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의 잠수함 전력과 기술(1)
잠수함의 개요
잠수함은 수중을 운항하면서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해군의 특수 수중 함정이며 프랑스 소설가 줄 베르네(Jules Verne)의 해저 2 만리, 독일의 유(U) 보트 등으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서브마린(Submarine) 혹은 서브(Sub)라고 알려져 있다. 함정의 특성을 정의하는 잠수함이라는 용어는 극 소형에서 초 대형 군사용 전투 잠수함, 과학 기술 개발 잠수정, 잠수정 구조정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특성의 잠수함을 의미하는 용어로 혼용되고 있다.
잠수함은 수중을 운항하기 때문에 발견되기 전에는 은밀성을 유지하면서 각종 군사작전을 수행한다. 적의 주요 거점에 대하여 기습공격, 정찰 및 첩보수집 및 특수전 등의 용도로 무제한으로 사용되며, 수중의 물리적인 특성으로 인하여 체계적인 탐지가 어려워 군사적인 목적으로 연구 개발되어 왔다. 이러한 통상적이고 전설적인 추측이 2차대전 때의 유보트(U-Boat)의 활약과 1982년의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단 한척의 영국 핵잠수함 HMS Conqueror호가 아르헨티나의 승조원 1,100여명의 대형 순양함 General Belgrano호를 2 기의 재래식 어뢰 공격으로 격침시킴으로써, 전쟁의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잠수함의 위력을 세계에 확인시켜 준 역사적 사실이 있다. 순양함 General Belgrano호의 격침으로 포클랜드 전쟁의 아르헨티나 측 전사자의 절반을 상회하는 323여명의 인명 손실을 가져왔으며 770여 명이 구조되었다. 이후 아르헨티나의 항공모함을 비롯한 모든 해군 함정이 부두에 정박하게 되어 아르헨티나의 해군력이 마비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모든 수상함과 잠수함은 함정이 수면에 뜨는 양성 부력을 필수적으로 가지나, 잠수함은 수중으로 잠항 할 때에 해수를 유입, 방출함으로서 잠수함의 부력을 조절하는 부력조절 공간(MBT, Main Blast Tank)을 구비하고 있으며 잠수함의 정밀 수심 결정과 앞뒤 경사와 균형을 조절하는 수심 조절 탱크(DCT, Depth Control Tank)를 사용하여 수중 운항을 가능하게 한다. 잠수함이 잠항하면 잠수함의 내부는 대기압을 유지하게 되나 외부는 수심, 염도 및 해수 밀도 등의 영향으로 잠수함 외부 선체는 4-10 Mpa의 압축력을 받게된다. 이러한 큰 압력을 선체에 균일하게 배분하기 위하여 잠수함 선체의 단면은 완전한 기하학적인 원형이 되어야 하며, 이러한 선체의 완전한 원형이 변형되면 그 장소에 해수 유체의 하중이 집중하게되어 잠수함의 안전에 치명적인 위험을 가져온다.
잠수함의 선체는 전통적으로 시거형의 눈물 방울(Tear Drop Type)형 선체로 개발되어 수중 항해시 저항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켜 주나, 수중 운동 특성을 방해하고 수상 항해시 잠수함의 선체 저항을 증가시키는 단점이 있다. 2차 대전 후반까지 잠수함의 수중 속도가 10노트 미만일 때는 시거형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군사 기술의 발전으로 항공기의 정찰 능력이 확장되고 잠수함의 수중 속력이 획기적으로 상승하여 잠수함의 잠항 거리와 시간이 길어지자, 수중 저항과 운항 소음의 감소를 위하여, 현대에는 시거형 선체로 복귀하여 잠수함이 건조되고 있다. 현대의 잠수함은 음향 소음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해 잠수함 선체 외부를 음파를 흡수하는 고무 코팅을 하거나 특수강판을 사용하여 제작한다.
제 1차대전 초기부터 잠수함의 크기가 증가함에 따라 잠수함 내부와 외부의 압력의 차이가 심각하게 증가하게 되었지만, 선체를 유선형으로 유지하면서 선체의 강도와 운동 성능을 보장하려는 모순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잠수함 선체를 전체를 한 개의 구조로 구성하는 단일 선체(Mono Hull)와 압력선체(Pressure Hull)를 만들고 운동 성능을 위한 외부선체를 접합하는 이중 선체(Double Hull)의 설계로 구분되어 설계된다. 이중 선체가 구조, 안전성 및 운항 소음의 감소면에서 탁월한 성능을 보장하여주나 특수한 금속 재료의 사용과 고도로 정밀한 용접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금속 산업이 발달하고 생산 단가가 낮은 소련에서만 이중 선체를 사용하고 미국을 위시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눈물 방울형 단일 선체를 사용한다.
