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병과 위문편지 그리고 e메일
군대를 갔다온 사람이면 편지가 얼마나 반가운 것인지를 잘 안다. 특히 훈련소에서 받는 편지는 나날이 계속되는 고된 훈련으로 쌓인 피로를 확 풀어주는 특효약이라고 할 수 있다.
군에 입대하기 전에 좀 놀다가(?) 온 친구들은 편지가 많이 오는 반면에 그저 그렇게 지낸 친구들은 편지수가 적다. 나에게 배달되는 편지가 많고 적음은 "왕년에 얼마나 놀았는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위문편지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당연히 여자한테서 온 것이다. 여자친구의 편지가 많이 오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여동생이 보낸 편지라면 전우들이 보고 "소개시켜달라"며 조르기도 한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편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입대하기 전에 대화도 잘 하지 않던 아버지가 정성 들여 쓴 편지는 감동 그 자체이다. 문구 하나 하나에 전에는 몰랐던 아버지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2년 6개월전 필자의 아들이 군에 입대했을 때의 일이다. 입소부대는 훈련 많이 하기로 유명한 강원도 홍천의 11사단이었다. 입대한지 1주일쯤 지나자 녀석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몸 건강히 훈련을 잘 받고 있으며, 대한민국을 지키는 씩씩한 국군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었다. 아내는 아들의 편지를 보고 훌쩍거렸지만 필자는 그런 아들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지를 받자마자 녀석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물론이다. 필자는 30여년전의 군대생활 경험을 회상하며 나름대로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적어 답장을 했다. "군에서의 경험은 정말로 값진 것이다. 군은 협동심을 배우고 인내심을 기르는 가장 좋은 곳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이 2년여 동안의 군 생활을 보람있게 지내는 방법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이었다.
아버지로서는 처음으로 아들에게 쓰는 편지였다. 필자는 문득 이 편지내용을 e메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은 읽을 수 없겠지만 외출을 나가 PC방 같은 곳에 들르면 읽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졌던 것이다.
아들의 e메일주소는 이미 알고 있는 터라 우편으로 보내기 전에 그 내용을 그대로 인터넷으로 전송했다. 수신확인란을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후로 컴퓨터 앞에 앉을 때마다 이놈이 메일을 받았는지 궁금해서 꼭 「수신확인」을 했다. 그러나 기대는 번번이 빗나갔다.
만일 병영 안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다면 즉각 메일을 받았겠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휴대폰도 못쓰게 하는 판에 인터넷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 아닌가. 그 메일은 아들녀석이 제대를 한 뒤에야 읽혀졌다. 그때까지 필자가 보낸 메일은 수신확인란에 계속 X표인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보낸 날짜가 2001년 6월26일이었으니 입대한지 꼭 2주일이 되는 날이었다.
아들이 군에 있는 동안 편지를 보낸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내와 딸은 몇 번 보냈지만 왠지 써지질 않았다. 아버지가 돼서 편지를 자주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아무래도 게을러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만약 군에서도 인터넷을 쓸 수 있도록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렇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루에 2∼3시간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필자로서는 군에 있는 아들에게 적어도 10번 이상 메일을 보냈을 것이다.
2001년 10월 말 국방부는 이르면 2002년부터 군대 내무반에서 개인용 컴퓨터(PC)를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일이 있다. 필자는 이 소식을 듣고 "우리나라 군도 이제 선진화돼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 같은 국방부의 방침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게 일었다.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군대에서 국방기밀이 누설될 위험이 있는 데다, 컴퓨터를 갖고 있는 사병과 그렇지 못한 사병들간에 위화감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필자는 「군대생활로 빚어지는 디지털격차」라는 제목의 칼럼을 인터넷사이트에 올렸다.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표준화되면서 급변하는 마당에 군인이라고 해서 2년이 넘도록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 보라. 제대를 한 뒤에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경쟁력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기회균등의 차원에서 PC의 병영 내 반입은 허용돼야 마땅하다고 본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에게 컴퓨터 사용의 기회를 빼앗아 버린다는 것은 개인은 물론 국가경쟁력의 차원에서도 손해이다."
그 이후 본격적인 시행을 하지는 못하고 시범적으로 실시를 했던 모양이다. 며칠전의 국방부 발표를 보면 지난 6월부터 10월까지 육군 3개 중대에 PC방을 시범 설치 해 장병들의 인터넷 활용도를 조사한 결과, 전체 사용시간 가운데 게임이 38.7%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외국어 학습(23.7%), 각종 자격증 공부(19.4%), 정보검색(8.9%), e메일(5.7%) 순으로 집계됐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시범운영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보완해 현재 일부 대대급 부대 에 설치된 PC방을 오는 2006년 말까지 전국 중대급 부대로 확대해 모든 장병들이 하 루 1시간 이상 인터넷을 활용토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참으로 잘하는 일이다.
한편 공군이 군에서 처음으로 교육사령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훈련병과 가족·친지를 이어주는 「인터넷 편지」항목을 추가해 네티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 4월 개발한 이 인터넷 편지는 지금까지 2천여 통을 배달할 정도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네티즌들의 입소문을 통해 급속히 인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메일(2000자 이내)은 각 교육대별 담당 소대장들이 기본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사관후보생과 부사관후보생, 훈련병들에게 직접 인쇄해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 전달가능한 편지는 군대라는 특성 때문에 가족·친지의 경조사, 시험 합격여부 등 긴급히 알려야 할 사항과 훈련요원의 용기를 북돋워 주는 위로성 편지에 국한하고 있다.
군대라고 해서 모든 것을 바꾸어 가고 있는 인터넷의 엄청난 위력을 외면하거나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조직이든 거센 힘으로 몰려오는 인터넷에 대항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궁리하는 게 더 현명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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