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주체사상이 포스트모더니즘?

김상일 교수의 주체사상 찬양 시리즈

Written by. 김남균   입력 : 2007-12-24 오전 9:52:06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0

전 대학교수가 인터넷매체를 통해 김일성 주체사상을 예찬하는 글을 연이어 올려 논란이 예상된다.

인터넷매체 ‘통일뉴스’는 최근『김상일 교수의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라는 특집연재 코너를 마련, 김상일 전 한신대 교수의 주체사상 예찬 글을 잇따라 게재하고 있다.

21일 게재된「12.19, 우리의 최대 약점을 노출시킨 날」이란 제목의 글에서, 김 교수는 주체사상이 탄생되게 된 배경이 ‘좌·우 이념 어디에서도 진실을 찾을 수 없었던 김일성의 고뇌’에 있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그는 “오늘 북을 지탱하는 힘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력에 있다”며, 이 ‘정신력’은 “강한 ‘주체’의 힘”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체사상의 진정한 배경”과 관련해, “순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회의, 순수 좌경들에 회의, 아니 그 반대인 순수 민족주의에 대한 회의. 좌와 우에도 궁극적인 진실은 없다는 결론을 얻은 김 사령(김일성)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주체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론을 내린다”며 “그런 의미에서 이미 북은 1930년대 동만 일대에서 포스트모던 시기를 맞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함께 “주체를 세우는 것은 경험·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 중심’”이기 때문에, 김일성이 “양세봉 같은 극우와도 일견 손을 잡을 수 있었고, 김정부 같은 지주한테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지난 9월 28일부터 시작된 통일뉴스의『김상일 교수의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코너에는 이 글 외에도 ‘중공당 극좌 좌경논리를 꺽은 김일성 해학’ 등 주체사상을 찬양 하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 있다. 

아래는 가장 최근 게재된 ‘12.19, 우리의 최대 약점을 노출시킨 날’ 제하 글 전문
(Konas)

김남균 코나스 객원기자(http://blog.chosun.com/hile3)

일본이 MD 를 날리던 날, 우리는?

2007년 12월 18일 일본은 MD(미사일 방어) 미사일을 하늘에 날려 성공시켰다. 그런데 바로 그날 우리 대선 주자들은 자기 밭에 표갈이만 열중하고 있었다. 하늘에는 독수리가 날고 있는데 땅을 파는 두더지 같아 보였다.

우리 자신들은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는 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라는 마치 보초병 없이 곤한 잠에 든 군영 같았다. 이 순간 외적이 쳐들어오면 속수무책일 것 같았다. ‘경제만 살린다면’ 이 구호 아래 모든 것이 매몰되고 마는 정지점과 같은 순간이었다.

1933년 9월 동녕현성 전투 직후 유격대원들이 어느 산간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일제 토벌군이 공격하여 거의 몰살당한 악몽이 되살아났다. 그때 방안에서는 극좌 좌경들이 ‘군사 민주주의’를 내세워 전 부대원들의 완전 합의가 이루어져 투표로 결판이 난 다음에야 전투를 할 수 있다고 고집하였다. 결과는 불 보듯 하지 않았겠는가?

이는 은유적으로 보아 우리의 적국들이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있는 데 나라 안에서는 서구식 민주주의란 국민 직접선거에 난장판이 되어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미국마저 이젠 자기들이 만든 선거제도에 대해 회의적이다. 지난번 고어는 일반 투표에서는 이기고도 대법원 판결에선 졌다. 이를 두고 부시는 선출된 것이 아니고 선택되었다고 했다. 과연 우리 당선자도 검찰에 의해 선택된 자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2월 19일은 이완용이 나타나도 경제 살리기기만 약속한다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온 세상에 노출시켰다. 뉴욕 타임스마저 이번 선거를 두고 한국 사람들이 경제를 택할 것인가 윤리를 택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선거라고 했다. 우리는 전자를 택하고 말았다.

나는 이 선택이 우리의 약점을 그대로 최대한 노출시킨 선택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렇다. 우리 주변 국가들에게 한국인들은 경제적 동물이고 잘 살게만 해 주면 무엇이든 통하는 나라라고 알리게 되었다. 그러면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만약에 주변 불량국가들이 우리의 이런 약점을 잡고 흥정을 하려고 할 때라든지, 이 급소를 찌르는 경우 우리는 그 자리에서 급살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당한 것이 바로 IMF 위기였다. 경제가 나쁠수록 우리는 윤리를 선택했었어야 우리는 정글의 법칙에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만들어 놓은 ‘경제 살리기’ 라는 무대 위에 모든 후보들이 다 기어 올라가 서로 자기가 경제 1인자라고 22일 동안 목청을 높였다. 설령 보수이기는 하지만 이회창 후보만이 경제가 아니고 윤리이고 도덕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의 무대를 만들어 다른 후보를 그 무대 위에 올리기에는 역 부족이었다. 나중에는 이명박 당선자가 하는 몸짓까지 따라 하면서 다른 후보들이 흉내를 낼 지경이었다.

