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가 左派진보들에게 던진 말 국민 무서운 줄 아는가
통합신당이 바른 야당 되는 길은 ‘자칭 진보’ 탈을 벗고 새로 태어나는 것
진보(進步)라는 가면을 쓴 김일성 주체사상(金日成 主體思想) 파들이 10년 동안 망쳐 놓은 한국 사회를 한나라당 출신들이 뒷수습하는 묘한 정치 판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오는 2월 25일 12시가 되면 한나라당은 집권 여당의 위치로 바뀐다. 10년 만에 본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대한민국을 망쳐 놓은 통합민주신당의 대표에 한나라당 출신 손학규 씨가 지휘봉을 인계받고 새로운 야당으로 탈바꿈 하려 한다.
한편 또 2월이면 이회창 씨가 대표가 되는 또 하나의 보수 야당이 탄생한다. 그래서 집권 여당 한나라당을 견제할 2개의 야당 대표들이 모두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한국 政黨역사상 진귀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한나라당이라는 큰 집에서 2개의 형제 黨이 탄생하는 셈이다. 이를 두고 정치 분석가들은 “左派 10년에 멍이 든 국민들이 左派 빨갱이 세력들을 뿌리채 뽑아 버리라는 명령” 이라고 평가했다.
3개의 정당에 몸담고 있는 구성원들은 다르지만 그 대표들이 모두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점에 국민들은 이제 안도의 숨을 쉬어도(?) 될 것 같다. 손학규 대표나 이회창 씨가 분명하게 빨갱이, 左派, 親北, 김정일 맹종 세력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손학규 씨가 대표가 된 통합민주신당의 경우 그 안에 親盧세력(친 노무현 추종 세력) 親 김정일 추종세력들이 뒤섞여 범벅이 되어 있지만 오는 4월 총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이 정리에 나설 태세다.
손학규 씨가 자신을 키워준 한나라당에 침을 뱉고 허허벌판 시베리아 얼음판으로 나간 지가 벌써 11개월- 곧 1년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그 11개월 동안 손학규는 많은 것들을 느겼을 것이다.
그리고 국민이 무섭다는 사실도 알았을 것이다. 국민이라는 풀뿌리는 권력이 누르면 누르는 힘에 못 견뎌 한동안 움츠려들기도 한다. 그러나 참다 참다 못 참으면 고개들고 일어서는 것이 국민이라는 민초다.
좌파 10년에 짓눌리고 탄압받고 외면당하던 성난 민초들이 지난해 12월 19일 똘똘 뭉쳐 좌파 빨갱이 세력들을 심판하는 역사의 과정을 손학규는 잘 지켜 봤을 것이다.
그래서 통합신당 대표로 취임한 그의 입에서 나온 첫 소리가 “기존 진보세력이 국민들에게 빵을 줘 봤나? 옷을 줘 봤나?” 였다.
손학규 대표는 또 “이 시대의 진정한 진보는 실제로 국민들에게 다가가서 하나라도 이익과 도움을 주는 진보가 되어야 한다”며 “기존 진보세력이 국민에게 버림받은 이유는 말로만 평등, 분배, 평화를 외쳤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정확히 진단한 말이다. 사실 進步라는 말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우리말 사전에는 진보(進步) 라는 뜻을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곳에 머물러 있는 물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 모든 일이 한곳에 하나로 머물러 있으면 부패하고 썩고 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인류 사회와 더불어 지구촌의 문화와 역사는 변하고 발달하고 개혁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미국에 進步黨이라는 정당이 처음 탄생한 것은 1912년 루즈벨트(Roosevelt. T) 가 공화당을 탈당해 새로 만든 정당인 Progressive Party(진보당)였다.
새로운 국민주의에 의한 직접 민주주의 확대, 광범위한 사회개혁을 주장하면서 당선된 그는 1916년 공화당으로 복귀했다. 그가 진보라는 슬로건으로 사회개혁을 단행하려 했으나 국민들은 점진적으로 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공화당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그후 1948년 윌리스(Wallace. H)가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공화-민주 양당제에 반대, 제3의 정당인 진보당을 창당했다. 윌리스는 진보당의 이념으로 국내적으로는 진보적 수정 자본주의, 국외적으로는 대소(對蘇) 화평 정책을 부르짖었으나 참패했다.
