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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山의 三棄論과 <李明博 정부>의 組閣 波動

Written by. 이동복   입력 : 2008-03-04 오전 8: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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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29일의 차관급 인사를 끝으로 난산을 거듭하던 <李明博 정부>의 組閣이 일단 마무리된 것 같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본다면 <李明博 정부>의 組閣은 여전히 미완성 교향곡이다.

 <정부조직법> 개정의 난산에 이어 3개 부처 장관 후보자의 낙마로 인하여 <李明博 정부>는 지금도 지난 달 24일로 임기가 종료된 <盧武鉉 정권>으로부터 3명의 각료들을 ‘대여’하여 겨우 국무회의를 구성ㆍ운영하는 세칭 ‘賃貸內閣(임대내각)’의 군색한 살림살이를 면치 못하고 있다.

 千辛萬苦(천신만고) 끝에 ‘좌파 정권’을 퇴출시키는 ‘정권교체’를 이룩하여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았다는 부푼 기대감에 들떠 있었던 대다수 국민의 입장에서는 출범 과정에서 새 정부가 人事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 같은 갈지(之)자 行步는 속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어째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국무위원 후보자 임명 과정에서 들어난 跛行(파행)에 대해서는 李明博 대통령 스스로가 “우리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정도의 自愧(자괴) 발언이 있었다는 언론보도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동안에 일어난 황당한 일들은 “일말의 책임”론으로 호도될 일이 아니다.

 국가를 포함하여 인간이 형성하는 공동체 사회에서 人事의 중요성은 古今과 東西를 통해 이미 하나의 통념이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人事가 곧 萬事”라는 말이 있다. 인류 역사의 興亡盛衰(흥망성쇠)는 무릇 人事에 의하여 좌우되어 왔고 그래서 “人事가 亡事”라는 말도 생겨났다. 아무래도, 이 문제는 溫故知新(온고지신)의 차원에서 생각해 볼 필요를 제기한다.

 人事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이미 경험에 입각한 先賢(선현)들의 많은 가르침이 있다. 李氏王朝(이씨왕조)의 ‘르네쌍스’(?) 시기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正祖(정조) 시절에 仕宦(사환)했던 茶山(다산) 정약용(丁若鏞)의 <牧民心書(목민심서)> 律己編(율기편)에 등장하는 三棄論(삼기론)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三棄論 대목은 시중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대다수의 <牧民心書> 律己篇에서는 어찌된 연고인지 생략되어서 발견되지 않는다. 金剛大學의 총장을 역임한 漢學의 大家 恒山(항산) 金裕赫(김유혁) 선생이 <창작과 비평사>판 <牧民心書>에서 문제의 三棄論을 찾아내 주었다.

 茶山의 三棄論은 “무릇 官職에 오르는 자는 세 가지 버릴 것이 있다”는 주장이다. ‘屋棄(옥기)’ㆍ‘奴棄(노기)’ㆍ‘子棄(자기)’를 말한다. 여기서 ‘屋棄’는 관직에 재직하는 동안 집을 새로이 장만하거나 개축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奴棄’는 관직에 재직하는 동안 出仕(출사) 전에 사사로이 거느리고 있던 자들을 등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 말로는 ‘코드’ 人事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子棄’는 관직에 재직하는 동안 자식들의 出世나 利權을 챙기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三棄論에 입각하여 역대 대통령의 행적을 한 번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가 없지 않을 듯 싶다.

 金泳三은 屋棄ㆍ奴棄ㆍ子棄의 세 禁忌를 모두 범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재임 중에 서울 上道洞의 私邸를 대대적으로 개축했고 야당 시절 그의 측근들을 정부 요직에 대거 기용하는가 하면 아들을 둘러싼 ‘小統領’ 시비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대통령 金大中의 三棄 逆走行 행보는 그 스케일이 金泳三의 그것을 크게 능가하는 것이었다. 그는 재임 기간 중 경기도 일산의 私邸를 호화롭게 증ㆍ개축했을 뿐 아니라 서울 동교동의 더 오래된 私邸를 허물고 그 자리에 金大中圖書館을 건립했다. 그의 奴棄 행각은 좀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朴智元ㆍ林東源 등을 偏愛하면서 權魯甲ㆍ韓和甲 등 股肱(고굉)의 측근들을 사실상 버렸다. 자식에 관하여 그가 보여준 행보는 茶山의 子棄 禁忌와는 담을 쌓는 것이었다. 그는 온갖 무리를 무릅쓰면서 세 아들 가운데 2명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었지만 세 아들 모두가 利權에 연루되어 獄苦를 치러야 했다.

