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60년 : ⑨미주 한인사회 명암
Written by. 장익상, 김병수
입력 : 2008-01-28 오전 8:38:33
210만명 시대.."정치력 갖춘 풀뿌리로"
"8천568명에서 210만명 시대로, 무일푼에서 평균 소득 6만2천 달러 시대로."
대한민국 건국 이후 60년간 모국이 경제발전과 민주화 속에 세계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사이 하와이 사탕수수 경작민으로 미국땅에 첫 발을 디딘 미주 한인들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일궈냈다.
지난 1903년 1월 13일 하와이에 한인 102명을 실은 첫 배가 도착한 이후 일제 강점기이던 1940년까지 이민자는 8천568명에 그쳤으나 한국전쟁을 거치고 1980년대 들어 숙련 노동자와 화이트칼라의 이민이 급증하면서 한인들의 이민 물결이 본격화돼 현재는 불법체류자와 유학생까지 포함해 최대 210만명에 달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인사회는 지난 7월 종군위안부 결의안이 미 하원을 통과하면서 정치력 신장을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연방의원이나 주지사를 배출하지 못하는 등 미약한 정치력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급성장하는 한인 경제 규모 = 1904년부터 샌프란시스코 등 미 서부지역으로 이민을 와 주로 농업분야에서 종사하며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한인들은 이제 정치, 경제 등 미국 내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몫을 하며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별 거주 한인들을 보면 캘리포니아주에 43만913명, 뉴욕 13만9천846명이 각각 살고 있고 뉴저지와 워싱턴, 일리노이, 텍사스, 버지니아에도 5만명 이상씩 거주하는 등 50개주 어느 곳에서건 한인을 찾아보기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미 투자액은 올해의 경우 3억6천만 달러로 잠정 집계되는 등 지난해 1억6천100만 달러에 비해 1년 사이 2배 이상 크게 증가했고 투자규모는 해를 거듭할 수록 더욱 큰 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대학졸업 학력자가 전체의 52%를 넘어서는 한인들의 가구당 평균소득이 6만2천 달러에 이르고 자영업 비율은 28.1%로 아시아 평균 9.58%보다 월등히 높다.
최대 한인 거주지역인 로스앤젤레스(LA)의 경우 코리아타운 내 한인 은행이 8개나 되고 이들 은행의 수신고가 90억 달러에 달하는 데, 한국에서 유입되는 자금이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한인 투자는 끊이지 않고 있다. LA 지역 한인들의 영업 자산이 140억-180억 달러로 추정되고 다운타운 의류산업체 759개 가운데 679개가 한인들의 소유이며 25개에 이르는 대형 한인 마켓들이 내년에는 30개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1997년 이후 한인들의 주택 및 상업건물 투자가 크게 늘어 현재는 코리아타운 내 상업건물의 38%, 전체 주택의 4분의 1을 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양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코리아타운을 보는 주류 사회의 시각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져 LA 타임스의 경우 '유일하게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은 채 경제가 살아숨쉬는 곳'이라고 코리아타운을 소개하고 있다.
◇침묵하는 모래알서 정치력 갖춘 풀뿌리로 = "코리아 아메리칸의 풀뿌리운동이 돈과 외교력을 앞세운 일본의 로비를 꺾었다."(한인유권자센터 김동석 사무총장)
2007년 7월30일 오후 3시 15분 미 하원 본회의장. 미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하원에서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비난하는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자 현장에서 이를 지켜보던 한인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동안 낯선 이국 땅에서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잃어버린 채 침묵하는 모래알로 살아왔던 한인들이 이젠 정치력을 갖춘 풀뿌리로 서게 됐다는 사실이 감격의 눈물을 쏟게 한 것이다.
한인동포들은 미국 내 소수 민족 중 경제적으로 든든한 기반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정치참여는 히스패닉은 물론이고 아시아계 소수 민족 중에서도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내 한인사회는 한미연합회(KAC), 시민연맹(LOKA) 등을 중심으로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을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단체들은 한인들의 힘을 '투표'로 보여주기 위해 먼저 한인들을 대상으로 시민권 획득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주미대사관 관계자는 "현재 210만명 재미동포 가운데 시민권자는 30-40%인 60만-80만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지만 선거를 위해 유권자로 등록하거나 실제 투표에 참여하는 동포는 극히 적다"고 말했다.
미주한인들의 낮은 정치참여도를 보여주는 사례로 지난 11월 지방선거 때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한인유권자 수는 1만1천 명이었지만 실제 투표자수는 3천 명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고 한인단체 관계자는 밝혔다.
