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품 있는 번영의 미래로"
이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건국 후 62년의 한국 현대사, 그 영욕의 혼돈에서 모든 충돌과 투쟁이 있는데로 표출되었었다. 오랜 시간 거칠고 적라나하고 비정했던 대선은 이명박 당선자라는 시대의 매듭을 짓고 이제 역사의 전환점을 막 돌았다.
그러나 잠시 수면 아래로 갈아 앉은 갈등은 여전히 암중모색을 도모한다. 영광의 절대반지를 획득하는 그 순간, 이미 그 속에는 숙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증오 또한 숨겨져 있는 것이다.
지금도 확인사살의 몽상에 젖은 당선자 반대편들의 집요한 공격이 여기저기서 시도 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까지도 다 포함한 우리는 이제 새로운 질서로 기품을 갖춘 번영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갈등, 모순, 모든 대립 한 것들에 대한 편협을 넘어 창조적 융합을 이루는 희망의 빛이 되어 주기를 이명박 당선자에게 바란다.
건강한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실을 직시(直視)하고 극복 해야한다.
시대적 현실인 경제라는 콘덴츠가 모든 것을 압도 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더 깊은 안목으로 본다면 이번의 대선은 좌파적 환상에의 엄혹한 종지부다. 궤멸이란 단어를 그들 스스로의 입에서 한탄으로 나올정도로 국민들은 좌파적 몽상과 그 허상적 망령에 금치산 선고를 내린 셈이다.
그 도도한 물결은 단지 한국 에서만의 시대정신이 이미 아니다. 인간의 자긍심과 개개인 생명의 존엄함으로 세계를 발전시키고 행복을 추구하는 인류의 공통적 정신이다.
그 보편타당한 최대공약수가 결국 자유민주주의라는 결론이었다.
이명박이라는 한 사람의 인간적 일대기인 횡적인 걸음과, 역사적 사이클의 종적인 선이 시간과 공간의 극점을 찾아서 만난 절묘한 타이밍이 이번의 대선인 셈이다. 건국 62년의 결산의 의미다.
이념과 사상이 분해되고 퇴색되고 지리멸렬해 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도도한 물결로 새로운 역사의 새 장(章)을 펼치는 힘이 되었다. 이제는 기저에 탄탄한 반석으로 무게를 더하고, 나타난 현상이 경제로, 실용적 추구로 보였을 뿐이다.
이명박 당선자의 대북정책은 그런 의미에서 이제 무게와 힘을 가지는 것 같아 안심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국가의 긍지를 살리겠다는 태도다.
지난 수년간 수많은 정통적 보수 측이 주장한 모든 글을 압축해 보면, 결국 이미 선진국화 된 대한민국이 벼랑끝에서 낙후와 쇄락의 길을 가고 있는 북한에 대해, 허상에 메이지 말고 당당하게 국가의 주도권과 정체성과 긍지를 지니는 대북 정책, 혹은 국제외교였다.
그 태도야말로 가장 헌법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당선자는 자신이 뭐라고 표현하든, 그래서 가시적 판단의 기준이 되었던 주변의 전력으로, 이념적 오해도 잠시 받았던 그였지만, 실은 이명박 당선자의 심적 기저에는 이미 가장 보수적 기질과 신념이 견고한 층으로 근간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부분이 국민들에게 그 잡다한 모든 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을 선택하게 된 원동력이었다.
왜냐하면 국민들은, 국가는 물론 개인의 행복과 안정과, 내일에 대한 희망과, 가능하다면 세계에서 가장 웅비하는 번영을 갈구했고, 이명박이라는 인물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그렇게 할수 있는 대통령으로 신뢰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현실적 시대적 갈구(渴求)가 바로 가장 개혁적이고 진취적 발전을 지난 50년간 기적처럼 이루어 냈던 경험의 자유민주주의 우익 보수적인 가치였기 때문이다.
이명박측이 그동안 선거를 의식 ,애 써 스스로를 규정해 보려고 시도했던 쓸데없는 수사적 표현, 중도니 신자유주의니 용어에 갇힌 그 정의(定意)들이 오히려 우스울 정도이다.
낮은 자세에서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다. 국민들이 보내준 지금의 기대감과 신뢰를 이명박 당선자는 5년 내내결코 잊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그래야 국민과 함께 갈 수 있고 , 국민과 함께 가야 어떤 적을 만나도 함께 물리칠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렇게 해야 우리는 새로운 질서, 새로운 번영의 미래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고로 이회창 당을 잠깐 거론 하려한다.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이명박 대통령이나 한나라당이 만에 하나 좌편향 한다면 견제하기 위한 선명 보수당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틀리지 않는 지적이고 유비무환의 의미에서 좋은 생각이다. 한나라당은 물론 겸허하고 더욱 개혁해야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만한 선명보수당이 생길 수 있을까?
그냥 새로운 정치세력이 모여서 당을 만들겠다면 이해가 간다.
