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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철학, 자유시장경제여야

이념 배척하고 실용과 효율만 강조한는 것은 위험 천만

Written by. 이재교   입력 : 2008-03-09 오전 6: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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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의 키워드는 단연 실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처음 가진 기자회견에서“국민은 이념이 아니라 실용을 선택했다”고 선언한 후 실용은 거의 약방의 감초다. 취임사에서“우리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야”하고,“실용정신은 동서양의 역사를 관통하는 합리적 원리이자 세계화의 물결을 헤쳐 나가는 데에 유효한 실천적 지혜”라고 한다. 실용정신으로“계층간 갈등을 녹이고 강경투쟁을 풀겠다”고 한다. 남북관계 역시“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접근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이제 이념의 시대는 갔고, 실용의 시대가 왔다고 단언한다.

 이념논쟁이 필요 없다고 이념도 필요 없을까?

 옳은 얘기다. 이제 이념논쟁은 의미가 없다. 사회주의가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지 못하는 비인간적인 체제라는 사실이 20세기의 역사에서 증명되었고, 이제 지구상에 사회주의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시장경제가 번영과 인간다운 삶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체제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러니 더 이상의 이념논쟁이 불필요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념논쟁이 필요 없다고 이념도 필요 없을까? 실용이면 모든 게 해결될까? 실용이 무엇이기에 국민이 선택한 시대정신이고, 세계화의 시련을 해결할 지혜이자 계층간의 갈등을 녹이고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잣대인지 궁금하다. 이명박 정부의 장관 내정자들의 재산형성과정에 대한‘탈 정치적’인 감각은 너무 실용만 내세운 폐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일 잘하면 됐지 재산이 많든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든 뭐가 그리 큰 문제냐”는‘실용적’인 발상에서 검증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닐까? 실용을 강조하는 것이 옳기는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부족한 것은 바로 체제(이념)에 대한 믿음이다.

 이 대통령은 이념이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지난 정권이 이념에 몰입하여 대한민국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간 데에 대한 반작용이 그 원인일 것이다. 기업현장에서 온 몸으로 체득한 경험이 옳은 것이지 책상물림 냄새가 나는 이념은 실용성이 없는 공리공론이라고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만약 사회 구성원들이 “자본주의가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비인간적이다, 사회주의가 더 인간적이긴 한데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에 실현되기 어려울 뿐이다”고 생각한다면 그 체제가 견고할까?

 실용만을 강조하는 것은 위험한 일

 이명박 정부가 이념을 배척하고 실용이나 효율만 강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위험이 있다. 첫째, 실용만 강조하다가는 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낼 경우에--이명박 정부가 잘 해도 국제적인 환경에 의하여 그럴 수도 있다--언제든 반자본주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수 있다. 우린 이미“잃어버린 10년”을 겪었다. 더 이상 반자본주의 세력에게 정권을 내 줄 여유가 없다. 그랬다가는 중진국의 문턱에서 주저앉을 것이다. 이건 재앙이다. 이러한 재앙을 막는 길은 국민들이 자유시장경제체제가 효율적일 뿐만 도덕적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야 한다. 그러할 경우 하나의 정권이 실패하더라도 국민은 다른 정권을 선택하게 된다. 반자본주의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재앙이 초래되지는 않는 것이다.

 둘째, 강경노조와의 싸움에서 체제에 대한 확신 없이는 이기기 어렵다. 이제 총선이 끝나고 이명박 정부가 자리를 잡을 때쯤이면 반자본주의 세력의 반격이 시작될 것이다. 특히 민노총을 중심으로 반자본주의 세력은 정권을 잃은 상실감에 대한 반발로 한층 기세를 떨칠 것이다.

 이미 민노총은 이명박 정부에 대하여 지상과 하늘의 모든 것을 세우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대처가 정권을 손쉽게 갈아치우던 노조와 363일간의 싸움에서 이겼던 것은 강철같은 신념과 영국국민의 신념에 찬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처리즘에 대한 지지였고, 대처리즘의 승리였다. 세계에서도 강경하기로 소문난 한국의 노조와 싸워 이기려면 이러한 신념과 지지가 필요하다. 기차와 항공기가 움직이지 않고, 자동차조립라인이 수출이 급감할 때 이명박 정부의 양보를 요구하는 압력이 거세질 것이다. 실용주의에 의하면 양보하는 게 실용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 노조의 횡포에 양보하는 것은 기본원칙에 반하는 일이다. 패배일 뿐이다. 그렇기에 실용주의로는 부족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정의롭고 시장은 가장 공평하다는 믿음이 이명박 정부와 국민들의 가슴 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을 때 정부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국민의 지지 속에 반자본주의 세력과 총력투쟁을 끝까지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념을 배척하고 실용이나 효율만 강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우리 사회가 다시 반자본주의로 향할 우려가 높다.

