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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 상표등록으로 뜬다

해남군 특허 출원 승인

Written by. 정미란   입력 : 2007-10-25 오후 6: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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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7년(선조 30) 9월 정유재란 때 조선 수군이 명량에서 일본 수군을 쳐부수고 승리함으로써 조선이 다시 해상권을 회복하게 된 결정적 승리였던 명량해전이 전라남도 해남군이 시행하는 축제인 '해남명량대첩제'로 서비스출원돼 특허청으로부터 상표등록을 받았다.

해남군과 명량대첩제 추진위원회는 25일 '해남명량대첩제'에 대한 상표등록으로 명량대첩제 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고유권한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앞으로 축제의 성공적인 추진은 물론 명량대첩 승전을 한차원 높게 현창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남군은 로고 캐릭터 뿐만 아니라 로고안에 삽입한 문장까지 보호받게 되는 고유의 권한을 갖게 됐으며, 명량대첩제라는 단어를 사용해 유사행사시에는 무조건 해남군의 허가가 필요하고 사용시 특정VAT도 받을 수 있다.

해남군의 서비스표 등록은 지난 해 11월에 추진, 공고기간을 거쳐 지난 10월18일 최종 확정됐으며, 해남명량대첩제라는 표기와 로고를 함께 출원했다.

한편 명량해전은 선조 30년인 1597년 9월 해상권을 상실한 칠천량해전 이후 남해안에서 승 승승장구하던 왜군의 수륙병진계획을 송두리째 부수어 버린 해전으로, 정유재란의 전환점을 마련한 대첩이다.

조류가 국내에서 가장 빠른 점을 이용 울돌목에 쇠줄을 설치하고 일자진을 펴서 왜군을 유인하여 함포 공격을 퍼부었다. 그 결과 조선 수군은 단 1척도 피해를 입지 않았고, 전사자 2명과 부상자 2명만 발생했을 뿐이었다. 이는 세계 해전사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전한 승리였다.

원균의 패전으로 백의종군하다 이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 장군은 9월 16일 왜선 133척이 어란포를 떠나 명량으로 공격해오자, 12척의 전선과 군사를 정비하여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道總]와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가 지휘하는 왜선 31척을 무찔렀다. 이 싸움으로 조선은 다시 해상권을 회복하기에 이르렀다.(Konas)

정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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