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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를 바로 인식하자

Written by. 류기남   입력 : 2008-04-13 오전 8: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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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승 만 박사는 반만년 한민족의 역사에서 최초로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나라 대한민국(大韓民國)을 건국하는 성스러운 과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우리의 선조들이 건국하여 1000년 혹은 500년 이상, 200년 이상을 유지하면서 훌륭한 문화를 창조했던 고조선, 신라, 고구려, 백제, 발해, 고려, 조선, 그리고 수명은 길지 않았던 대한제국은 주권이 군주(君主)에게 있다는 주권재군(主權在君)의 나라들이었다.
 
1948년 5월 10일 제헌의회 의원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제헌의회 의원들(대한민국의 초대 국회의원들)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제정하였는데, 헌법 제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 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로 시작되는 대한민국 헌법 즉 건국헌법을 제정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은 1948년 7월 17일 공포되었고, 7월 20일에는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 박사를 제헌의회에서 선출했으며, 7월 24일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수립을 선포하였다.

대한민국 헌법은 아홉 차례의 개정이 있었으나 제헌헌법의 제 1조와 제 2조는 제1조로 통합되었을 뿐 내용은 그대로 있다.
(현행 헌법 제1조 [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보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민족이 대한민국을 수립하면서 비로써 백성(民)이 나라의 주인(主人)이 된다는  주의(主義)인 민주주의(民主主義 )를 하게 되었다.

 교육인적자원부(지금은 교육과학기술부) 검정 교과서의 하나인 금성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 근ㆍ현대사>에서는 광복과 대한민국의 수립의 주제 3 "대한민국의 수립과 분단 "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남한 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대해 정치세력들은 서로 다른 견해를 보였다.  이승만과 한국 민주당은 이에 찬성한 반면, 좌익 세력은 남한 정부의 수립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곳곳에서 벌였다.  김구, 김규식 등 민족주의자들과 좌우익의 사이에서 중도적 입장을 취하던 정치세력들은 단독선거가 민족을 분열시킨다며 반대했고 북한과 협상을 통해 남북 분단을 막으려고 하였다. 』

이와 같이 기술하면서 과제로 [과제 1] 당시 단독 정부의 구성에 찬성한 세력과 반대한 세력을 조사해 보자.  [과제 2] 자료 1과 2를 일고, 이승만과 김구의 입장 중 하나를 택하여 당시 단독 정부 구성이 필요했는지, 또는 통일정부 구성이 가능했는지를 토론해 보자고 기술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수립에 반대한 것을 단독정부수립에 반대하였다고 하고 있다. 김구, 김규식 등은 대한민국의 수립을 반대 했던 것을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수립을 단독정부의 수립이라고 하면서 북한이 단독으로 "조선민족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해가고 있었던 것에 대하여는 단독정부의 수립이라고 기술하지 않고 있다.
통일부의 북한 자료실에서 북한의 사회과학원 력(역)사연구소가 작성한 북한의 역사『 조선전사 』를 볼 수 있다.

