록된 3,421년 중에 전쟁이 없었던 해는 268년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전쟁과 반전쟁'(War and Anti-War)에서 1945년부터 1990년까지의 2,340주 동안 지구촌에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단 3주일뿐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전쟁보다 더 합리적인 분쟁해결 방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로서 전쟁의 불가피성을 입증해준다.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고, 이러한 견지에서 본다면 현대의 우리는 분명히 평화가 아닌 전쟁의 시기에 살고 있다. 전쟁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전쟁은 인간간의 투쟁이며, 인간이 인간에게 돌을 집어던지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상고시대에는 돌과 몽둥이를 들고 싸움을 했으나 청동기와 철기의 출현은 창과 칼이라는 무기체계의 변화를 가져왔다. 무기도 화약의 발명과 함께 제철기술 진보로 급속히 발달하여 오늘날과 같은 소총․대포 등이 등장하고 같은 기간에 내연기관 발명으로 자동차와 비행기가 만들어졌으며 이에 따라 제1차 세계대전에는 전차와 전투기가 전장에 그 모습을 나타냈다.
무기의 발달과정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혁신은 제2차 세계대전 말에 세상에 태어난 원자폭탄이다. 1945년 8월 6일 일본의 히로시마(廣島)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그 위력이 20킬로톤(㏏)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129,500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처럼 뼈아픈 교훈에도 불구하고 전후 미국과 소련의 군비경쟁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보다 1천 배 이상의 파괴력을 가지는 수소폭탄을 출현시켰다. 이미 등장한 미사일은 이 수소폭탄과 결합되어 30분 이내에 인류를 전멸시킬 수 있는 대륙간 탄도탄을 만들어냈다. 이어서 인공위성과 우주선의 출현으로 이젠 전장은 우주공간으로까지 확대되어 우리가 TV에서 즐겨보던 ‘별들의 전쟁’도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 눈앞에 전개될 전망이다.
인간이 철제로 된 창칼을 무기로 사용하면서부터 전쟁은 이미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작전적ㆍ기술적ㆍ군수적 차원의 전략과 전술이 가미된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마라톤 전쟁은 양익포위 대형으로 승리했고 그리스는 ‘사리사’(Sarissa)라고 하는 적보다 더 긴 14피트(ft) 장창으로, 로마군은 ‘글라디우스’(Gladius)라는 양날의 검으로, 각각 상대를 물리쳤다. 중세의 징기스칸은 고도의 기동력을 구사하는 기마전술과 효과적인 기습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평정했으며, 16세기 스페인은 범선을 이용한 해군전술로,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과 조선총통/천자총통 등의 화포로 일본 수군을 제압할 수 있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전쟁양상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산업기술 발달로 군수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했고 시민혁명의 열기를 전쟁에 투입시켜 총력전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제1, 2차 세계대전은 무기체계의 획기적인 발달을 가져왔고 대량피해가 불가피해졌으며 국가간의 연합에 의한 국제전쟁의 형식을 띠게 되었다. 20세기는 열전과 냉전이 중첩되는 시기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쟁원인에 포함되지 않았던 이데올로기, 인권, 문화의 충돌 등이 전쟁원인에 추가되었다. 이후 정보화시대가 열리면서 전쟁양상도 정보, 기술지약형의 첨단무기체제에 의존하는 정보전의 양상으로 변화해왔다.
이처럼 전쟁은 인간의 욕망과 정치적 야망, 과학기술의 발달과 무기체계 그리고 국가이기주의 및 세계질서 변화에 따라 양상이 달라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일단 벌어진 전쟁에서는 반드시 승리하기를 갈망한 나머지 전쟁기술의 발달과 전쟁양상의 변화를 거듭 시도해왔다. 동일한 방법으로는 다음 전투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계속) (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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