그러나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 이후 한인 1.5세, 2세들이 결집하면 한인사회의 권익, 한국 관련 이슈 등에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따라 한인단체들을 중심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미 의회의 비준동의, 미국의 비자면제프로그램 가입 등을 성사시키기 위한 캠페인이 확산되고 있다. 또 미국 내 동포사회의 결집력을 향상하기 위해 독립운동가인 서재필 박사의 동상 건립운동과 워싱턴 D.C.에 있는 구한말 공사관 매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성장에 가려진 과제들 =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한인 사회는 다른 민족이 부러워할 만큼 놀랄만한 성장을 이룩했지만 안으로는 적지않은 과제들이 쌓여갔다.
1992년 4월 29일 발생한 흑인 폭동은 미국 내에서 살아가야 하는 한인이 단순히 '코리언'이 아니라 '코리언 아메리칸'으로서 다른 인종과 화합,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값진 교훈을 체험하게 했다.
당시 흑인 로드니 킹을 폭행한 백인 경찰관들에 대한 무죄평결로 촉발된 폭동은 코리아타운 남쪽 사우스센트럴에서 발생했지만 코리아타운으로 급격히 확산돼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한인 가운데 이재성(당시 19세)군이 오인사격으로 사망하고 46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웨스턴가(街) 일대의 가구점을 비롯한 각종 상가들이 불타거나 약탈당했다. LA지역 전체 피해업소 8천여개 가운데 2천200여개가 한인 업소였고 피해액만 4억 달러에 달했다.
특히 폭동 진압 후 일부 미국 언론들이 흑백간 문제로 비화한 이 사건을 한흑간 대결로 왜곡 보도함으로써 한인들의 피해를 확산시켰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불이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제력만 키울게 아니라 정치력을 키우는 등 주류 사회에 깊숙이 진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케 했다.
한편 2005년 6월 남가주에 거주하는 335명의 13-18세 한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부모 세대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을 설문조사한 결과 ▲부(富)에 대한 집착 ▲음주문화 ▲공중도덕 부재를 꼽았고, 부모와의 문화적 갈등을 경험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66%가 '그렇다'고 답했다.
같은 해 4월 평균 나이 47세의 한인 152명을 상대로 실시한 한 조사에서는 이민 생활의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평균 이상'이 54%, '평균 이하'가 40%, '아주 낮다'가 5%로 나타났고, 이민 생활의 장벽으로 언어(70%), 경제문제(8%), 문화차이(6%)를 지적함으로써 미국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언어의 벽을 뛰어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장익상, 김병수 특파원(연합뉴스)
"8천568명에서 210만명 시대로, 무일푼에서 평균 소득 6만2천 달러 시대로."
대한민국 건국 이후 60년간 모국이 경제발전과 민주화 속에 세계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사이 하와이 사탕수수 경작민으로 미국땅에 첫 발을 디딘 미주 한인들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일궈냈다.
지난 1903년 1월 13일 하와이에 한인 102명을 실은 첫 배가 도착한 이후 일제 강점기이던 1940년까지 이민자는 8천568명에 그쳤으나 한국전쟁을 거치고 1980년대 들어 숙련 노동자와 화이트칼라의 이민이 급증하면서 한인들의 이민 물결이 본격화돼 현재는 불법체류자와 유학생까지 포함해 최대 210만명에 달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인사회는 지난 7월 종군위안부 결의안이 미 하원을 통과하면서 정치력 신장을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연방의원이나 주지사를 배출하지 못하는 등 미약한 정치력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급성장하는 한인 경제 규모 = 1904년부터 샌프란시스코 등 미 서부지역으로 이민을 와 주로 농업분야에서 종사하며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한인들은 이제 정치, 경제 등 미국 내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몫을 하며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별 거주 한인들을 보면 캘리포니아주에 43만913명, 뉴욕 13만9천846명이 각각 살고 있고 뉴저지와 워싱턴, 일리노이, 텍사스, 버지니아에도 5만명 이상씩 거주하는 등 50개주 어느 곳에서건 한인을 찾아보기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미 투자액은 올해의 경우 3억6천만 달러로 잠정 집계되는 등 지난해 1억6천100만 달러에 비해 1년 사이 2배 이상 크게 증가했고 투자규모는 해를 거듭할 수록 더욱 큰 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대학졸업 학력자가 전체의 52%를 넘어서는 한인들의 가구당 평균소득이 6만2천 달러에 이르고 자영업 비율은 28.1%로 아시아 평균 9.58%보다 월등히 높다.
