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60년 : ⑩재일동포 권리찾기
Written by. 최이락
입력 : 2008-02-06 오후 10:43:27
민단 지방선거 참정권 관철 추진
"이제 외국인 참정권 쟁취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기 시대의 강제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와 귀국하지 못한 채 눌러 살고 있는 재일동포와 자손들을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 되는 2008년을 맞아 10여년째 표류하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일본 지방선거 참정권 부여 운동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재일동포들의 조직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은 2008년을 참정권 관철의 해로 정하고 일본 각 정당과 시민단체 회원 등을 상대로 협조를 호소하고 있다. 민단이 이렇게 참정권에 공을 들이는 것은 그만큼 재일동포를 비롯한 외국인들이 일본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위상이 강화됐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21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가운데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은 85만명선, 그중 절반은 재일동포다.
재일동포는 일본의 스포츠계나 연예계, 정계 등 각 분야에서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다. 이처럼 위상이 강화되고 있는 만큼 '정당한 권리'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일동포가 제 목소리를 내기까지에는 기나 긴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있었다. 재일동포의 뿌리는 일제의 한반도 강제 점령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의 100년 전이다. 일본은 한국인 노동자들을 강제로 연행해 탄광 등지에서 강도높은 노동을 시켰다. 2차대전이 막바지 단계였던 1944년에는 당시 조선인들에게도 징병제를 적용, 1차로 4천여명이 징집돼 훈련을 받고 전쟁터로 끌려가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한인들이 얼마나 많이 일본에 끌려왔는지는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수천명의 조선인들이 학살당했다는 점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배한 뒤 일부는 귀국선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70만명 이상은 귀국하지 못한 채 이국땅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극심한 민족 차별을 감내하며 음식점이나 행상,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해 갔으며 일부는 빠찡꼬 업계에도 뛰어 들었다.
그로부터 60년 가량이 지난 현재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일본에 거주하는 동포는 130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민단 소속 동포는 약 50만명, 조총련 6만여명, 장단기 체류인이 15만명선이며, 일본 국적 귀화 동포도 50만~6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동안 재일동포 사회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극심한 민족 차별을 겪으며 그늘 속에서 살아왔던 1세대와 달리 재일동포 2세대나 3, 4세대는 일본 사회에서 당당하게 생활하고 있다.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지만, 반대로 동시에 일본인이기도 하고 한국인이기도 하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핍박 속에 고통스런 생활을 해 왔던 1세대와 달리 이들은 주변의 일본인들과 경쟁하면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제 목소리를 내며 생활해 나가는 것이다.
재일동포들의 이런 태도는 일본 사회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무엇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와 한류 확산으로 일본 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면서 재일동포에 대한 인식도 종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변했다. 이는 올해 5월 일본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외국어 과목 개설 현황에서도 나타난다. 전국 고교에서 영어 이외의 외국어를 개설한 학교가 2천42개교였으며, 이들 가운데 한국어 강좌 개설 학교가 426개교로 중국(819개교)에 이어 2위로 나타난 것이다.
또 도쿄와 오사카(大阪) 등 일본 각지에 있는 한국교육원의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 수가 지난해 1천693명에서 올해는 3천854명으로 2천명 이상 증가하면서 한류 열풍이 한국어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 유학온 한국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한국어 과외를 통해 학비나 생활비를 조달하는 것은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재일동포들도 상당한 노력을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외국인 지문 날인 문제였다. 해방 후 조직을 정비하며 권익찾기 운동을 시작한 민단은 1980년대 들어서 재일동포 법적 지위와 처우문제를 둘러싸고 일본 정부와 끈질기게 대립했다. 공영주택 입주 문제나 아동수당, 연금 등 복지 문제는 물론 국적에 의한 취업 차별, 지문 날인 문제 등을 놓고 일본 정부와 첨예하게 대립했다. 1986년 민단이 중심이 돼 '지문날인 철폐 100만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총 서명자수는 주최측도 놀랄 정도인 180만명이나 됐다. 그 결과 2000년 4월 일본 정부로부터 지문날인 폐지를 이끌어냈다.
