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다 내각 출범과 정책과제
7·29 참의원 선거와 아베 내각의 침몰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정치스캔들과 정권의 도덕성 실추, 민심과 동떨어진 정책 중시, 연금문제 등으로 인해 국민들의 대정부 복합적 불신이 증폭됨에 따라, 7·29 참의원 선거에서 대참패하였다. 아베 정권은 참의원 과반수 의석의 확보 실패로 인해, 민주당이 반대할 경우 중의원에서 통과된 법안을 참의원에서 통과시킬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자민당이 중의원의 2/3 의석수(320석) 이상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중의원을 통과한 법안이 참의원에서 부결되었을 경우, 중의원에서 재의결하여 최종적으로 입법화를 시킬 능력은 있으나,정국 주도권을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에게 빼앗김으로써, 아베 총리의 정국 운용 및 리더십은 강한 민주당을 상대하기에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다.
예컨대, 아베 총리는 2007년 11월 1일부로 시한이 만료되는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의 연장를 위해 총리직을 걸고 즉 9월 10일 개막된 임시국회에서 ‘연장실패시 내각 총퇴진’이라는 배수진을 치며 추진하였으나, 제1야당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는 ‘테러대책법 연장 반대->총리퇴진->중의원 해산’이라는 전략아래 강력하게 반대함에 따라 강한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게다가,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의 연장을 위한 여야 당수회담 개최마저 오자와 이치로 대표에게 거절당했다.
마침내, 아베 총리는 정국 운용과 리더십의 한계를 직면하고, 2007년 9월 11일 국회소신표명연설을 한 다음날 12일 오후 기자회견을 통하여 총리직 사의를 표명하였다. 즉, 7·29 참의원 선거의 대참패의 후유증으로 아베내각 침몰하였다. 아베 총리의 전격적 사임 직후, 아소 다로 간사장이 차기 총리감으로 급부상하였다. 일본의 언론들은 아소 다로 간사장을 유력한 차기 총리감으로 보도하였다.
자민당 내 파벌의 반아소 포위망 구축과 후쿠다 대세론 대두
그러나, 아베 총리의 충격적 사임과 국정 혼란에 대한 ‘연대책임론’, 자민당 내 위기감과 ‘아베 총리와의 리더십·정책노선 등 차별화’ 등이 제기되면서 자민당 내 파벌들 사이에는 정치적 이해 계산을 바탕으로 반아소 포위망이 결속되기 시작하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지지 표명과 더불어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이 14일 출마의사를 표명하고 15일 후보등록을 하자 즉시 9개 파벌 중 6개 파벌이 ‘후쿠다 지지’를 표명하였고, 이후, 아소파를 제외한 8개 파벌이 담합하여 후쿠다를 차기 총리로 지지·추대하였다. 자민당 파벌이 후쿠다 야스오를 지지한 배경으로 다음과 같이 지적할 수 있다.
첫째, 후쿠다 야스오의 조정능력과 균형감각이다. 자민당 참패속의 아베 총리의 급작스러운 사임으로 자민당의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즉, 후쿠다 야스오가 모리정권과 고이즈미 정권에서 1289일의 역대 최장수 관방장관의 경력에서 검증된 조정능력과 균형감각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자민당 정부의 경직된 이미지를 전환시키는데 적임자로 부각되도록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각 파벌의 정치적 이해와 후쿠다 야스오의 정치성향의 타협이다. 후쿠다 야스오의 관방장관으로서의 높은 조정능력은 자신의 개성·정치적 이해보다 당·정의 조정과 타협에 능하다 것을 의미하며, 아울러, 이는 각 파벌이 상대하기 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각 파벌이 정치적 이해타산과 관련, 아소 다로보다 후쿠다 야스오를 선호하데 되는 것이다.
셋째, 부친 故 후쿠다 다케오 총리의 ‘보이지 않는 후광’ 덕분이다. 1970년대 총리를 지닌 후쿠다 다케오는 퇴임후 청화회(淸和會)를 만들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청화회 회장은 후쿠다 다케오-아베 신타로-미쓰츠카 히로시-모리 요시로-마치무라 노부타카로 이어져 오고 있다. 즉, 현재 자민당 최대파벌인 마치무라파인 것이다. 따라서,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아소 대세론’이 급부상할 때, 후쿠다 야스오를 격려하며 총리 출마를 권유하는 한편, 각 파벌의 영수들을 만나 후쿠다 지지를 설득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도 후쿠다 다케오의 비서관으로 정치를 시작하였는데, 후쿠다 야스오를 차기 총재·총리로 지지표명을 하며 ‘후쿠다 대세론’의 부상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후쿠다 대세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9·23 총재선거는 치루어졌고, 예상대로 후쿠다 야스오는 중·참의원 국회의원 387명과 지방표 141표로 구성된 전체 528표 가운데 당선 요건인 과반수(264표 이상)를 훨씬 상회하 는 330표를 획득하여 제22대 총재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2007년 9월 25일 ‘자민당의 후쿠다 대 민주당의 오자와’ 대결아래 치러진 총리선거에서 후쿠다 야스오는 헌법의 중의원 결정 존중 규정에 따라 제91대 총리로 지명·확정되었다. 즉, 중의원 본회의에서는 후쿠다 야스오가 총투표수 477표의 과반수인 338표를 얻어 총리로 지명되었으나, 곧이어 실시된 참의원 본회의에서는 오자와 이치로가 총투표수 239표의 133표를 획득해 총리로 지명되었다. 따라서, 복수 총리 지명문제로 9년만에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협의회가 개최되었으나, 총리 지명자 단일화에 실패하고, 중의원 결정 존중하는 헌법규정에 따라 후쿠다가 신임총리로 확정되었다.