 셋째, 우리 사회가 다시 반자본주의로 향할 우려가 높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을 때 자본주의 인사들조차도 반자본주의 정권이 20년간 계속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한국인의 성향이나 당시 반자본주의 정권의 기세로 볼 때 그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우리 사회에는 자본주의나 자유주의가 모든 사회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회주의가 비현실적이라고 인식하면서도 자본주의는 약육강식이고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하는 체제, 소수의 가진 자에게만 유리한 체제라고 여기는 사람도 많다. 지난 10년간의 반자본주의 정권 이전에 우리의 이념교육은 부정적(anti) 즉, 반공교육만 있었던 부작용이다. 공산주의자는 머리에 뿔난 사람인 듯이 가리켰다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젊은이들은 사회주의에 쉽게 기울었다.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그런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그렇기에 이명박 정부를 선택한 것은 반자본주의 정권의 무능에 대한 실망에서 자본주의 세력에 대한 기대를 실은 것이지 적극적으로 자본주의 이념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 선택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념을 백안시하는 것이 아직은 위험한 이유다.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우리 체제를 공고히 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포함하여 정부 구성원들이 자유시장경제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이 공산주의는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범죄라고 여기는 철저한 자유시장경제 신봉자였음은 유명하다. 그렇기에 당시로서는 대세였던 데탕트를 버리고‘악의 제국(Evil Empire)’소련을 군비경쟁에 끌어들여 붕괴시키는 전략을 채택하여 성공시켰다. 그 결과 냉전을 종식시킨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General Secretary Gorbachev, if you seek peace, if you seek prosperity for the Soviet Union and Eastern Europe, if you seek liberalization: Come here to this gate! Mr. Gorbachev, open this gate! Mr. Gorbachev, tear down this wall!”(1987년 6월 12일 베를린 장벽에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연설 중에서)

 영국 대처는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는 평등과 자유를 다 잃지만 자유를 추구하는 사회는 더 놓은 수준의 자유와 평등을 이룰 수 있다는 프리드먼의 자유주의 이념을 신봉했다. 나아가 자유가 도덕의 본질이라고 확신했다. 자유주의가 훨씬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이라는 확신을 가졌던 것이다.

 대처는 이러한 확신을 바탕으로 영국병을 고쳤을 뿐만 아니라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복지에서 자유시장경제로. 그래서 사람들은 대처의 사상과 정책을 대처리즘이라고 부르면서 경의를 표했다. 의회민주주의의 발생국으로, 산업혁명으로 해가지지 않는 제국을 이뤘던 영국의 역사에서 55명의 수상이 있었지만 그 이름에 주의(ism)가 붙은 수상은 대처가 유일하다고 한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자본주의는 정의로운 체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범국민적인 인식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체제가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정당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래서 사회구성원이 자본주의 또는 자유시장경제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이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항하여 싸울 태세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념논쟁의 시대는 가버렸지만 이념의 시대가 간 것은 결코 아니다. 실용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대처는 1992년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우리가 우리의 주장을 믿고 우리의 주장을 다른 사람에게 불어넣으며 우리의 주장이 도전받을 때 방어한다면 우리는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아갈 것입니다. 사상전쟁은 날마다 치러야 합니다. 한국의 여러분들은 이 점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 말은 16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아니 지금 가장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대처가 그랬던 것처럼 이명박 정부가 자본주의 정당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이념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면 역시 이명박이즘이라는 찬사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임명도 되기 전에 3명이 낙마한 장관 내정자 명단, 정보화시대에 4시간 자면서 일하겠다는 개발시대의 자세, 그리고 요즘 진행되고 있는 한나라당의 공천을 보면, 기대를 접어야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실망하기에는 이른 듯하다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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