조선전사 24권 제 1장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혁명단계에로의 이행 -- 북조선인민위원회수립의 제 3절 첫 프로레타리아 독재 정권인 북조선인민위원회의수립에서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를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 1947년 2월  21  일) 이는 김 일 성은 북한 단독으로 정권을 수립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을 창설하고 최용건이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조선전사 24권 제 1장 제 4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 164 쪽에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초안을 전체 조선인민의 일치한 지지를 받았다. 1948년 4월 29일 북조선인민위원회의 특별회의는 전 인민적 토의를 거친 공화국 헌법초안을 만장일치로 찬동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 초안은 1948년 5월 10일 제헌의회 의원들이 선출된 후에 제헌의회에서 유진오 선생에게 초안을 만들도록 위촉했는데 북한은 1948년 4월 29일에 헌법초안을 확정했으니 남한보다 북한이 헌법초안도 먼저 만들었다. 이것은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활동도 북한이 먼저 한 것이 분명한데 왜 이 부분을  교과서는 모른 채하고 아무런 기술도 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대한민국의 건국을 단독정부라고 비난했던 좌익세력과 김구, 김규식 등은 북한이 단독정부를 남한보다 먼저 수립해가는 것을 왜 비판하지 못했는가?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해서 제주도에서 4·3사건이 일어났다고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기술하고 있다.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한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수립을 반대하기 위해서 남로당 제주도위원회는 제주인민해방군을 조직하여 대한민국의 헌법을 만들 제헌의회 의원선거 관리 위원들을 죽이고, 1948년 5월 10일 제주도의 선거를 파탄시켰다.  북한에서 수립해가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지지하였고, 제주인민해방군 초대 사령관인 김달삼 등을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에 대의원으로 파견하여 김일성을 조선민주의 인민 공화국의 수상으로, 남한에서 조선공산당의 총비서였으며,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의 실력자 박헌영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부수상 겸 외상으로 선출하는데 가담했다는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을 왜 역사 교과서는 기술하지 않고 있는가?

제주 4 · 3사건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에 반대하지도 않았고 남로당의 제주인민해방군으로 가담하여 선거관리위원들과 군인들과 경찰관들을 살해하는데 가담하지도 않았는데 과잉 진압으로 희생된 선량한 제주도민들이 있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고 애도의 뜻을 표한다.

교과서를 좌익세력이 집필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좌익 정권하에서 이렇게 왜곡된 교과서를 쓰도록 유도한 정권 담당자들과 이 정권담당자들의 비위를 맞추는 역사교과서 검정을 담당한 교육인적자원부에게 책임이 있는 것인가? 

역사 교과서에 대한 동아일보 2008년 4월 4일의 사설의 제목이 다음과 같다.
“[사설] 전교조가 미국을 주적(主敵)이라 가르쳤다”이 사설은 조선일보 2008년 4월 4일 “육사 교장이 기획한 ‘군(軍)대안교과서’라는 기사”와 관련이 있다. 

이 기사에서 현 한국국방연구원원장이며 전(前)육사교장인 김충배 장군(예비역)인터뷰기사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2004년 1월, 김충배(金忠培·사진) 육군사관학교 교장은 숨이 턱 막혔다. 육사에 들어올 가(假)입교생 250여 명에게 무기명 설문조사를 했는데 '우리의 주적(主敵)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무려 34%가 '미국'이라고 대답했고, '북한'이란 대답은 33%에 그쳤다. "장교가 되겠다고 사관학교를 지원한 학생들이 이 정도라니…." 같은 해 국방부 정훈기획실의 '입대장병 의식 성향 조사'는 더 기가 막혔다. 75%가 반미(反美)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장병은 단 36%였다. 』

『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가? 그는 생도들과 면담하고 이유를 분석했다. "전교조 교사들에게 그렇게 배웠다"는 대답들이 많았다. 김 교장이 서독 광부, 베트남전 장병, 중동의 산업역군들에 대해서 얘기하자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기 일쑤였다. 그런 것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학교가 선택하고 있다는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구해 보고 그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북한은 슬쩍 비판하는 척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매우 부정적인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전교조에만 책임이 있는 것인가?  전교조를 지원세력으로 만든 좌파 정권들이 전교조를 후원 격려해 왔다.  교과서 검정에 교육인적자원부에 압력을 행사한 것은 좌파 정권들이었다는 것은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서울대 이영훈 교수, 박효종 교수 등이 중심이 된 교과서 포럼이 좌익사상에 치우친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교과서들에 대한 대안교과서로 “한국 근·현대사”(출판사 기파랑)를 만들어 출판이 되었다. 이 교과서가 고등학교에서 채택되려면 교육과학기술부의 검정을 받아야 하고, 검정을 받아도 고등학교에서 채택되려면, 전교조 교사들이 방해를 막아야하는데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의 중견시민을 양성하는 고등학교에서 북한의 공작원들이 만든 것 같은 교과서를 좌익사상에 치우친 전교조 교사들이 교육을 담당하게 되어있으니, 이를 개선하는 일도  시급하다.