이런 성과와 일본 사회의 변화를 바탕으로 민단은 2008년을 외국인 지방 참정권 관철의 해로 정했다. 한국의 경우 2년 전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에게 지방 선거 투표권을 주고 있지만 일본이 여전히 재일동포 등 정주 외국인에게 지방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는 비합리적인 행태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정 진(鄭進) 민단 단장은 최근 주일 한국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재일 한국인은 지역사회에서 자치회 일원 등으로 일상생활의 모든 면에 참여하고 있다"며 "일본 사회에서 지역 주민으로 생활하고 있는데다 납세 의무를 다하고 있는데도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밝혔다.
민단의 주도적인 노력으로 1998년 당시 민주당과 신당평화(현 공명당)가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데 이어 거의 매년 법안 제정을 위한 노력이 진행됐다. 그러나 정치권의 무관심과 일부 극우파 의원들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나 민단은 유연한 외교를 내걸고 있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 내각이 들어선데 대해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2세인 백진훈(白眞勳.일본명 하쿠 신쿤) 참의원 의원은 "외국인과 잘 사귀는 것이 앞으로 일본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외국인을 배제해서는 되겠느냐"며 동료 의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서원철(徐元喆) 민단 국제국장은 "지방 참정권은 국회의원을 뽑는 것이 아니라 지역 일꾼을 선출하는 것인 만큼 일본 헌법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며 "끊임없는 문제제기로 일본 사회에 이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키고 국회와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설득을 강화해 2008년에는 반드시 이를 관철시킬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이런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일각에서는 재일동포 사회가 좀 더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재일동포의 경우 민단을 중심으로 권익보호 활동이 이뤄지고 있지만 실제 활동이 재일동포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단체 운영도 동포 1세대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폐쇄성을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또 한인 동포의 또 다른 축의 하나인 조총련과의 관계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대립이 아닌 협력의 틀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외국인 지방 참정권 쟁취라는 대외 목표와 함께 재일동포 1세대는 물론 그 이후 세대를 아우르고, 남북한 평화무드에 부응해 조총련과도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일본에 거주하는 동포들 모두가 지지할 수 있는 단체로 거듭나기 위한 내부 개혁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최이락 특파원(연합뉴스)
"이제 외국인 참정권 쟁취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기 시대의 강제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와 귀국하지 못한 채 눌러 살고 있는 재일동포와 자손들을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 되는 2008년을 맞아 10여년째 표류하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일본 지방선거 참정권 부여 운동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재일동포들의 조직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은 2008년을 참정권 관철의 해로 정하고 일본 각 정당과 시민단체 회원 등을 상대로 협조를 호소하고 있다. 민단이 이렇게 참정권에 공을 들이는 것은 그만큼 재일동포를 비롯한 외국인들이 일본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위상이 강화됐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21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가운데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은 85만명선, 그중 절반은 재일동포다.
재일동포는 일본의 스포츠계나 연예계, 정계 등 각 분야에서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다. 이처럼 위상이 강화되고 있는 만큼 '정당한 권리'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일동포가 제 목소리를 내기까지에는 기나 긴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있었다. 재일동포의 뿌리는 일제의 한반도 강제 점령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의 100년 전이다. 일본은 한국인 노동자들을 강제로 연행해 탄광 등지에서 강도높은 노동을 시켰다. 2차대전이 막바지 단계였던 1944년에는 당시 조선인들에게도 징병제를 적용, 1차로 4천여명이 징집돼 훈련을 받고 전쟁터로 끌려가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한인들이 얼마나 많이 일본에 끌려왔는지는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수천명의 조선인들이 학살당했다는 점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배한 뒤 일부는 귀국선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70만명 이상은 귀국하지 못한 채 이국땅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극심한 민족 차별을 감내하며 음식점이나 행상,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해 갔으며 일부는 빠찡꼬 업계에도 뛰어 들었다.