잠수함의 잠수 능력은 잠수함의 압력 선체의 강도에 비례하며, 단순히 압력 선체의 강도를 높이기 위하여 두꺼운 강판을 사용하게 되면 선체의 무게가 증가하여 전투 함정에 필요한 무기 및 장비의 탑재가 제한되므로 잠수 성능은 금속 공학과 선체 건조 기술의 발달과 비례하게 된다. 1차 세계 대전 때에는 탄소 강판을 주로 사용하여 수심 100m 이내 정도가 잠수함 잠수 수심의 한계이었으며, 2차 대전 중에는 고강도 합금(Alloy Metal)이 발명되어 200m 까지 잠수가 가능하게 되었다. 고강도 합금 강판은 현재에도 사용되며 현재의 잠항 수준은 250 – 400 m 정도가 한계이며, 이 이상은 내부 구조를 간략화한 특수 설계를 필요로 한다. 소련에서 티타늄을 이용한 군사용 특수 합금을 개발하여 건조한 K-273 Komsomolet 는 1,000m 까지의 잠항이 가능 하며, 소련의 Alfa Class 잠수함은 1300m 까지 잠수가 가능하다.
잠수함 압력 선체의 제작은 선체가 수중에서 수백만 톤의 수압을 견디어야 하므로 고도의 조선 건조 기술이 요구된다. 압력 선체가 완전한 원형이면 이러한 대규모 수압이 선체게 균일하게 분포되어 선체가 안전하게 되나, 만약 완전한 원형이 조금이라도 변형되면 그 지점에 하중이 집중되어 선체의 균열을 발생시키게 된다. 만약 압력 선체의 원형이 2.5Cm(1 Inch)변형되면 잠수함의 잠수 및 운항 성능이 30% 저하되는 심각한 영향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잠수선체의 용접과 건조는 완전하고 무결점이 필수적이며, 선체의 모든 접합 부분에 대하여 세가지 이상의 다른 방법으로 강도를 점검하는 건조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된다. 이러한 완전성을 추구하는 건조 과정의 채택으로 최신예 잠수함의 건조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최신 미국의 공격 핵 잠수함인 버지니아급 잠수함의 건조비가 26억 달러로 배수량 1톤의 건조에 20만불이 소요되는 상황으로 고도의 기술 비용을 추측할 수 있다.
초기의 원시적인 잠수함이 대부분 인력으로 추진되었으나 1863년 프랑스의 프론져(Plongeur)호가 최초로 압축공기를 이용하여 기계적인 장치를 사용한 간단한 추진력을 얻었으며, 다음해 스페인의 익테뇨(Ictineo)호는 산소와 화학물을 연소시켜 발생한 스팀으로 추진하였으며, 이 장치는 1940년 독일의 잠수함 V-80 과 U-791에 실험적으로 개량형이 사용되었다. 그후, 잠수함의 유용성과 전략적 가치가 확인되어, 잠수함 전술이 해군 작전의 중요 분야로 결정되었다. 이에 상응하여 수중 항해에는 충전이 가능한 축전지를 이용한 전기 추진이 채택되고, 수상 항해에는 대기중에서 동작하는 내연기관을 이용한 추진방안을 확정하고, 전술적으로 잠수함 선체가 수면에 부상하지 않음으로 어느정도의 은밀성을 유지하면서, 축전지를 충전하는 목적으로 엔진을 동작하는 중간 단계를 전술적으로 고안하여 중요한 잠수함 작전의 한 형태인 스노켈(Snorkel) 단계를 개발하게 되었다.
이러한 잠수함의 추진방식이 합리적으로 채택되자, 고성능 축전지 기술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내연기관의 연료도 잠수함의 화재 및 효율을 고려하여 초기의 가솔린에서 파라핀으로 변경되고, 최종적으로 디젤 엔진이 잠수함의 기본 엔진으로 확정되어 왔다. 초기에는 엔진과 추진 모터가 클러치로 연결되었으나, 이후 엔진은 발전기만 구동시켜서 전력을 발생시키고 발생된 전기 에너지를 이용하여 수중추진을 위한 축전지를 충전하고 모타를 구동하여 잠수함을 추진시키는 형태로 발전 하였다.