대한민국의 중견시민을 양성하는 고등학교에서  대한민국의 주적은 미국이라고 가르치고, 이승만 대통령을 중상 모략하는 교육을 하고 있으니,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주도적 역할을 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토대를 둔 혼합경제를 근본이념으로 하여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후 북한의 공산주의자인 김일성의 불법 남침(6·25한국전쟁)으로 경상남북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김일성 공산집단이 점령한 때가 있었다.

이때에 북한의 인민군은 남한의 지하공산당원들인 남로당 세력의 극악한 자들과 합세하여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들과  건실한 민족주의자들을  인민재판으로 수십만 명을 살해하였다.
 참전 16개국의 젊은 병사들과 한국군 병사들로 구성된 유엔(UN)군이 김일성의 괴뢰군을 남한에서 격퇴했을 때에 김일성의 북한의 인민군은 수십만 명의 한국인들을 북한으로 납치해 갔다.

6· 25 한국전쟁에서 한국군 병사들도 15만 명 전사했으며, 유엔군 병사도 5만 명 이상 전사했다. 

한국인 70여 만 명의 희생과 미국의 병사 5만 명을 비롯한 UN군 병사 수만 명의 희생 그리고 UN군을 구성한 미국을 비롯한 참전 16개국의  지도자들의 지도력  그리고 이 승 만 대통령의 지도력이 6·25전쟁에서 북한의 김일성 공산집단의 불법 남침을 격퇴시켰다.

중국대륙에서 장개석 (蔣介石) 총통이 지도했던 중화민국은 모택동(毛澤東) 주석이 이끌었던 중국 공산당 정권인 중화인민공화국에게 패배하여 대만으로 피난했다.

UN군 측에서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에게 6·25전쟁 때에 제주도에 피난해 있다가,  UN군이 북한군을 물리친 후에 되돌아오시도록 권유했으나, 이 승 만 대통령은 거절했다.

월남(베트남)의 고딘디엠(Ngo Dinh Diem) 대통령은 수십만 명의 미국 병사들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호지명(후치민 -胡 志明 )이 이끄는 월맹 공산군에게 패배하여 베트남공화국은 멸망했으며, 대만 같은 곳에 피난도 못 갔고, 15만 정도의 월남 국민들이 미국으로 갔다.  이들이 미국으로 갈 때에 일부는 대형선박에 탈 수 없어서 자그마한 보트(boat)를 타고 망망한  대해로  피난가면서 여러 나라의 항구에 갔을 때에 거절당하는 비참한 운명에 직면했던 보트 피풀(boat people)의 처참한 운명을 우리는 보았다. 
이 승만 대통령은 대만에 피난 가듯이 제주도에 피난가지도 않았고, 월남(베트남)처럼 국가를 소멸시키지 않았다.

경제발전을 이루지 못한 점이 있으나, 이 승 만 대통령이 건국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토대 둔 혼합경제의 이념을 토대로,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  박정희 대통령이 1962년 1인당 GNP 87달러(경상가격 - 1962년의 달러 = 2007년 가격의 달러로는  약 597 달러이다.)인 나라 대한민국이 2006년 1인당 GNI 18,372 달러(경상가격 -2006년의 가격)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탄생하는 기초를 만들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2006년 1인당 GNI는  1,250 달러이고, 한국의 1인당 GNI 18,372 달러는 북한의 16.6배이고, 북한의 GNI는 250억 달러로 한국의 GNI 8,873 억 달러가 북한의 GN 250억 달러의 34.4배이다. 

