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60년 : ⑫'두 조국' 사이의 고려인
Written by. 유창엽
입력 : 2008-02-19 오후 2:37:56
"정체성 확립위해 남북 공동사업 필요"
"남한과 북한은 똑같은 조국일 뿐입니다."
김 로만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장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조상들이 한반도를 떠나 연해주로 이주할 때 한반도는 갈라지지 않았다"며 "남과 북이 빨리 통일돼 통일된 조국이 국제사회에서 당당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조부모가 연해주에서 카자흐로 강제이주 당해 고려인 3세인 김 회장은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에 관한 질문에는 머뭇거렸다.
남과 북이 똑같은 조국이기 때문에 남한의 건국에 대해 특정 의미를 부여하기가 '곤혹스럽다'는 의미로 읽혔다.
그의 이런 머뭇거림은 카자흐를 비롯해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지에 거주하는 고려인 53만여명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고려인들은 이처럼 남과 북 어느 한쪽도 편들 수 없는 어정쩡한 '중간지대'에 놓여 있다.
고려인의 이 같은 상황은 역사적으로 생겨났다.
한반도가 쪼개지지 않은 조선 말기이던 1860년대 기근과 관리들의 학정을 피해 새 삶의 터전을 찾아 연해주로 이주하기 시작한 한인들은, 적어도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기 전까지는 공동체를 이뤄 한글을 배우는 등 조국과 연계된 삶을 살았다. 지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도 조국과 가까웠다.
시베리아와 연해주 개척에 공헌한 이들 한인은 1904년 러일전쟁과 이듬해 을사늑약, 1910년 국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연해주를 조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해외기지로 발전시켜 한국독립운동사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특히 을사늑약 전후부터 3.1운동 때까지 국내외 독립운동자 중 연해주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고 활동한 이는 드물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한인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후에는 상당기간 한글 교육도 일체 금지당하는 등 조국과 점점 멀어져갔다. 러시아어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소련내 여러 소수민족중 하나로 편입됐다.
연해주 한인의 후손인 고려인들은 조국과 유리됐음에도 강인한 정신력과 근면성, 높은 교육열 등 조상에게서 고스란히 물려받은 특질을 십분발휘해 현지에서 성공적인 정착을 했다. 소련시절 수많은 노력영웅을 배출, 소수민족중 우수민족으로 우뚝 서게 됐다.
고려인들의 존재와 삶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한국이 소련과 1990년 수교한데 이어 다음해 소련 붕괴로 산하 공화국들이 독립하면서부터다.
고려인은 카자흐와 우즈벡 등 독립된 옛 소련 공화국의 경제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해오고 있다.
특히 고려인 거주 공화국의 하나인 카자흐는, 독립 이후 개방정책을 펴 외국기업의 자원개발 참여를 허용함으로써 근년 들어 고도의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고려인은 이 과정에서 건설과 유통부문에서 활약, 많은 성공신화를 연출했다.
현재 중앙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앞서 가고 있는 카자흐에는 한국기업들의 진출붐이 일어 한국 및 한국기업인과 고려인간 접촉은 크게 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카자흐 고려인협회는 카자흐에 진출한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동시에 북한과도 관계발전을 꾀하려 하고 있다. 2차례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으로 조성된 남북한 화해무드로 고려인들의 운신 폭이 더욱 넓어지게 된 셈이다.
실제로 협회측은 지난해 처음으로 대표단을 북한에 보내 관계개선을 꾀했으며 그 결과 북한무용단이 고려인 중앙아시아 정주 70주년인 올해 카자흐를 방문해 기념공연을 펼쳤다. 협회측은 구체적인 협력사안을 준비해 내년에도 북한에 대표단을 보낼 계획이다.
남한측도 올해 국립국악원 등 여러 단체를 카자흐와 우즈벡, 키르기스스탄 등지에 잇따라 보내 정주 70주년을 기념했다.
안타까운 것은 남과 북이 정주 70주년 기념행사들을 따로따로 진행했다는 것.
전문가들은 남한이나 북한이 고려인에게 서로 '자기 편'이 돼 달라는 식의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며 고려인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남북이 머리를 맞대 공동사업 등을 벌일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카자흐에 거주하는 원로 고려인 정상진(鄭尙進.90.문학평론가) 선생은 "정주 70주년 행사를 남과 북이 따로 진행해 못내 안타까웠다"며 "남북한이 공히 건국 6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양측 당국이 고려인 관련 행사를 반드시 공동으로 진행했으면 좋겠고 이를 계기로 향후에는 모든 고려인 행사를 남북한이 함께 개최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강제이주를 몸소 경험한 정 선생은 이어 "무엇보다 남북통일이 빨리 됐으면 좋겠다"면서 "통일되기 이전이라도 남북한이 고려인에 대해 공동행사나 사업을 벌임으로써 한반도 역사나 남북분단 상황, 한국어를 거의 모르는 젊은 고려인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창엽 특파원(연합뉴스)
"남한과 북한은 똑같은 조국일 뿐입니다."
