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노무현 정부가 정권 말기에 종전선언 추진을 서두르고 있다. 한 마디로 부적절한 조치라고 하겠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종전선언은 2006년 11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에서 처음 제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종전선언, 종전협정, 평화협정, 평화체제 등 다양한 용어들이 사용되어 왔다. 일부 언론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상황이 평화체제 전환 내지 구축을 위한 분위기로 몰고 가기도 했다.
종전선언, 종전협정, 평화협정, 평화체제 등은 법적으로 각기 다른 개념이다. 물론 종전선언과 종전협정, 그리고 종전협정과 평화협정 간에는 일부 개념적 내포가 중복되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
그런데 부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이 같은 전문적·기술적인 용어들을 정확히 구별하고 사용했는지, 또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또한 이들의 대화를 통역한 통역관도 국제법상의 정확한 개념의 이해를 가지고 해당 용어를 썼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간다.
여러 경로를 통해 필자가 들은 바에 의하면, 부시 대통령은 종전선언이라는 표현을 쓰긴 썼던 것 같다. 그런데 이후 한국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구별하며, 전자는 소위 ‘입구론’에 의거하여 핵불능화조치 후 북한의 핵폐기를 ‘유도’하기 위한 조치로서 논의되는 현상(혹은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불어 평화협정은 출구론의 입장에서 종전선언에 의해 동력을 확보하게 되는 평화체제 전환협상의 결과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입장은 이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부시가 말한 종전선언은 핵폐기를 조건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 핵폐기를 유도하기 위한 선행적 조치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미국 정부는 부시 대통령이 언급한 종전선언은 실제상으로는 ‘평화협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한국에서 종전선언을 두고 잘못된 해석을 하거나 오해를 한 것으로 정책적 입장을 정리했다.
이 같은 점에서 하노이 정상회담 후 미국은 종전선언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내부적으로 금지하고 평화협정 내지 평화체제라는 용어만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무튼 노무현 대통령의 귀에는 하노이 회담 후 종전선언이라는 말이 익숙해져 있었고, 이 말이 뇌리에 박혀있었던 것 같다. 추정컨대, 청와대 참모들도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으로서 평화협정과 별개로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대통령에게 계속 입력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지난 9월 시드니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서 작년 11월 종전선언을 언급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이를 재차 확인하려 하자 부시 대통령은 (다소의 짜증 섞인 태도를 보이면서) 의도적으로 평화협정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평화체제 전환(평화협정 체결)과 핵폐기에 관한 미국의 입장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 때부터 미국과 한국 사이에는 종전선언을 둘러싸고 미묘한 정책갈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10월 4일자 평양 남북정상 선언에 명시된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이란 문구가 들어간 것은 이러한 갈등의 표면화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노무현 정부는 북핵 불능화 직후에 종전선언을 채택하는 입장을 정리했던 것, 즉 “6자회담(북핵 불능화합의)→ 남북정상회담(종전선언) → 4자 종전선언(4자정상회담)의 구도”(이른바 이 정부가 즐겨 이야기하는 선순환 구도)를 실행에 옮긴다는 전략을 구사하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발상은 우리 정부의 희망적 사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참여 없이는 3자 혹은 4자 종전선언이라는 것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까닭이다.
이 같은 전후 사정을 알면 최근 백종천 청와대 외교안보정책 실장과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간의 ‘갈등 아닌 갈등(?)’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송 장관은 미국의 입장과 저간의 변화과정을 잘 알고 있어 정치선언으로서의 종전선언 구상이 비현실적임을 지적하였고, 백종천 실장은 입구론의 일환으로서 종전구상을 이야기함으로써 인식 차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종전선언의 내용과 형식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선, 백종천 실장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이 아니다. 소위 '입구론'과 '출구론'이란 정치논리 아래, 정치선언으로서의 종전선언 아이디어를 생각해 봄직한 것이다. 동시에 종전(전쟁종결)의 합의는 평화협정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자 출발이라는 점에서 송민순 장관의 말도 전혀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접근시각과 더불어 미국의 입장 고려라는 측면에서 양자가 서로 모순된다고 할 수 있겠다.
* 송민순 장관의 발언과 백종천 실장간의 언급 사이에 모순이 있는 것이 크게 보도되자, 송 장관은 이튿날 백종천 실장의 말에 가까운 수정발언을 하였다. 일종의 코드발언인 셈이다.
아무튼 미국은 종전선언(전술한 바와 같이 미국은 최근에 이 용어를 쓰지 않고 의도적으로 평화협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의 경우, 미국이 핵폐기라는 전제조건을 설정해 놓고 있기 때문에, 청와대의 구상은 현단계 혹은 핵불능화 직후단계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시기상조의 것이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왜 자꾸 종전선언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아마도 두세 가지 정도 이유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첫째, 노무현 정부는 국정과제 혹은 대국민 공약의 제1번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내놓았었다. 이제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마지막 치적의 하나로 이 분야에서 진전을 이루고 싶어 한다고 분석할 수 있다.
둘째, 노무현 정부는 그들이 종종 이야기해 온 것처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을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다시 말하면 종전선언을 채택함으로써, 대미자주를 명분으로 한미동맹 흔들기와 주한미군 철수 실현을 위한 단초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자주통일(연방제 방식에 의한 통일일 가능성이 다분하다)의 발판을 만드는 것과 상통한다고도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그 밀알이 되겠다는 것이다.
셋째, 두 번째가 실현되면 좋고 그렇지 않을 경우 대선을 앞두고 한미간의 갈등을 노정시킴으로써 다시 한번 우리 국민의 반미감정을 자극하겠다는 의도가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이번 대선의 경우 그 파급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선이 효순이사건보다 반미정서를 자극하기에는 파괴력이 작기 때문이다. 너무 전문적인 영역인데다가, 작금 평화체제 구축이나 종전선언 채택이 대다수 국민의 관심사가 아닌 점도 이런 전망을 가능케 한다고 하겠다.
요컨대, 종전선언은 미국이 한국을 압박하는 카드가 아니다. 미국이 평화체제 구축을 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노무현 정부가 미국을 압박하는 상황을 노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을 압박하며 종전선언을 채택하자고 해도 실현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에 관한 한미갈등은 노무현 정부의 임기말 치적쌓기와 그를 위한 조급증을 노출한 해프닝에 불과하다. 따라서 갈등의 책임을 미국 탓으로 돌리려는 기도는 결코 성공하지 않을 것이다.(konas)
제성호(중앙대 법대 교수)
출처: 프리존 http://www.freez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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