20세기의 후반에 들어오면서 소련과 미국 간의 냉전이 깊어지고, 전략핵에 대한 긴장이 높아지면서 핵잠수함이 출현하게 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원자로 소형화 기술을 이용하여 원자로 1-2기를 사용하여 추진, 식수, 산소를 무제한 생산하며, 최신예 관성항법 장비를 사용하여 무제한 항해가 가능한 가공할 잠수함 체계가 탄생하게 되었다. 단지, 잠수함 승조원의 고독, 향수 및 가족관계를 고려하며, 핵 잠수함내에 비축한 식량의 공급 능력이 잠수함의 최대 잠항 작전 능력이 되는 것이다.
재래식 디젤/전기추진 잠수함은 축전지의 한계로 인하여 잠수함의 운항 속도에 따라 최신의 잠수함이라도 수중에서 최대 3일 이상을 잠항할 수 없다. 이것은 은밀성과 비 탐지성을 생명으로 하는 잠수함에게는 치명적인 한계이다. 원자력 잠수함의 규모나 건조비가 미국이나 소련 등 강대국 외에는 보유할 경제적 능력과 전술적 가치가 없기 때문에, 재래식 잠수함에 부가 장치나 기술을 사용하여 재래식 잠수함의 수중 잠수 작전 운용 한도를 증가시켜 15일 이상 수중에서 작전할 수 있는 대기와 무관한 엔진 기술(AIP, Air Independent Propulsion)을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수중에서 디젤 기관의 배기 가스를 처리한 후, 잠수함 내에 저장된 산소를 혼합하여 수중에서 디젤 기관을 동작하여 추진력을 얻는 시도로서 현재 AIP 엔진의 개발이 많은 성과를 내고 있으며, 미래의 잠수함에 적용이 예견되는 추진장치로 펌프제트(Pump Jet) 분사, 전자기력(MHD, Magneto-Hydrodynamic Drive)을 이용한 추진에 대한 시도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잠수함전(戰)의 역사
영국의 제임스 1세를 시봉하는 네델란드인 드레벨(C.J. Drebbel)이 잠수함의 발명자인 윌리엄 보네(William Bourne)의 설계를 따라 1600년 최초의 잠수정을 건조한 것이 공인된 기록이며 잠수정의 세부 구조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1648년에 이미 전략 연구가인 영국의 비숍 윌킨스(J. Wilkins)는 그의 저서 수학의 마술 (Mathematical Magick)에서 잠수함의 은밀성과 비탐지성을 예견하고 미래 잠수함의 전술적 발전을 예언하였다. 최초의 군사적인 잠수함은 1775년 미국의 부시넬(Bushnell)이 인력으로 추진되는 일인용 잠수정 Turtle 을 설계하였고, 최초로 스크류를 이용하여 추진되며, 수중에서 독자적인 운항이 가능한 최초의 잠수정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 잠수정은 미국 독립전쟁 중 1776년 뉴욕항에 정박 중인 영국 함대의 기함(Flag Ship)인 이글호를 폭파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1800년, 프랑스는 풀턴(R. Fulton)이 설계한 인력 잠수함을 건조하였으나 시운전은 하지 않았다. 영국이 같은 해 풀턴의 설계를 참고로해서 잠수함을 건조 시험하였다.
