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국가들의 에너지 전쟁

한반도는 아직도 20세기적 냉전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고 있지만 세계는 빠른 속도로 21세기적 안보 질서에 적응 해 가고 있다. 이 같은 변화를 주도하는 나라와 그 변화에 끌려가는 나라, 그리고 아예 변화에 적응도 못하는 나라들이 있으며 이 같은 변화에 어떻게 적응 하느냐의 여부는 21세기 국제 경쟁에서 승자와 패자를 판가름 하게 된다.
미국의 한적한 시골이라고 할 수 있는 미시시피주의 작은 도시 잭슨에서 아시아 국가의 전문가들과 미국 측 전문가 수십 명이 참석하는 아시아 에너지 안보 회의가 열렸는데 일본이 적극적으로 주선한 것이었다. 일본은 자금을 지원, 미시시피 대학으로 하여금 아시아 국가들 특히 일본의 해로 안전을 보장 하는데 필수적인 국가들의 전문가들을 초청, 에너지 안보 회의를 주최하도록 한 것이다. 그것도 미국 동부와 서부의 눈에 띄는 대학들이 아닌 곳에서 말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모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1950년대 이후 일본의 성장은 세계의 놀라움이었으며,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성장, 1970년대 말엽부터 중국의 성장도 모두 세계 기록을 갱신하는 것들이었다. 2000 년대에 들어서서 뚜렷해진 인도의 급속한 경제 성장은 물론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세계 다른 지역을 훨씬 능가하는 초고속 경제성장 속도를 과시하고 있다. 그래서 21세기를 아시아의 세기라 해도 과언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경제성장이 지속되기 위해 궁극적으로 해결 되어야 할 요인이 하나 있다. 바로 경제 성장의 동력원, 즉 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문제다. 에너지의 확보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된다. 하나는 에너지의 원천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에너지를 자기 나라의 항구까지 안전하게 실어 나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의 산업화는 아시아 국가들을 모두 석유를 꿀꺽 꿀꺽 들이켜 마셔야만 생존할 수 있는 나라들로 만들어 버렸다. 1993년까지만 해도 석유를 수출하던 나라였던 중국은 이제 세계 2위의 석유 소비국이 되어 버렸고 중동의 석유에 국가의 사활을 건 나라가 되어 버렸다. 중국이 세계의 석유를 맹렬한 속도로 빨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은 물론 아시아 국가들 모두에게도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모든 중국인들이 한국 수준으로 자동차를 보유하게 될 경우(한국은 현재 인구 3-4명당 1대꼴이니 같은 비율이라면 중국은 약 4억 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게 될 것이다) 과연 우리가 지불해야 할 휘발유 1 리터의 가격은 얼마가 될지를 상상해 보라.
석유를 확보하는 문제 보다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석유를 자기 나라까지 안전하게 실어 나를 수 있느냐의 문제다. 호르무즈 해협, 페르시아 만, 인도양, 말래카 해협, 동지나해 등 세계의 중요한 석유항로가 지나는 길은 모두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일본은 이 해로를 아예 생명선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게도, 중국에게도 생명선이긴 마찬가지다. 생명선처럼 중요한 이 해로가 언제든지 차단 될 수 있다는 것이 회의 참석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말래카 해협, 남지나해는 세계에서도 가장 많은 해적들이 들끓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냉전 당시 소련과 싸우느라고 미국 해군은 세계 바다의 방방곡곡을 순찰하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바다를 통해 먹고 사는 많은 나라들이 바다의 안전에 대해 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미국이 지켜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냉전이 끝난 지금 미국이 아시아의 바다를 순찰해야할 필요성은 대폭 줄어들었고 동시에 해적조차 들끓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 되었다. (석유해로와는 다르지만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당한 우리 선원은 5개월이 지난 지금 까지도 억류되어 있다).
국제정치에서 공백은 어떤 힘에 의해서든 메꿔져야 한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힘이 빠져 나간 자리에 해적은 물론 중국, 일본, 인도 해군이 밀려들고 있다. 이들이 한국 유조선과 화물선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 해 줄 수 있을까? 특히 중국을 한 축으로 하고 인도, 미국, 호주, 일본이 한축이 되는 갈등구조가 형성 되는 와중에서 한국의 입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필자는 일본은 이미 중국을 염두에 두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다차원의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해군)과 본격적인 동맹 차원의 대규모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민간 혹은 정부의 전문가들을 초청, 학술회의를 개최하며 은연중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고, 동지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느끼는 불편한 마음은 지난 몇 년 전과 비교할 때 한국의 위상이 자꾸 위축되고 있다는 것 같아서 일 것이다. 일본과 곧 맞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이제 중국, 인도에게도 밀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자괴심으로 바뀌었다. 국가를 진취적으로 만들고 위상을 높이는 것은 바다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정부는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 아래 주로 북쪽 하늘과 대륙을 쳐다보고 살아오지 않았나? (konas)
이춘근 / 자유기업원 부원장
출처: http://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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