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日 실무그룹 회의의 경과와 향후 전망
2007년 2월 8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된 제5차 6자회담 3단계회의에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가 합의되었다. 이에 따르면 참가국들은 9.19 공동성명의 완전한 이행을 목표로 북일관계 정상화 실무그룹을 포함한 5개의 실무그룹(working group)을 설치하기로 합의하였다.
2.13 합의를 계기로 북한과 일본은 2006년 2월 이후 단절되었던 양국 간 국교 정상화 교섭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그간 진행된 두 차례의 실무그룹 회의의 진행 상황을 검토해 보고, 새로 등장한 후쿠다 내각 하에서 북일관계의 전개 양상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제1차 실무그룹 회의와 아베정권의 대북 압박정책
2.13합의에 따라 북한과 일본은 2007년 3월 7일과 8일 양일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1차 실무그룹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에는 하라구치 고이치(原口幸市) 북일국교정상화 교섭대사와 송일호(宋日昊) 북일교섭담당대사가 각각 임했다.
3월 7일 회의에서 일본 측은 북일 평양선언의 내용을 확인하면서, △납치문제 해결이 국교정상화의 전제 조건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납치문제에 대한 재조사, △납치피해 생존자의 조기 귀국, △진상규명, △납치 실행범의 인도를 요구했다. 북한 측은 납치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는 종래의 입장을 반복하면서, 납치문제를 더 이상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7일 오후 회의를 거부했다.
3월 8일 회의에서 송일호 대사는 △과거 청산의 개시, △일본의 경제제재 해제, △조총련에 대한 과세 강화 중지 등을 요구하면서, 일본이 요구하는 납치피해자의 재조사는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본은 납치문제에 대한 진전이 없는 한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혀 북한에 대한 압박을 계속한 것이다. 반면, 북한은 2.13합의에 따라 일본과 대화에 응하기는 하지만, 일본의 납치문제에 대한 강경한 입장에 때문에 회담의 진전이 없다는 점을 과시하여 일본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했다.
실제로 조선신보는 북한이 앞으로 6자회담에서 일본과의 대화를 배제해 나갈 것이라며 한반도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관계는 5자의 공동보조와 ‘일본의 고립’이라는 구도로 전개될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조선중앙통신은 2.13합의에 따르는 의무 이행을 거부하는 일본이 6자대화에 참가한다는 것은 불안정 요인이라며 일본의 6자회담 참여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북한은 2006년 11월에도 6자회담을 앞두고 일본이 6자회담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 회담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여, 이후 열린 회담에서 일본과만 양자회담을 열지 않았다.
또한 북한은 일본의 국내정치 상황이 유동적이라는 점에서 참의원 선거 이후 아베 정권의 권력 기반이 약화되면 대북 압박정책이 완화될 수 있다는 점도 계산에 넣고 있었다. 6월 21일 북한을 방문했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김계관(金桂冠) 외무성 부상에게 일본과의 대화에 적극 나설 것을 요청했으나, 김계관 부상은 참의원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상황을 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제2차 실무그룹 회의와 대북 유화 제스처
제2차 실무그룹 회의는 9월 5일과 6일 양일간 몽골의 울란바타르에서 개최되었다. 회의에는 하라구치 대사의 정년 퇴임에 따라 미네 요시키(美根慶樹) 신임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대사와 송일호 대사가 각각 임했다.
제2차 회의에 앞서 북일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첫째는 7월의 베이징 6자회담을 계기로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정체되어 있던 북핵문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의장국 성명에서는 실무그룹 회의의 8월 개최, 6개국 외무장관 회담의 조기 개최 등이 발표되었다. 제2차 북일 실무그룹회의 개최 분위기가 국제적으로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 회의 기간동안 김계관 부상과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외무성 아시아 대양주 국장 사이에 1시간 가량 양자협의가 있었다. 북한이 6자회담에서 양자접촉을 거부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예상외로 북한은 양자접촉에 응해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둘째, 7월 29일 실시된 일본의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대패하여, 참의원에서 제1당의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일본 국내 정치에 큰 변화가 생겨, 아베 정권의 권력 기반이 약화된 것이다.
셋째, 북한이 커다란 홍수 피해를 입어 인도적 지원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8월 28일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외상은 홍수피해에 대해 인도적 지원을 검토한다는 정부 방침을 밝혔다. 일본 정부는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에 대한 진전이 없는 한 대북지원에는 참가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지만, 인도적 지원은 에너지 지원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서 지원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에서는 대북지원을 한 적이 없으며, 2004년 8월 국제기관을 경유하여 북한에 대해 식량과 의약품을 지원한 이후 처음으로 대북지원 문제가 거론된 것이다. 8월 28일은 제2차 북일 실무그룹 회의 일정이 발표된 날이었다.
회의에 앞서 일본 정부는 ‘기본 방침을 유지하면서도 유연한 입장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정부 내의 의견에 따라 만일 실무회의에서 북한이 납치피해자의 재조사에 응하면 국교 정상화를 위해 과거청산에 관한 분과회를 설치할 수 있다는 방침을 정했다.