미국의 남북 전쟁시, 북군은 프랑스에서 설계한 잠수함 엘리게이터(Alligator)호를 최초로 전투에 투입하였다. 엘리게이트는 압축공기와 공기정화 장치를 사용하였으며, 적의 함정에 폭약을 설치하여 폭파시키는 특수부대 인원을 파견/귀환 시키는 특수요원 출입 시설을 최초로 고안 시도하였다. 앨리게이트(Alligator)호는 전장이 14.3 m 직경이 1.2 m 이며 승무원은 20 명으로, 초기에는 수중에서 노를 사용하여 추진하였으나, 후에 톱니바퀴 크랭크를 이용한 스크류 장치를 설치하였다. 남군의 최초 잠수정은 전장 10 m 크기의 파이오니어(Pioneer)호로서 전투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남군의 다른 인력 잠수정 헨리(Hunley)호는 남군의 항구를 봉쇄하고 있는 북군의 함정을 공격하기 위하여 폭약을 은밀히 적선에 부착시킨 후 시간이 경과된 후 폭파시키는 공격을 시도하였다. 헨리(Hunley)호는 1864년 2월 북군의 호사토닉(Housatonic)호를 찰스톤 만에서 격침시킴으로서 역사상 잠수함이 함정을 격침시킨 첫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미국의 남북 전쟁에서 최초로 잠수함이 해전에 사용되었고, 결과적으로 전세의 결정에는 영향을 주지 못하였으나 다양한 잠수함 전술의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서 미래의 잠수함의 전략, 전술적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주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최초의 잠수정은 1865년에 대스페인 전쟁(1864-1866)시 취역한 칠레의 플레크(Flach)호로서 독일의 조선 기술자인 칼 프레크(K. Flach)가 건조하였으며, 1866년 시운전 중 침수되었다. 19세기말 기계적인 장치로서 추진되는 최초의 잠수정 플론져(Plongeur)호가 1863년 프랑스에서 진수되었으며, 평방 인치당 180 파운드(180 PSI)의 압축 공기를 사용하여 추진력을 얻었다. 내연기관을 사용한 최초의 잠수정은 스페인의 몬트레올(N. Monturoil)이 설계한 익티노(Ictineo) 2호 이며, 초기에는 1864년 진수된 16인승 인력으로 추진하는 시스템을 사용하였으나 1867년 대기를 사용하지 않는 스팀 엔진으로 개조하였다. 익티노 2호는 2 인승으로 전장이 14m에 이르며 수상 항해시에는 스팀 엔진을 동작하고, 잠수시에는 30m 까지 잠수를 하며 2 시간여 동안 수중 작전을 수행할수 있다. 1870년 프랑스의 작가 쥴 베르네(Jules verne)가 해저 2만리(20,000 Leagues Under the Sea)라는 과학 소설을 발표하여 전세계 과학자와 해양 발명가들에게 혁신적인 미래의 잠수함에 대한 많은 상상과 기대를 던져 주었다.
최초로 다수의 잠수함이 연속해서 제작된 때는 1881년 폴란드의 발명가 드제비스키(S.Drzewiecki)가 제작한 인력으로 추진되는 잠수정으로 50 척이 건조되어 러시아에 판매되었으며, 그는 1884년 전기로 추진되는 잠수정을 건조하였다. 1886년 노덴펠트(Nordenfelt)는 오토만 터키제국의 해군을 위하여 압델회미드(Abdulhamid)호를 설계 제작하였으며, 잠수함 역사상 수중에서 어뢰를 발사한 최초의 잠수함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노덴펠트는 영국의 발명가인 가레트(G.Garrett)와 협조하여 스팀으로 추진되는 노덴펠트 1호를 건조하였으며 전장19.5m 무게 56톤에 이르며 240 Km의 항해 능력이 있으며 1발의 어뢰를 장비하고 있다. 터키의 잠수함 구매를 염려한 그리스가 구매하였으며, 개량된 노던펠트 2,3호는 전장이 30m로 2기의 어뢰 발사관을 장착하고 있다. 노던펠트(Nordenfelt)의 야심작인 노덴펠트 4호는 2 기의 추진모타와 2기의 어뢰 발사관을 가진 잠수정으로 소련에 판매된 후에 안정성의 문제가 발견되었다. 그후 1888년 스페인에서 수중 속도가 10노트에 이르는 잠수정이 제작되었고, 프랑스에서는 가장 완전한 성능의 군사용 잠수함이 건조되어 2,000회의 잠수를 성공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잠수정이 개발되었으나 항해 중 축전지의 재충전과 대기 회로의 기술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여 제한적인 잠수함의 전술적 운용에 머물고 있었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세계 각국에서 잠수함의 전술적 효과를 확신하게되어 잠수함의 기술과 전술적인 진보에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디젤기관과 축전지를 이용한 추진방식, 페리스코프를 사용한 잠수함 마스터와 이를 고려한 선형의 설계 방식이 잠수함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였다. 이와 같이 잠수함의 성능이 향상되고 군사적 상황에 따른 해군에서 잠수함 전술의 중요성에 대한 개념이 부각되자, 각국에서 기술 개발과 잠수함 전술 개발을 위한 많은 실험과 훈련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게 되고, 이러한 경향은 곧 이어 발생되는 세계 제 1차 대전의 전개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1895년 아일랜드의 발명가 홀랜드(J.P.Holland)가 최초로 안전한 디젤/축전지 추진 시스템을 구비한 잠수함을 설계하여 제작하였고, 1900년 4월 미 해군은 홀랜드4호 잠수함을 구매하여 미 해군의 최초의 잠수함 USS Holland/SS-1으로 취역시켰다. 1902년 홀랜드는 잠수함에 대하여 미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특허(US 708.553)를 부여 받았으며, 많은 그의 잠수함들이 미국, 영국, 소련과 일본에 판매되었다. 1900년에 취역한 프랑스의 잠수함 나발(Narval)호는 200톤으로 스팀 엔진과 전기 추진을 사용하는 잠수함으로 100마일을 운항하며, 10마일을 잠수하여 작전할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1904년에 가솔린 엔진을 디젤로 개조한 아이그레(Aigrette)호는 1914년까지 74척이 건조되었다.
