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되는 北의 '다변화(多邊化)' 對外전략
「10·4 남북선언」 이전에도 북한은 최근 활발한 외교활동을 펴 왔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7~8월 80살의 고령임에도 알제리, 이디오피아, 이집트, 싱가포르를 순방했으며, 이번 베트남을 방문 중인 김영일 내각 총리는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라오스를 잇달아 방문했다. 또 노동당 대표단이 아세안을 방문했고, 무역상 대표단이 이란과 시리아를 순방했다. 동시에 호주, 시리아 등의 장관급 인사들이 최근 6개월 사이에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북한의 이러한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대외전략 방침은 최근 연속적으로 터져 나오는 주요 관리 및 언론 매체들의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논평에서 확인되고 있다. 예컨대 지난 10월 10일 있었던 유엔총회 2위원회(경제·금융) 北대표 연설은 “북한이 자주성과 평등, 호혜 원칙에서 평화롭고 공정한 새 세계를 건설하려는 모든 나라들과의 다방면적인 경제협조와 교류를 확대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또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10월 29일 “자주ㆍ평화ㆍ친선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시종일관한 대외정책 이념”이라며 “우리 공화국은 자본주의 나라들과도 선린우호 관계를 발전시키려는 입장을 시종일관 견지해 왔다”고 밝혀, “자본주의 국가”와의 “선린우호 관계”라는 표현으로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특히 「노동신문」은 “최근 시기 우리나라가 세계 여러 나라들과 연이어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사변(대전환)적인 일로, 공화국의 커다란 외교적 성과이고 자주적인 대외정책의 정당성의 힘있는 과시”라고 언급, 북한 대외전략의 ‘변화’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
한편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도 10월 29일자 「정세전환 국면의 전방위 외교」제하의 기사에서 “조선반도의 정세가 전환적 국면을 맞이하는 가운데, 조선이 벌이는 대외활동에서 주목되는 것은 활기를 띠는 고위급 외교”라며, 이는 “6자회담의 진전에 따라 … 여러 나라들과의 관계를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하는 확고한 정치적 의지의 반영”이라고 지적, 북한 지도부의 대외전략 변화를 설명해주었다.
이렇듯 ‘국제 다변화’를 향하는 北 대외전략 선회의 배경은 무엇인가?
북한이 진정한 의미에서 ‘베트남式 개혁·개방’을 추진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섣부른 추정도 나오고 있다. 6자회담을 통한 미·북 관계 개선으로 ‘안보’가 어느 정도 해결됐으니, 경제 챙기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그러나, 북한 경제체제가 오랫동안의 왜곡과 침체 결과 ‘구조적인 모순’에 처해있고, 무엇보다도 ‘개혁·개방’ 조치가 김정일 체제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성급한 진단은 금물이다. 우리는 분명히 북한의 ‘개혁·개방’을 희망하고 또 촉구하는 입장에 있으나, 북한의 현실이 쉽게 따라오지 못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또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북한 지도부의 속내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아마도 이번 북한의 ‘다변화’ 대외전략은 정치적인 목적이 주(主)된 것이고 경제적인 목적은 부차적일 가능성이 높다. 곧 북한의 이번 움직임은 최근 미북관계 개선 및 남북정상회담 이후 대남 ‘자주·평화·통일’ 선전 공세를 돕기 위한 ‘국제적 분위기’ 조성용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자본주의국가와의 선린외교” 강조는 미국을 포함하는 세계 각국을 상대로 광범한 형태의 국제적 통일전선 구축을 노리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 다가오는 남한 대선을 전후해, 대남 선전공세에 대비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일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으로는 ‘경협’ 이름 아래 이들 나라들로부터 외화와 물자를 획득하려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개혁·개방’에 관한 한, ‘모기장 이론’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유동렬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의 지적처럼 “북한은 자본주의라는 벌레는 막고, 외자(外資)란 공기만 받겠다는 ‘모기장 개방’을 추진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요컨대, 최근 들어 다변화되고 활발해진 北의 대외전략은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 적극 참가, 미북 관계 강화를 그 배경으로 하면서, 기회 포착에 능한 북한 지도부가 한반도에서 ‘평화 무드’를 가속화시키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촉진시키기 위해 ‘국제외교 진지구축’에 나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외교 전문가들은 북한 외교의 특징으로 △예측 불가 △불의성(不意性) △탁월한 기회 포착 △강대국 간 균형 맞추기 등을 꼽은 바 있다. 우리는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그 배경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복잡한 계략을 경계해야겠다.(konas)
홍관희(안보전략연구소장/재향군인회 안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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