나는 오늘 북을 지탱하는 힘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력에 있다고 본다. 강한 ‘주체’의 힘 말이다. 이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동물들은 마치 북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이 예단 아닌 예단을 한다. 지구상 사라진 민족과 나라들은 정신력의 붕괴 때문이지 경제력 때문이 아니었다. 로마도 잘 살고 부귀영화를 누릴 때에 망하고 말았다. 이 엄연한 역사의 법칙을 우리 국민들은 외면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이 위기 가운데 위기라고 나는 판단한다.

우린 가난한 소크라테스가 아닌 살찐 돼지가 되길 선택했는가?

‘매트릭스’란 영화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개작한 것이라는 데 이의가 없다. 윌리엄 어윈이 지적한 말이다.(어윈, 2003, 27) 궤변론자들이 퍼뜨린 거짓이 아테네 사회를 엄습하고 있을 때에 소크라테스는 대낮에 촛불을 들고 진실을 찾아 방황하였다. 사기꾼 정치인들, 장사꾼들, 심지어 곡학아세하는 지식인들마저 소크라테스의 이런 행동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가 눈에 가시 같이 여겨졌다.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는 궤변론자들에 눈에 가장 거슬리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나는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 known unknown" 였다.

영화 ‘매트릭스’가 소크라테스의 삶을 재조명한 이유는 바로 이 두 말 때문이다. 매트릭스라는 잘 꾸며진 틀 속에 인간을 집어넣고 밖에서 마음대로 프로그램만 만들면 얼마든지, 아니 감정까지 조정 혹은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다. 이 매트릭스는 인간의 마음이라고 해도 좋다. 자기 마음속에 자폐된 인간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소크라테스의 눈에 비친 당시 아테네 사람들은 모두 이런 매트릭스 속에 갇혀 있는 존재들이었다. 아테네의 부귀영화는 극에 달해 인간들은 물질적인 번영 속에서 자기를 잃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네오는 거짓에 대해 진실을 추구 하는 소크라테스의 화신으로 자처한다. 소크라테스는 대다수 사람들의 찬성 속에 잡혀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 도덕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 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고 했다. 매트릭스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의 철학도 원용한다. 매트릭스란 동굴이다. 인간들은 동굴 속에 갇혀 전혀 밖에 참다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 밖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불교는 이를 꿈에 비유하여 인간은 꿈속에선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모른다고 했다. 현대판으로 말하면 인간이 사이버 세계 속에선 현실 세계를 모른다는 뜻이다. 그래서 참인지 거짓인지를 전혀 분별하지 못하고 만다는 것이다. 혹시 이번 대선 우리 국민 모두 이런 동굴 속에서, 혹은 꿈속에서 치룬 것은 아닌지? 소크라테스는 바로 아테네 시민들이 이 꿈에서 깨어나기를 바랐던 것이다. 말로서 안 되어 그는 죽음으로 대신하였다.

2007년 12월 19일, 포스트모던의 원년?

폴 쟁크스는 1972년 7월 15일 오후 3시 32분에 정확하게 포스트모던이 시작하였다고 했다. 이 날에 모더니티를 상징하는 푸르트 아이고 주거단지 건물들이 해체 폭파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웨버먼, 2003, 261)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에서 포스트모던이 시작된 날은 2007년 12월 19일 오후 6시라고 본다. 아마도 역사는 나의 말에 동의하여 그렇게 기록할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동영 후보등 반 이명박 후보들은 유세 기간 내내 이번 대선을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라고 했다. 다른 후보들도 이명박 후보의 비도덕성을 닉슨과 비교하기도 하고 엔론사 사장을 비교하기도 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왜 도덕과 윤리가 쟁점화 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이렇다. 서양 사상사는 동양과 달리 유달리 소크라테스 이후 "진리란 무엇이란 질문을 던져 왔다". 그러나 1932년 괴델은 수학에서 마저 참이란 증명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 이후부턴 진실 게임을 더 이상 수학에서 벌이지 않았다.

남는 것은 불확실성과 비결정성뿐이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 후보는 이명박 후보였다고 나는 본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이 시대가 어느 시대란 걸 알고 그렇게도 자기가 자기를 두고도 거짓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한<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