김 로만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장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조상들이 한반도를 떠나 연해주로 이주할 때 한반도는 갈라지지 않았다"며 "남과 북이 빨리 통일돼 통일된 조국이 국제사회에서 당당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조부모가 연해주에서 카자흐로 강제이주 당해 고려인 3세인 김 회장은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에 관한 질문에는 머뭇거렸다.
남과 북이 똑같은 조국이기 때문에 남한의 건국에 대해 특정 의미를 부여하기가 '곤혹스럽다'는 의미로 읽혔다.
그의 이런 머뭇거림은 카자흐를 비롯해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지에 거주하는 고려인 53만여명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고려인들은 이처럼 남과 북 어느 한쪽도 편들 수 없는 어정쩡한 '중간지대'에 놓여 있다.
고려인의 이 같은 상황은 역사적으로 생겨났다.
한반도가 쪼개지지 않은 조선 말기이던 1860년대 기근과 관리들의 학정을 피해 새 삶의 터전을 찾아 연해주로 이주하기 시작한 한인들은, 적어도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기 전까지는 공동체를 이뤄 한글을 배우는 등 조국과 연계된 삶을 살았다. 지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도 조국과 가까웠다.
시베리아와 연해주 개척에 공헌한 이들 한인은 1904년 러일전쟁과 이듬해 을사늑약, 1910년 국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연해주를 조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해외기지로 발전시켜 한국독립운동사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특히 을사늑약 전후부터 3.1운동 때까지 국내외 독립운동자 중 연해주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고 활동한 이는 드물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한인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후에는 상당기간 한글 교육도 일체 금지당하는 등 조국과 점점 멀어져갔다. 러시아어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소련내 여러 소수민족중 하나로 편입됐다.
연해주 한인의 후손인 고려인들은 조국과 유리됐음에도 강인한 정신력과 근면성, 높은 교육열 등 조상에게서 고스란히 물려받은 특질을 십분발휘해 현지에서 성공적인 정착을 했다. 소련시절 수많은 노력영웅을 배출, 소수민족중 우수민족으로 우뚝 서게 됐다.
고려인들의 존재와 삶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한국이 소련과 1990년 수교한데 이어 다음해 소련 붕괴로 산하 공화국들이 독립하면서부터다.
고려인은 카자흐와 우즈벡 등 독립된 옛 소련 공화국의 경제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해오고 있다.
특히 고려인 거주 공화국의 하나인 카자흐는, 독립 이후 개방정책을 펴 외국기업의 자원개발 참여를 허용함으로써 근년 들어 고도의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고려인은 이 과정에서 건설과 유통부문에서 활약, 많은 성공신화를 연출했다.
현재 중앙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앞서 가고 있는 카자흐에는 한국기업들의 진출붐이 일어 한국 및 한국기업인과 고려인간 접촉은 크게 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카자흐 고려인협회는 카자흐에 진출한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동시에 북한과도 관계발전을 꾀하려 하고 있다. 2차례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으로 조성된 남북한 화해무드로 고려인들의 운신 폭이 더욱 넓어지게 된 셈이다.
실제로 협회측은 지난해 처음으로 대표단을 북한에 보내 관계개선을 꾀했으며 그 결과 북한무용단이 고려인 중앙아시아 정주 70주년인 올해 카자흐를 방문해 기념공연을 펼쳤다. 협회측은 구체적인 협력사안을 준비해 내년에도 북한에 대표단을 보낼 계획이다.
남한측도 올해 국립국악원 등 여러 단체를 카자흐와 우즈벡, 키르기스스탄 등지에 잇따라 보내 정주 70주년을 기념했다.
안타까운 것은 남과 북이 정주 70주년 기념행사들을 따로따로 진행했다는 것.
전문가들은 남한이나 북한이 고려인에게 서로 '자기 편'이 돼 달라는 식의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며 고려인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남북이 머리를 맞대 공동사업 등을 벌일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카자흐에 거주하는 원로 고려인 정상진(鄭尙進.90.문학평론가) 선생은 "정주 70주년 행사를 남과 북이 따로 진행해 못내 안타까웠다"며 "남북한이 공히 건국 6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양측 당국이 고려인 관련 행사를 반드시 공동으로 진행했으면 좋겠고 이를 계기로 향후에는 모든 고려인 행사를 남북한이 함께 개최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강제이주를 몸소 경험한 정 선생은 이어 "무엇보다 남북통일이 빨리 됐으면 좋겠다"면서 "통일되기 이전이라도 남북한이 고려인에 대해 공동행사나 사업을 벌임으로써 한반도 역사나 남북분단 상황, 한국어를 거의 모르는 젊은 고려인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창엽 특파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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