그 당이 견제세력이 되든 적이 되든 창당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거론되는 이회창 당이 이명박 대통령을 이념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선명 보수당이라고 한다면 나는 동의 할 수 없다.
스스로 선명보수당이다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곤란한 몇가지가 이미 보인다.
새롭게 받아들이고 손을 잡는 인사들의 이념과 전력에서도 이미 그 곳은 선명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최근의 창당 이념으로 내 세운 자유주의, 국제주의, 공동체주의,라는 발표는 더욱 그 새로운 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애매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아직도 정치재개나 창당의 명분조차 스스로 지니지 못한듯한 안타까움이 내비친다.
새삼 자유주의니 국제주의니는 그냥 넘어 갈 수 있다.
공동체 주의란 건 무엇인가?
물론 지난 10년간 전혀 모순된 행태를 보여 용어의 프레임에 갇힐 필요가 전혀 없다는걸 궤멸직전의 현 여권이 이미 학습시켜 주긴 했다.
그러나 공동체주의란 자유주의와는 대치점을 이룬다고 보는게 대부분의 시각이고 그래서 얼핏 좌파적 지향주의로 오해 될 수 있다.
물론 지피지기의 입장이라면서 맑스를 강의하는 분과 친밀하다보면 그런 자문을 받을 수도 있다고 보여지는 대목이다. 공동체주의란 무슨 말로 미화를 시키든 ,그 용어속에 전체주의적 뉘앙스를 떨칠 수가 없는게 사실이다. 전체주의란 좌파적이고 공동체를 상위에 두며 개인은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희생될 수도 있다는 의미를 조금은 담고 있다.
이는 명백히 자유민주주의에 대치된다. 자유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와 행복과 번영이 상위개념의 근간이고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질서를 지키기 위한 한 방법으로 국가라던가의 공동체가 필요에 의해 존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선 후 이회창씨가 창당을 선언하면서 한 말이 생각난다. 천민자본주의라는 단어다.
누가 듣기에도 경제와 실용이라는 시대정신으로 승리한 이 당선자를 겨냥한 가시 돋친 공격으로 들렸다. 아닌가?
천민자본주의라는 단어를 공격용으로 가장 즐겨 애용하는 부류들이 여태까지는 대부분 좌파들이었다. 강소국 연방제라는, 용어자체에 이미 모순을 담고있는 정책도 여전히 그리 개운하지 않다. 물론 이 모두에 친절한 설명이 있었다. 그러나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비핵을 원칙으로 대북관계를 대한민국이 주도적으로 긍지를 가지고 ,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면서 다시 재편하게 하겠다는 이명박 당선자가 훨씬 더 선명한 보수로 여겨 진다.
그래서 단순한 정적으로서 창당이 하겠다는 건 하는 수 없으나 이념적으로 더 선명한 보수로서 대통령을 견제하겠다는 이회창 당이라는 것은 넌센스로 보인다.
누구나 이회창씨를 의심없는 우익보수로 믿고 있고 나 역시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기존의 우익보수들이 그곳으로 스스럼없이 모여 지지하고 있다.
가시적으로 보면 우익보수가 우익보수의 적이 되겠다는 것이다.
미래로 도약하고 번영해야 할 대한민국으로나 새로운 대통령으로서는 또 하나의 작은 걸림돌 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당선자에 대한 글 속에서 기왕에 이회창 신당을 거론했으니 한마디 더 한다면 새로운 당의 확고한 명분을 더 견고한 것으로 찾아내면 어떨런지?
아울러 이명박 당선자에게도 권고하고 싶다.
이즈음의 모든 화두가 실용으로 넘쳐나는 것 같다.
국내정책은 물론 국제외교도 당연히 국익을 바탕으로 한 실용이 나쁘다는게 결코 아니다.
실용적이라는 부분은 이명박 당선자의 전공이고 특기이고 최대 장점이며 국민들의 크나큰 기대치이다 .
대통령이 되면 이당선자의 말처럼 경제, 실용을 중점으로 국민개개인과 국가의 번영을 위해 역동적 추진력으로 남은 생애를 다 받칠 정도로 열정적으로 잘 해주리라 믿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국민들도 이미 다 아는 이명박 당선자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아쉽다. 신발전체제니 실용이니 개혁이니 성과위주니 너무 한곳으로만 확대된 것 같다.
우리는 새로운 미래로 가야한다.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더없이 차갑고 냉혹한 성과위주의 실용만으로는 인간의 품위를 지탱할 수 없다.
우리가 경제벌레가 아니고 인간인 이상, 현실과 실용의 한쪽 날개만으로는 기품 있는 번영의 조화를 이룰 수가 없다.
한쪽만을 과시하는 동안 실은 그렇지만은 않는데도 허점이 보여 본의 아니게 다른 한쪽을 허망하게 내어 주는 수가 있다.
이명박 당선자에게 실용은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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