최대 한인 거주지역인 로스앤젤레스(LA)의 경우 코리아타운 내 한인 은행이 8개나 되고 이들 은행의 수신고가 90억 달러에 달하는 데, 한국에서 유입되는 자금이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한인 투자는 끊이지 않고 있다. LA 지역 한인들의 영업 자산이 140억-180억 달러로 추정되고 다운타운 의류산업체 759개 가운데 679개가 한인들의 소유이며 25개에 이르는 대형 한인 마켓들이 내년에는 30개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1997년 이후 한인들의 주택 및 상업건물 투자가 크게 늘어 현재는 코리아타운 내 상업건물의 38%, 전체 주택의 4분의 1을 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양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코리아타운을 보는 주류 사회의 시각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져 LA 타임스의 경우 '유일하게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은 채 경제가 살아숨쉬는 곳'이라고 코리아타운을 소개하고 있다.
◇침묵하는 모래알서 정치력 갖춘 풀뿌리로 = "코리아 아메리칸의 풀뿌리운동이 돈과 외교력을 앞세운 일본의 로비를 꺾었다."(한인유권자센터 김동석 사무총장)
2007년 7월30일 오후 3시 15분 미 하원 본회의장. 미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하원에서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비난하는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자 현장에서 이를 지켜보던 한인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동안 낯선 이국 땅에서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잃어버린 채 침묵하는 모래알로 살아왔던 한인들이 이젠 정치력을 갖춘 풀뿌리로 서게 됐다는 사실이 감격의 눈물을 쏟게 한 것이다.
한인동포들은 미국 내 소수 민족 중 경제적으로 든든한 기반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정치참여는 히스패닉은 물론이고 아시아계 소수 민족 중에서도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내 한인사회는 한미연합회(KAC), 시민연맹(LOKA) 등을 중심으로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을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단체들은 한인들의 힘을 '투표'로 보여주기 위해 먼저 한인들을 대상으로 시민권 획득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주미대사관 관계자는 "현재 210만명 재미동포 가운데 시민권자는 30-40%인 60만-80만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지만 선거를 위해 유권자로 등록하거나 실제 투표에 참여하는 동포는 극히 적다"고 말했다.
미주한인들의 낮은 정치참여도를 보여주는 사례로 지난 11월 지방선거 때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한인유권자 수는 1만1천 명이었지만 실제 투표자수는 3천 명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고 한인단체 관계자는 밝혔다.
그러나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 이후 한인 1.5세, 2세들이 결집하면 한인사회의 권익, 한국 관련 이슈 등에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따라 한인단체들을 중심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미 의회의 비준동의, 미국의 비자면제프로그램 가입 등을 성사시키기 위한 캠페인이 확산되고 있다. 또 미국 내 동포사회의 결집력을 향상하기 위해 독립운동가인 서재필 박사의 동상 건립운동과 워싱턴 D.C.에 있는 구한말 공사관 매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성장에 가려진 과제들 =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한인 사회는 다른 민족이 부러워할 만큼 놀랄만한 성장을 이룩했지만 안으로는 적지않은 과제들이 쌓여갔다.
1992년 4월 29일 발생한 흑인 폭동은 미국 내에서 살아가야 하는 한인이 단순히 '코리언'이 아니라 '코리언 아메리칸'으로서 다른 인종과 화합,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값진 교훈을 체험하게 했다.
당시 흑인 로드니 킹을 폭행한 백인 경찰관들에 대한 무죄평결로 촉발된 폭동은 코리아타운 남쪽 사우스센트럴에서 발생했지만 코리아타운으로 급격히 확산돼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한인 가운데 이재성(당시 19세)군이 오인사격으로 사망하고 46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웨스턴가(街) 일대의 가구점을 비롯한 각종 상가들이 불타거나 약탈당했다. LA지역 전체 피해업소 8천여개 가운데 2천200여개가 한인 업소였고 피해액만 4억 달러에 달했다.
특히 폭동 진압 후 일부 미국 언론들이 흑백간 문제로 비화한 이 사건을 한흑간 대결로 왜곡 보도함으로써 한인들의 피해를 확산시켰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불이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제력만 키울게 아니라 정치력을 키우는 등 주류 사회에 깊숙이 진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케 했다.
한편 2005년 6월 남가주에 거주하는 335명의 13-18세 한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부모 세대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을 설문조사한 결과 ▲부(富)에 대한 집착 ▲음주문화 ▲공중도덕 부재를 꼽았고, 부모와의 문화적 갈등을 경험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66%가 '그렇다'고 답했다.
같은 해 4월 평균 나이 47세의 한인 152명을 상대로 실시한 한 조사에서는 이민 생활의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평균 이상'이 54%, '평균 이하'가 40%, '아주 낮다'가 5%로 나타났고, 이민 생활의 장벽으로 언어(70%), 경제문제(8%), 문화차이(6%)를 지적함으로써 미국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언어의 벽을 뛰어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장익상, 김병수 특파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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