9월 5일 회의에서 일본 측은 일본이 과거청산을 하기 위해서는 납치문제의 해결이 필요하며, 과거청산과 납치문제를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평양선언에 따라 △종전 이전에 발생한 청구권을 서로 포기할 것 △일본은 북한에 대해 보상이 아니라 경제협력을 한다는 점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경제협력과는 별도로 종군위안부 문제와 강제연행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일본이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납치문제에 대해서는 기해결 문제라는 언급은 회피하면서 북한이 일정한 조치를 취해 온 점을 강조했다.
9월 6일 회의에서 일본 측은 납치문제 재조사와 일본 항공기 ‘요도’호 납치범 3명을 포함한 납치 용의자 인도를 요청했다. 북한 측의 김철호(金哲虎) 외무성 아시아국 부국장은 납치문제 재조사는 “일본과 견해 차가 있어서 앞으로 이것을 어떻게 좁힐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즉 북일관계가 원만해져 신뢰관계가 구축될 경우에나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요도호 납치범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와 요도호 관계자가 협의할 문제로 북한은 이를 위해 장소를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제2차 실무회의에서는 양측이 자주 실무회의를 갖기로 합의한 것이 제1차 실무회의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송일호 대사는 회담을 마친 뒤 과거 청산과 납치문제를 병행해서 협의한다는 일본의 자세는 건설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제2차 실무회의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올리지 못하자 일본 정부는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연장하는 방침을 굳혔다. 그리고 9월 11일 사사에 겐이치로 아시아 태평양국장은 납치문제의 진전이 없는 한 대북 직접 지원은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확인하여 대북 지원 문제를 백지화시켰다.
아베 정권은 과거청산과 △납치문제를 병행할 수 있다는 점과 △대북 인도적 지원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북한에 대해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9월 12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돌연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이러한 정책 변화를 계속 이어가지는 못했다.
후쿠다 정권의 등장과 대화 중시정책에 대한 기대
9월 15일 아베 정권의 뒤를 이어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내각이 출범하였다. 대북정책에 있어서 후쿠다 정권의 첫 과제는 대북 경제제재 조치의 연장 문제였다. 일각에서는 후쿠다 총리의 대북노선을 감안할 때, 제재 조치의 완화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경제제재 조치 문제는 9월초에 이미 아베정권 하에서 연장으로 기본 방침이 기울어져 있었다. 자민당도 북한의 납치 문제와 핵문제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압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9월 27일부터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개최되었다. 일본은 북한이 핵, 미사일, 납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북한과 국교정상화를 추진한다는 종래의 입장을 밝혀 후쿠다 내각도 협상 원칙에는 큰 변화가 없음을 시사했다. 다만 사사에 아시아 대양주 국장과 김계관 부상이 회담을 갖고, 몽골 회의의 결과를 기초로 양측의 관심사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노력한다는 입장을 확인하여, 대화의 분위기를 이어간다는 입장은 보였다.
주목할 만한 점은 북한이 핵 시설 불능화 등 다음 단계 조치에 합의할 경우 일본 정부가 불능화 비용 일부를 부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에너지 지원의 분담은 할 수 없으나, 핵 시설 불능화와 관련해서는 비용 분담 용의를 밝히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10월 3일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북일관계 정상화가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 그리고 6자회담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관계 개선의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후쿠다 총리의 자세를 지켜보겠다”고 언급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은 후쿠다 내각의 정책에 따라 북일교섭에 유연성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였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양국은 10월 14일 중국 선양에서 야마다 시게오(山田重夫) 동북아시아 과장과 송일호 대사간에 비공식 협의를 갖고, 국교정상화 실무그룹 차기 회의를 10월 내에 개최하는 방향으로 합의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는 연내에 실무그룹 회의를 수차례 개최해 대화를가속시키기는데 합의했다.
북일관계는 현재 납치문제와 국교정상화 문제를 동시에 협의한다는 점에서는 합의를 보고 있으나, 납치문제 재조사를 요구하면서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는 일본의 입장과 먼저 경제제재 조치의 해제와 과거청산 등 국교정상화 교섭을 개시하자는 북한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대화 재개 분위기가 정착되고 있고, 북한이 후쿠다 내각과는 교섭의 여지를 보이고 있고 대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조기에 실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본으로서는 후쿠다 내각이 국내정치 위기의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해 외교적 성과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관계 개선의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관계 개선 등 가시적인 성과는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후쿠다 총리의 개인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대북 강경론자인 마치무라 관방장관,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외상이 내각에 있다는 점이나, 북한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자민당 내의 분위기 등을 감안하면 일본의 대북 정책 노선은 급격한 변화를 보이기는 힘들 것이다. 후쿠다 총리도 비록 대화 중시 입장을 밝히기는 했지만, 대북 압력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후쿠다 내각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대화와 압력을 병행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며, 당분간은 아베 정권 말기의 대북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납치문제의 재조사와 경제제재 조치의 해제라는 행동 대 행동으로 북일관계는 실마리를 풀어나갈 것으로 보인다.(konas)
송화섭 (KIDA 안보전략연구센터 동북아연구실장 songws@kida.re.kr)
출처: K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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