1914년부터 시작된 세계 제1차 세계대전은 1918년 독일이 강화를 조건으로 항복할 때까지 해상에서는 잠수함의 전략, 전술적 운용이 처음으로 적용되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핵심 전력으로서 미래 잠수함 전략 전개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잠수함은 그때까지 개발된 디젤/전기추진방식의 확립과 미국-영국의 주 보급로인 대서양을 주 전장으로 하였다. 독일 해군의 우수한 유보트 잠수함의 건조와 전술적 운용 등을 기반으로 독일은 영국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대서양에서의 무제한 잠수함전을 전개하였다. 결과로 영국의 전함 4척(Formidable, Dreadnought, Triumph, Majestic)과 순양함 5척(Pathfinder, Abouker, Cressy, Hogue, Hawke)을 포함하여 민간, 군함정 5,000여척이 침몰되고 15,000여명의 인명 손실이 발생하므로서 막대한 피해를 당하게 되었다. 독일 측에서도 유 보트는 개전 초기에는 20여척의 소규모였으나 전쟁 중 345척이 건조되어 작전에 참여하였으며, 유보트도 178척이 침몰, 파괴되어 13,000여명의 잠수함 관련 요원 등 5,000여명의 인명 손실을 가져왔다.
무제한 잠수함전 중 괄목 할만할 전과는 유보트(U-Boat)1척이 1-3 발의 직진 어뢰로 당시의 거함인 전함(23,000톤급)과 순양함(13,000톤급)을 격침시키는 가공하는 위력과 독일에서 출항한 유보트가 5개월 동안 미국 볼티모어의 체사픽 만에 침투하여 27척의 함정을 격침시키고 17,5000 Km를 항해한 후 독일에 귀환함으로서 미래 잠수함전의 귀감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전이 확실한 전과를 내기 시작한자, 연합군은 대 잠수함전에 필요한 현대적 소나의 원시적인 형태인 하드로폰(Hydrophone), 공격무기인 폭뢰(Depth Charge)와 기뢰(Mine) 등을 발명하여 실전에 투입하고 항공기에 의한 정찰과 공격을 시도 하였다. 유명한 잠수함 전 역사의 아이러니로서, 연합군의 독일군 포로 중에는 연합군에 의하여 격침된 유보트 UB 68 의 젊은 함장인 칼 도니츠(K.Donitz) 대위가 있었다. 그는 포로 수용소에서 자신의 유보트 전술을 분석 연구하여, 20년 후 2차 대전시 독일 잠수함 함대의 사령관이 되어 다시 한번 연합군에 엄청난 재난을 발생시키는 장본인이 된다. 1918년 11월 독일이 항복하자 176 척의 독일 유보트(U-Boat)는 영국에 접수되었다.
1916년 오스트리아/항가리의 세르비아(Serbian)인 공군 파일럿인 콘죠빅(Konjovic) 프랑스 잠수함 포컬(Foucault)호에 폭탄을 투하하여 포컬호를 격침시킴으로서, 잠수함을 항공기로 격침시킨 최초의 파일럿의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또한 콘죠빅은 그의 항공기를 바다에 착륙시켜 침몰 잠수함의 승조원을 구조하여, 1968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 받았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자 각국에서는 과학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다양한 형태의 잠수함 기술 개발을 시도하였다. 아직 레이다가 개발되기 이전에, 대형 잠수함을 건조하여 비행 갑판과 항공기를 수밀된 공간에 보관하여 함대의 전방에 전진 배치시킨 후, 수상 비행기를 발진시켜 정찰에 사용한다는 잠수 항공 모함 개념이 구체화 되어 영국, 프랑스와 일본에서 제작에 착수되었으며, 프랑스는 잠수 순양함을 계획하여 수상전에 이용하려는 계획도 수립하였다.