후쿠다 정권의 특징
후쿠다 야스오는 자민당의 ‘동요와 변화’를 극소화시키고, ‘포용과 결속’을 극대화하기 위해 당·정 인사에서 각 파벌의 영수들을 주요 보직에 포진시키는 한편, 계파안배·소폭 개각의 조각을 단행하였다. 즉, 후쿠다 야스오는 자민당 신임 총재로서 총리선거 1일 전인 9월 24일에 당 4역 인사를 단행하고, 자신을 지원해 준 각 파벌 영수들을 중용하였다. 자민당 간사장에 이부키파 회장, 총무회장에 니카이파 회장, 정무조사회장에 다니가키 회장, 선거대책위원장에 고가파 회장 등을 임명하였다.
그리고,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9월 25일 공식 취임후, 내각을 발족시켰다.
후쿠다 총리는 “임시국회가 개회중, 테러대책특별법 처리 등 현안이 산적해 있어 아베 총리 2기 내각의 틀을 최대한 유지하였다”고 언급하였는데, 내각의 성격을 ‘배수진 내각’으로 규정하고, 2명의 파벌 영수를 핵심 각료직에 포진시키는 계파안배·소폭개각의 조각을 단행하였다.
고무라 도시히코(고무라파 회장)를 외무대신, 마치무라 노부타케(마치무라 회장) 관방장관에 포진시키면서, 17명 각료 가운데 13명을 유임시켰다. 고무라 도시히코 외무대신, 마치무라 노부타케 관방장관은 자리이동이고, 신임각료는 도카이 기사부로 문부과학대신, 이시바 시게루 방위대신에 불과한 것이다. 이어 부대신 인사에서도 총무부대신(공명당->공명당) 1명만 교체하고, 나머지는 유임시켰고, 정무관은 26명 전원 유임시켰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자민당의 결속 극대화를 지향한 거당 체제의 내각으로 출범하였는데, 반면, 이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내각이다. 즉, 고이즈미 전 총리의 내각과는 극단적으로 비교되는데,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강력한 리다십보다는 조정과 타협을 통한 총리 기능을 수행해 갈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후쿠다의 장래는 아베가 남긴 후유증 처리에 달려
7·29 참의원 선거후, 압승한 제 1야당 민주당은 아베정권 때부터, 중의원을 해산하고 조기선거를 실시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는데, 후쿠다 총리도 총재 경선에서 ‘예산안 처리 이후 야당과의 합의에 의한 중의원 해산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중의원 해산 시점이 예산안 처리 이후이므로, 내년 봄쯤 중의원 해산, 총선이 치러질 가능성 있다.
요컨대, 후쿠다 내각은 중의원 해산, 총선거에 대비한 ‘잠정내각’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상황은 후쿠다 총리가 자신의 내각의 특징으로 규정한 ‘배수진 내각’에 함축되어 있고, 그러한 어려움은, 후쿠다 내각을 내선 조기 총선에 대비하여 자민당의 결속 극대화를 지향한 거당 체제의 내각으로 출범케 한 것이다.
후쿠다 정권의 장래는 고이즈미 정권과 아베 정권이 남긴 후유증을 어떻게 처리해 가느냐에 달려있다. 즉, 후쿠다 정권의 장래는 테러대책특별법의 연장 또는 신법 마련, 정치자금 투명성 제고, 도시와 지방간 격차 문제, 소비세 인상, 연금기록 부실 문제 등을 처리하는 정치력, 정책능력 등에 달려있다. 후쿠다 정권의 정치적 특성은 이와 같은 정책과제들을 해결하여 일본 국민들의 정치적 신뢰를 자생적으로 획득하고, 내년의 조기 총선에서 승리했을 때, 비로소 나타날 것이다. (konas)
배정호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출처:http://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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