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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60년 : ② 신문으로 본 건국일 전후

Written by. 양정우, 신재우   입력 : 2008-01-03 오후 5: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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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감속 일제잔재 청산ㆍ이념대립도 엿보여

 "과거 40년간 일제의 속박하에 신음하다가 지금이야 세계 열강과 같이 단결을 맺게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일을 하루 앞둔 1948년 8월14일.

 전국에 뿌려진 일간지에는 미국과 중국이 대한민국 정부를 공식 승인한다는 소식과 함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발표한 담화문이 일제히 1면 주요 기사로 실렸다.

 '세계 열강과 비견(比肩)', '미중 대한정부를 승인 미국대사 뮤쵸씨 임명', '정부선포축하식에 맥아더 장군 초청', '미중 양국에 이 대통령 치사 담화' 등 기사가 빼곡히 자리잡은 지면에서 급박하게 돌아가던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특히 당시 정부가 발표한 담화문 등을 담은 기사에서는 북한과 첨예하게 대치했던 이승만 정부가 건국을 앞두고 미국으로부터 한반도 유일의 단독정부로 인정받기를 얼마나 갈망했는지 대략 가늠해 볼 수 있다.

 "이 것은 최초로 북미합중국에서 우리를 독립한 데서 세계의 일원으로 인도하여 준 것이다. 우리는 정당한 문명국가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대한민국은 매우 기뻐하며 감사히 생각한다."

"13일 국무회의에서 별 토의없이 미국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할 것을 결의하는 동시, 대통령 명의로 타전…(중략)…이 국무총리와 장 외무장관이 상오 열시반 하지 중장과 딘 군정장관을 방문하고 사의를 표명…(하략)"
기사에는 정부수립 선포일을 앞두고 내한한 외교사절의 모습도 상세하게 묘사돼 있다.

 "신정부수립 경축의 중국측 사절 현 입법원장 반조영 박사와 중국 가톨릭 문화협회장 왕조명씨는 어제 상오 11시에 김포비행장에 도착하였는데 그 사절은 곧 중앙청 이 대통령을 방문하고 금반 정부수립의 경축의 뜻을…(하략)"(조선일보 1948.8.14)
15일 거행된 정부수립 선포식을 전하는 16일자 신문들은 건국을 자축하는 시민 표정을 스케치하듯 묘사했다.

 "세돌마즌 팔일오 해방기념일 통일은 못 보았다해도 정부수립을 세계에 선포하는 십오일 지루한 장마도 개어 마른 하늘빛이 더욱 맑아 보이는 첫 새벽부터 가가호호에는 국기를 게양하고 깨끗이 청소한 시가에는 중앙청광장을 중심 각 단체를 대표하는 군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 도열한 군중들의 틈을 해치고 극동연합국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과 그의 부인이 입장과 아울러 내외국의 고관 명사 다수 참석하여…(하략)"(조선일보 1948.8.16)

 정부수립 축하식장인 중앙청 광장을 빼곡히 메운 군중 사이로 극동연합국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 내외가 등장하고 참석 내외빈의 축하 속에 곳곳에서 정부수립을 환영하는 인파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날 신문은 이승만 정부가 맥아더 장군에게 해방과 건국의 주역임을 상징하는 여러 축하 선물을 선사하고 한미 양국의 친목을 한층 두텁게 다졌다며 해방 세돌 속에 열린 건국식장의 표정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수립 선포만이 당시 세간의 관심거리는 아니었다.

 갑론을박 속에 진행됐던 일제잔재 청산작업이나 이념 갈등, 궁핍했던 남부여대의 생활상도 지면 곳곳을 차지하고 있다.

 일제 부역자 처벌을 위한 '반민족행위 처벌법'의 제정 과정을 '악질분자 처벌 반민족행위 처벌법'이나 '반민족 행위 처벌법 특별재판소 구성 등 초안' 등 기사로 상세히 전했다.

 또 '수도청 돌연활동 남로당계열 칠십여명 검거', '정부 수립 반대 삐라사건 체포' 등 기사는 남한내 이념 대립을 생동감 있게 전달하며 당시 이승만 정부의 단독정부 수립이 절반의 지지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건국을 앞두고 한반도 남쪽을 덮친 대홍수나 200여명의 사망자를 냈던 경기 남양주군 열차전복사고 등도 '남한의 수해 아비규환의 참상', '열차 전락사건. 책임 전가에 공분난금(公憤難禁)' 기사로 기록돼있다.

 이밖에 건국을 맞아 일선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에 거듭 변화를 촉구하는 기사도 지면 한 켠을 차지했다.

 '국민과 대립된 경찰'이라는 제목에 '진실한 민주경찰 확립하라' 부제를 단 이 기사는 일제강점기 경찰의 과오를 되짚으며 새 정부 수립에 맞게 경찰이 민주적으로 변화해 줄 것을 준엄하게 촉구했다.

 "해방후 남한의 치안을 담당하는 것은 우리의 국립경찰이었다. 과거 그들의 공적은 적지 않았지만 또 일방으로는 저지른 과오도 또한 적지 않았다. 민주경찰의 표본에 비추어 그들은 과연 여기에 해당할 만 하였는가. 새 정부의 수립을 앞두고 그들의 과거업적을 해부 비판하는 것은 즉 앞날의 치안을 위한 이바지가 되는 것이다."(동아일보 1948.8.14)

 양정우, 신재우 기자(연합뉴스)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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