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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관계 관망법

Written by. 길정우   입력 : 2007-09-14 오후 2:3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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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차기 회담 날짜만 잠정적으로 잡아두고 활동이 뜸한 듯싶더니만, 와중에 북한과 미국 간에 관계정상화를 위한 양자회담이 제네바에서 열렸다. 회담 결과를 풀이하는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대표와 김계관 북한측 대표의 발언에 약간의 뉘앙스의 차이는 있으나, 북핵문제 해결을 포함한 양국 간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로드 맵에 대충은 의견의 일치를 본 것 같다.

 게다가 10월초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으니 북핵문제를 포함해 한반도 정세를 들여다보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 모처럼 긍정적 기운들이 감지되고 있다. 그런데 1993년 3월 북한이 일방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탈퇴를 선언하면서 시작된 소위 ‘북핵위기’를 지난 15년 가까이 지켜본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어떠한 형태든 북한의 급작스런 태도 변화에는 경계심을 갖고 있다. 단순히 북한체제의 경직성이나 이념적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북한이 보여온 행태가 여전히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1994년 10월 북미기본합의 이후 북측이 수없이 약속을 어겼을 뿐 아니라 2002년 10월 북한의 농축우라늄 개발 의혹으로 불거진 2차 북핵위기 역시 믿지 못할 북한에 대한 의구심으로 남아있다. 물론 이들 가운데는 15년이란 세월 동안 미국정부 역시 북한과의 약속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며 현 사태의 책임을 일부 미측에 두고 있는 전문가들도 있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이 갖고 있는 한 가지 공통점은 북핵 위기가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고 게다가 북미관계 정상화라고 하는 한걸음 더 나아간 논의까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말의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라는 집단이 대개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면서 자신들의 식견을 부각시키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수년간 상황의 낙관적 진전에 유보적 자세를 취해왔던지라 입장을 바꾸기가 그리 쉬운 일도 아니다. 필자 역시 한국인이긴 하지만 대개 그런 입장을 취해 왔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 변화에 대해 허탈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반세기 이상 유지해온 북한체제의 ‘무게’가 지도자 한 사람의 결단이나 주변상황의 변화에 따라 갑작스레 달라질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이 아닌 체제와 이념의 무게란 그리 가벼운 게 아니다. 반세기만에 정신차려 인민들을 위하고 나라를 살려보겠다고 지도자가 나선다고 해서 권력주변의 기득권자들이나 정부나 체제의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변화의 길을 걷게 되진 않는다.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북한이 마음먹고 한국을 비롯한 역내 국가들이 바라는 바대로 핵무기를 포기하고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결심을 한다면 고맙고 바람직한 일이나 상황이 뜻대로 풀릴 것 같지는 않아 안타깝다. 전환과 변화의 시기를 조금 놓친 게 아닌가 싶다는 뜻이다.

 아울러 북핵 포기와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닥쳐올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수용하기엔 북한측에 그 고통이 너무도 클 것이다. 자신들이 앞세운 논리와 주장에 수정을 가하고, 때로는 과거의 사고를 전적으로 부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북한이 관계개선을 그토록 바라는 미국정부가 평양이 원하는 바대로 호락호락 북측 주장에 밀려가진 않을 것이다. 한국정부가 북측을 옹호하면서 워싱턴을 설득하고 도쿄를 아우른다고 해도 남북한이 원하는 상황이 쉽게 오진 않을 것이다. 더욱이 한국내부에서의 반발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이 진정 바라는 것은 북한 내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해체하고 나아가 인권개선을 포함한 정치민주화과정에 진입하는 등 북한의 완전한 굴복이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한국정부가 미국의 대북정책에 걸림돌이 돼선 안된다는 것이 워싱턴의 생각이다.

 한국정부에 대한 미국의 불신 때문이라기보다는 과거 수십 년 간 상대해 본 경험에 비춰볼 때 한국민들이(남북한을 포함해) 언제든 미국의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미동맹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놓고 최근 적지 않은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양국관계를 지켜보는 전문가들의 우려 때문이다.

 결국 남북관계가 북미관계와 균형적인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원론적인 주장이 아직까진 설득력이 있지만 이같은 수사학은 남북정상회담이나 한국 내 정치상황의 변화에 따라 사태를 보는 우리 국민들의 판단을 흐려놓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닥칠 때 일수록 동북아에서의 한반도,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좀 더 큰 지정학적이고 전략적 관점에서 우리의 처지를 보는 게 현명하다.

 그리고 현재로선 한두 가지 잠정적인 결론만 도출하는 게 현명할 듯싶다. 첫째, 북한 핵무기는 어떠한 경우라도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용납할 수 없다. 둘째, 남북관계 개선은 우리의 항시적인 관심사이지만 한국의 역량을 감안할 때 미국이란 존재, 그리고 한미동맹의 전략적 의미는 상당 기간 중시할 수 밖에 없다. 셋째, 북미관계 정상화는 상황 변화에 따라 결과로서 닥쳐오는 것일 뿐 우리가 나서서 그 속도를 조정하려 해선 안 된다. (Konas)

 길정우(중앙 m&b 대표이사)
 출처 : 평화논평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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