세계 제2차 대전의 승패는 나치 독일에 의한 미국-영국의 대서양 해상 보급로의 차단 노력의 승패로 결정되었으며, 초기의 독일 잠수함 사령관 돈니츠의 잠수함에 의한 보급로 차단 작전이 대성공을 거두게 되고, 이에 타격을 받은 영국과 미국의 대잠 무기 개발, 대잠 전술의 운용과 항공기의 대잠전 활용을 효과적으로 운용하여 연합군에게도 막대한 피해의 발생과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잠수함 작전의 전개에 새로운 장을 개척하는 계기가 되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대서양, 북해, 지중해 및 미 동해안에서 계속된 잠수함 전에서 항모 2척을 포함하여 전함, 순양함 175척과 연합군 상선 3,500척이 격침되어 30,248명의 전사자가 발생되었으며, 독일은 생산된 유보트 1,155척중 783척이 격침되고, 잠수함 전투 인력의 85%인 28,000 명이 전사하였다. 독일은 대전 발발 1년전부터 모든 수상 함정의 건조를 중지하고, 새로운 성능의 유보트를 개발 건조하기 시작하여 1945년까지 유보트의 개량형을 U-Boat1호에서 24호 형 까지 10여종을 진수하여 600톤에서 1,600톤의 각종 전술 잠수함의 개발을 완료하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초 근대적 잠수함의 혁명적인 개념인 대기를 사용하지 않는(AIP, Walter System) 잠수함을 1943년에 개발하여 시운전에 성공하는 등 가히 잠수함 기술 개발에 세계의 최선진국의 자리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 기간동안 새로운 형태의 대잠 병기인 어뢰(Torpedo)의 다양한 개량형, 개량된 폭뢰(Depth Charge), 헤치혹(Hedgehog)과 항공기에 의한 대잠 무기인 항공 투하 어뢰, 대잠 레이다(HF/DF, Metox)와 레이다와 연계된 대잠 탐색 처치라이트(Leigh Light) 등이 개발되었다. 또한 2차 대전전에 개발된 잠수함의 스노켈(Snorkel) 운전 개념을 실전에 적용시켜 독일은 모든 유보트를 스노켈 항해가 가능한 구조로 개량하여 잠수함의 은밀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으며, 이에 대응하여 스노켈 운행하는 잠수함의 배기가스를 수상함에서 탐지하는 화학 센서도 개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후 1950년대에 핵실험이 성공하며, 핵에너지의 산업적 이용에 대한 개발이 가속되자 기존의 디젤/전기추진을 핵추진 시스템으로 교체하려는 기술적인 연구가 성공하여 1958년 최초의 핵 잠수함 미국의 노틸러스(Nautilus)호가 북극해를 잠항 항해하였고 1960년에는 트리톤(Triton)호가 수중 항해로 세계를 일주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핵 잠수함시대가 전개되면서 잠수함의 오랜 숙원이던, 은밀성과 비탐지성을 이제 완전하게 실현하는 이상적인 핵 잠수함 시대가 도래하여 잠수함 승무원에 대한 식량과 인간적인 배려를 제외하고는 무한정 잠수하여 전기와 산소를 생산하여 쓰며, 소음이 없는 수중작전의 수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후 세계는 미소의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핵무기에 의한 대량파괴 무기의 증가와 이를 방어하는 군비 경쟁을 경험하면서 핵 잠수함의 전략과 전술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상대방의 대량 핵공격에도 안전한 해저 깊은 곳에 은밀하게 대피후, 운항하면서 유사시 대량 보복을 가할수 있는 전략 핵 잠수함의 개념으로 미소 양국이 대형의 핵잠수함을 건조하여 다량의 대륙간 핵탄두 미사일을 적재하여 5 대양의 해저에 배치 운용하였다. 또한, 해저에 은밀하게 배치된 적국의 핵잠수함을 탐지하여 파괴하며, 한편 수상함대의 보호와 수상전에서 상대방의 함대를 은밀하게 공격하는 용도로 공격핵 잠수함을 운용하게되었다. 이로서 현대 세계의 잠수함 전력은 핵 잠수함인 전략 핵잠수함(SSBN)과 공격 핵잠수함(NSSN)이 운용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대젤/전기추진 잠수함으로 전술 디젤 잠수함과 대기를 필요로하지 않는 AIP(Air Independent Propulsion)잠수함으로 크게 대별할 수가 있다.(계속) (konas)
송광섭(월간조선 미국통신원)
출처:월간조선닷컴 http://monthl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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