그로부터 60년 가량이 지난 현재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일본에 거주하는 동포는 130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민단 소속 동포는 약 50만명, 조총련 6만여명, 장단기 체류인이 15만명선이며, 일본 국적 귀화 동포도 50만~6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동안 재일동포 사회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극심한 민족 차별을 겪으며 그늘 속에서 살아왔던 1세대와 달리 재일동포 2세대나 3, 4세대는 일본 사회에서 당당하게 생활하고 있다.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지만, 반대로 동시에 일본인이기도 하고 한국인이기도 하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핍박 속에 고통스런 생활을 해 왔던 1세대와 달리 이들은 주변의 일본인들과 경쟁하면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제 목소리를 내며 생활해 나가는 것이다.
재일동포들의 이런 태도는 일본 사회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무엇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와 한류 확산으로 일본 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면서 재일동포에 대한 인식도 종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변했다. 이는 올해 5월 일본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외국어 과목 개설 현황에서도 나타난다. 전국 고교에서 영어 이외의 외국어를 개설한 학교가 2천42개교였으며, 이들 가운데 한국어 강좌 개설 학교가 426개교로 중국(819개교)에 이어 2위로 나타난 것이다.
또 도쿄와 오사카(大阪) 등 일본 각지에 있는 한국교육원의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 수가 지난해 1천693명에서 올해는 3천854명으로 2천명 이상 증가하면서 한류 열풍이 한국어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 유학온 한국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한국어 과외를 통해 학비나 생활비를 조달하는 것은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재일동포들도 상당한 노력을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외국인 지문 날인 문제였다. 해방 후 조직을 정비하며 권익찾기 운동을 시작한 민단은 1980년대 들어서 재일동포 법적 지위와 처우문제를 둘러싸고 일본 정부와 끈질기게 대립했다. 공영주택 입주 문제나 아동수당, 연금 등 복지 문제는 물론 국적에 의한 취업 차별, 지문 날인 문제 등을 놓고 일본 정부와 첨예하게 대립했다. 1986년 민단이 중심이 돼 '지문날인 철폐 100만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총 서명자수는 주최측도 놀랄 정도인 180만명이나 됐다. 그 결과 2000년 4월 일본 정부로부터 지문날인 폐지를 이끌어냈다.
이런 성과와 일본 사회의 변화를 바탕으로 민단은 2008년을 외국인 지방 참정권 관철의 해로 정했다. 한국의 경우 2년 전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에게 지방 선거 투표권을 주고 있지만 일본이 여전히 재일동포 등 정주 외국인에게 지방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는 비합리적인 행태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정 진(鄭進) 민단 단장은 최근 주일 한국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재일 한국인은 지역사회에서 자치회 일원 등으로 일상생활의 모든 면에 참여하고 있다"며 "일본 사회에서 지역 주민으로 생활하고 있는데다 납세 의무를 다하고 있는데도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밝혔다.
민단의 주도적인 노력으로 1998년 당시 민주당과 신당평화(현 공명당)가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데 이어 거의 매년 법안 제정을 위한 노력이 진행됐다. 그러나 정치권의 무관심과 일부 극우파 의원들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나 민단은 유연한 외교를 내걸고 있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 내각이 들어선데 대해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2세인 백진훈(白眞勳.일본명 하쿠 신쿤) 참의원 의원은 "외국인과 잘 사귀는 것이 앞으로 일본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외국인을 배제해서는 되겠느냐"며 동료 의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서원철(徐元喆) 민단 국제국장은 "지방 참정권은 국회의원을 뽑는 것이 아니라 지역 일꾼을 선출하는 것인 만큼 일본 헌법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며 "끊임없는 문제제기로 일본 사회에 이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키고 국회와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설득을 강화해 2008년에는 반드시 이를 관철시킬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이런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일각에서는 재일동포 사회가 좀 더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재일동포의 경우 민단을 중심으로 권익보호 활동이 이뤄지고 있지만 실제 활동이 재일동포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단체 운영도 동포 1세대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폐쇄성을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또 한인 동포의 또 다른 축의 하나인 조총련과의 관계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대립이 아닌 협력의 틀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외국인 지방 참정권 쟁취라는 대외 목표와 함께 재일동포 1세대는 물론 그 이후 세대를 아우르고, 남북한 평화무드에 부응해 조총련과도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일본에 거주하는 동포들 모두가 지지할 수 있는 단체로 거듭나기 위한 내부 개혁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최이락 특파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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