 이번에 李明博 대통령과 악수 교대한 盧武鉉의 경우 子棄에서는 자유스러웠지만 屋棄와 奴棄에 관해서는 “나는 나의 길은 간다”였다. 그는 임기 중에 수백억원, 그 가운데 상당액은 국민들이 국가에 세금으로 낸 돈을 들여서 경남 김해의 私邸를 허물고 그 자리에 옛날 봉건왕조 시대의 지방 豪族을 방불케 하는 호화 邸宅을 신축하여 퇴임과 더불어 靑瓦臺로부터 곧바로 이사한 뒤 바로 그 다음 날부터 이를 일반에게 개방, 주로 ‘노사모’의 ‘노빠’들일 관광객들과 어울려 “어때요, 집이 좋지요” 운운 하면서 기념촬영을 즐기는 등 喜喜樂樂(희희낙락)하는 모습이 TV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人事에 있어서 그가 보여준 奴棄 禁忌 破棄 행각은 다른 사람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盧武鉉의 人事는 ‘코드 人事’라는 언론 용어로 상징되었다. 그 특징은 그의 사상적ㆍ이념적 ‘멘터(스승)’이었던 ‘親北 主思派’ 성향의 386세력으로 이루어진 두터운 ‘人의 장막’이었다. “아직 赤化統一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赤化되었다”는 보수ㆍ우파의 주장을 불러일으킨 <盧武鉉 정권>의 ‘左便向’ 시비는 그 결과물이었다.

 어떻게 보면, 530만표라는 역대 대통령선거 사상 前無했던 엄청난 票差를 업고 출범한 <李明博 정부>에 걸었던 票心의 기대는 李明博 대통령에게 그의 前任者들이 보여주었던 이 같은 비정상적 행보와는 다른 행보를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李 대통령은 후보 시절 그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시키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또 이번에 자녀들은 私家에 남겨 둔 채 영부인과 단 둘이서 靑瓦臺로 移徙해 들어갔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어쩌면, 이번 <李明博 정부>에서는 屋棄와 子棄의 禁忌는 지켜질 것 같다는 희망이 생긴다. 그러나, 출범 벽두에 전개된 人事를 둘러 싼 混線은 李明博 대통령도 奴棄에 관한 한 자유롭지 못 할 것 같다는 危機感이 많은 사람들의 腦裏(뇌리)에 각인되려 하고 있다.

 걱정하는 많은 국민들의 눈에 비치는 李明博 대통령의 人事 행보는 이야 말로 바로 ‘코드 人事’의 답습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에게도 奴棄는 禁忌가 아닌 듯 하다.

 人事에 관하여 恒山이 뽑아 주는 또 다른 故事가 있다. 齊나라 景公 시대 名宰相이며 학자인 晏嬰(안영)의 <晏子春秋(안자춘추)> 內篇 諫言(간언) 제⑩항에 나오는 ‘三不祥(삼불상ㆍ세 가지 불행한 일)’ 대목이다.

 이 대목은 ①‘有賢不知(유현부지: “인재는 있는 데 발견하지 못 한다”)’ㆍ②‘知而不用(지이불용: “알면서도 쓰지 않는다”)’ㆍ③‘用而不任(용이불임: “쓰면서도 맡기지 않는다”)’으로 되어 있다.

 故語에는 ‘立賢無方(입현무방: “인재는 사방에서 구하라”)’도 있다. 가능하다면 李明博 대통령과 그를 측근에서 보필하는 이들이 이 글을 한 번 읽고 참고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失手는 兵家의 常事라고도 하지만 새로 출범한 정부가 이번 人事 波動에서 보여준 황당한 모습을 계속 되풀이하게 된다면 이 정부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바닥으로 내려 안고 “잃어버린 10년”은 되찾을 길이 없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konas)

 이동복(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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