미국 국민들은 공산주의에 접근한 진보당을 용납하지 않았다. 윌리스는 탈당 하고 진보당은 소멸되었다. 그 후부터 미국에서는 진보당에 대해 공산주의 동조 세력 쯤으로 보는 견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진보당은 1956년 죽산 조봉암(曺奉岩)선생이 진보당을 창당, 대통령에 출마해 이승만 박사와 싸우다가 실패했다. 조봉암 세력이 커지자 이승만 박사의 추종자들인 헌병사령부 원용덕 중장과, 특무대 김창룡 준장이 공모, 조봉암을 공산당으로 분류하여 1959년 처형함으로써 한국에서의 진보당은 빨갱이 공산당으로 인식되었다.
그런 물결이 오래 지속되면서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유신정권, 전두환의 신군부 독재에 항거하던 학생들을 통해 진보라는 단어가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전두환 군사정권과 노태우 半군사정권을 지나면서 대학교 캠퍼스 한쪽 으슥한 곳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사진을 걸어 놓고 평양에서 파견된 간첩들의 훈령에 따라 소위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강태김장’(강철 같으시고 태양이신 김정일 장군’) 만세를 부르며 충성맹세를 하던 386 학생들이 확산되고 있었다.
그들이 6.10 민주화 항쟁을 거치며 김대중과 접목하여 마침내 자신들의 소망이었던 좌파 김대중 정권을 탄생시키고 뒤이어 노무현 정권을 만들어냈다.
그들을 386 진보세력이라고 불렀으나 실상은 진보라는 가면을 썼을 뿐 사실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받아들이고 충성을 맹세한 좌파 빨갱이들에 불과했다.
김대중 정권 출발과 함께 등장한 진보파에 국민들은 처음 속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칭 진보들의 가면이 하나둘 벗겨지면서 그들이 좌파 빨갱이라는 정체를 알게됐지만 이미 들어선 노무현 정권 아래서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지난 10년, 잃어버린 세월동안 이런 진보들의 정체를 완전히 알게된 국민들이 12월 19 투표로써 쿠테타를 일으켜 좌파 10년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이제 한국의 좌파들은 2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평양의 지령을 받은 親盧 左派 진보파들과, 영국 유학파 손학규가 주창하는 진짜 진보파, 새로운 진보파, 손학규식 진보파로 운명적인 갈라서는 작업을 시작했다.
김일성 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한 親盧 左派 진보파들은 평양으로 가든지- 아니면 민주노동당으로 가든지 그도 아니면 제3 지대에서 親盧 진보당을 만들든지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손학규 스타일의 새로운 진보정책 아래서 그들은 견딜수가 없을 것이다. 또 손학규 대표도 마찬가지다. 영국 노동당 같은 진보당으로 탈바꿈 하기 전에는 손학규의 통합민주신당도 생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 10년, 가면의 탈을 쓴 386 좌파 빨갱이 진보파들의 정체를 너무 깊숙이 알아버렸다. 親盧 그룹 가면 쓴 진보파들은 “돈 한번 벌어보지 못하고 직장 한번 가져보지 못하고 월급봉투 한번 만져 보지 못하던 인물” 들이었다.
그들의 머리 속과 가슴 속에는 1970년대의 박정희 유신정권에 대한 불만, 전두환 신군부 독재세력에 대한 분노, 한국의 탈선한 일부 재벌들에 대한 증오심만 가득할 뿐 국가를 경영하는 방법, 사회를 개혁하는 방법,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은 몰랐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을 잘 들어줄 것으로 판단한 노무현을 道具로 만들어 정권을 잡았다가 국민들의 저항으로 참담한 실패를 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그래도 양식이 있던 진보 패거리들이 손학규를 대표로 추대했다. 사실- 양식 있는 진보파들이 정동영을 뒤로 하고 손학규를 후보로 내 보냈으면 정동영 보다는 표를 더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손학규 대표는 “여당과 야당을 강조하기 보다는 국가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국민 행복 기준을 먼저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정치사에서 가장 협조적이며 단호한 야당으로 태어 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의 말대로 그 길만이 손학규의 新黨이 사는 길일 것이다.
평양 김정일 체제 아래서는 이념이 먼저고 노동당이 우선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손학규 대표의 발언으로 봐서 새로운 진보에 기대를 해 볼만(?) 하다. 사실 손학규는 공산당이 될 수 없는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진실한 카톨릭 신자이기 때문이다.
2008 대한민국 정치판의 지각변동과 변화의 물결을 한번 지켜보자.
손충무 국제저널리스트.www.usinsideworld.com 편집인 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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