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개혁·개방’ 없이 경협 안된다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 서명, 악명 높은 ‘폭정’ 지지·찬양한 행위
이념과 체제가 다른 남북 간 대화와 협상은 지난(至難)한 과정의 연속이다. 무릇 만물은 스스로를 유지·확대하려는 속성이 있으므로 상반된 두 체제가 부딪치는 경우 마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제정치 이론에 따르면, 서로 다른 정치체의 ‘통합(integration)’에서 중간단계의 ‘혼합’이란 있을 수 없고, 오직 비정상적 체제가 정상화함으로써 정상화된 상태로의 ‘동질적’ 통합만이 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서 ‘동질적’이라 함은 ‘가치관의 합치’를 뜻한다. 이번 평양정상회담에 동참한 어느 작가가 평양 음식이 우리와 같은 것을 보고 “동질성을 확인하는 데 60년 걸렸다”고 감격해했다는데, 이는 유치한 감상(感傷)에 불과하다. ‘민족’만을 내세운 통일 운동은 허망할 따름이다.
지금 북한은 ‘연방제’ 통일을 목표로 하고 남한은 자유 통일을 추구하기에 남북 수뇌가 설사 ‘선의’를 갖고 공조하려 해도, 타협이 쉽지 않다. 김정일 정권이 개혁·개방론에 거부감을 보인 것은 체제 수호를 위한 본능적 조치다. 개혁·개방이 북한 주민의 의식을 일깨워 정권안보를 위협하리라는 것은 분명하고, 북한 지도부도 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권력안보보다는 북한 주민의 자유가 우선하는 가치이기에, 김정일 정권이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개혁·개방을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대북정책의 원칙이며 목표다.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의 개혁·개방 거부감에 대해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들어 북측의 주장을 이해·수용하는 발언을 하고, 곧 바로 통일부가 홈페이지에서 개혁·개방이란 표현을 삭제한 것은 대북 정책의 본말이 뒤바뀐 것이다. 또 앞으로 정부 문서에 북한의 개혁·개방이란 말을 쓰지 않는 방안도 검토중이라 하니, 노 정부는 김정일의 말 한마디에 기계처럼 움직이는 북한 종속 부서인가.
또 개혁·개방이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라면, 대북 경제협력은 무엇 때문에 한단 말인가. 개혁·개방 전망이 없음에도 수십조 원에 이르는 ‘퍼주기’ 경제협력을 제공한다면, 결국 김정일 폭정의 유지 강화와 핵무기 개발을 지원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또 노 정권이 주장하는 ‘경제공동체’와 ‘평화공동체’ 간의 ‘선순환’ 논리도 허구적임을 알게 된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개혁·개방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정권안보 차원에서 북한 지도부가 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북한 체제 붕괴 불가피론이 나오고, 한반도 유사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개혁·개방은 북한을 시장경제로 견인하여 남북 동질화를 거쳐 통일로 향하는 과정이므로, 북한의 개혁·개방을 촉구하면서 동시에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이번 평양정상회담과 10·4선언에서 ‘민족’이 중심 가치로 부상한 데 대해 국내외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남북은 6·15공동선언과 북한의 대남 전략구호인 ‘우리민족끼리’ 정신을 계승하여 ‘10·4’합의문을 만들고 앞으로의 협력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남북한이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에 합의함에 따라 한미동맹의 종결과 ‘미국 없는 한반도’를 경고하는 미국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나왔다.
또 대통령과 주요 각료들이 인권탄압과 독재의 상징인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면서 기립박수를 보내고, 대통령이 만수대의사당을 방문,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이라고 친필 서명하기까지 했다. 이는 악명 높은 ‘폭정’을 지지·찬양한 행위이며, 자유민주 국가의 이념과 헌법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행동이다. 평양회담을 통해 드러난 이 정권의 반자유민주·반국가·반헌법적 행태를 규탄해 마지않는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 재향군인회 안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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