만일에 1945년 8월15일 대일본제국이 연합국에 항복하여 한반도에서 물러날 때에 미군이 38도 선 북한에 가서 미군정을 하고, 이승만 박사가 1948년에 북한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토대 둔 혼합경제를 기본이념으로 나라를 세우고 대통령이 되고, 소련군이 남한에 오고, 소련군 장교였던 김일성이 남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고 수상(후에 국가주석)이 되어 모든 사유재산을 강탈하고,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했다면, 남한에서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고, 정치범 수용소에 수십만 명이 고통과 신음 속에서 지내고, 탈남(脫南)하여 북으로 갈려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고, 북한에 세워진 대한민국은 GNI가 세계의 13위가 되었을  것이다.

세계은행 자료에 의하면 2006년 대한민국은 GNI(국민총소득)에서  세계에서 13위의 국가가 된 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박정희 대통령의 근면, 검소, 절약, 증산, 수출 건설을 강조하고, 할 수 있다는 정신(can-do-sprit)을 국민의 마음에 심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토대 둔 혼합경제의 이념을 국가의 기본으로 하였기 까닭에 대한민국의 발전은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이념과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이라는 정신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한민족이 우수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발전하였다는 주장이 있으나, 그렇다면 북한 사람들도 한민족인데 왜 수백만 명이 굶어죽으며, 1 인당 GNI가 세계에서도 아주 낮고 한국의 16분의 1 밖에 안 되는가?

언론, 출판, 집회, 종교, 거주이전의 자유 등 기본인권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를 하지 않기 때문이고, 모든 주민들의 토지며, 주택, 공장, 건물, 기업 등 사유재산을 김일성의 공산 정권이 강탈하여 공산주의 독재를 하였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하는 세계의 후진국들 가운데 과거에 한국보다 앞섰던 나라들이 한국에 비해 뒤떨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국가지도자의 지도력(leadership)이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서울대학교 이영훈 교수는“이승만 대통령 바로 알기”라는 글에서『그는 확실히 권위주의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권위주의 정치가 그의 개인적 치부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끝내 금욕적이었으며 청렴하게 살았습니다. 그의 정부에서 관료로 재직한 경력의 사람들은 그가 부족한 달러를 아끼기 위해 단돈 1달러의 지출도 직접 결재하였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신생 후진국의 정치지도자로서 그런 미덕을 보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채 빈털터리로 죽었습니다』라고 기술했다.

박정희 대통령도 청렴결백한 분이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수천억 원을 숨겼던 분들도 있고, 본인은 결백했으나, 그 아들이 돈을 지나치게 좋아한 전직 대통령도 있고, 루머일 수도 있는 이야기로 미국에 빌딩들이 있고, 3,000만 달러 씩 수차례 미국으로 그분의 돈을 운반했다고 증언한 전직 경찰관도 이었는데 이와 관련된 전직대통령도 있다.

교과서 포럼의“한국 근·현대사”(기파랑출판사)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을『그의 집권기에는 한국경제는 고도성장의 이륙(take off)을 달성했으며, 사회는 혁명에 가까운 변화를 껵었다.  그는 측근의 부정부패에 대해 엄격했으며, 스스로 근면 검소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4·19 학생 의거로 200여명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희생은 아프고 쓰라린 일이었다. 3·15 부정선거에 대한 학생들과 시민의 분노는 정의롭고, 민주주의의 정신을 발휘한 것이었다. 4·19는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84세에 4선(選) 대통령에 출마하기보다는 후계자를 양성하여 출마시켰으면  좋은 일이 되었을 터인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북경의 텬안먼(天安門) 광장에서 탱크로 수천 명의 학생들과 북경 시민들이 희생되었을 때에 중국의 최고 권력자가 하야(下野)하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200여명의 희생과 학생들이 부정선거 때문에 시위를 했다는 말을 듣고 그렇다면 학생들의 시위는 정당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하야했다. 

우리민족 5,000년 역사에서 정권을 교체하거나 새로운 국가를 세울 때에 백성들이 들고 일어섰던 예는 없다. 고려의 태조대왕 왕건이나, 발해의 태조대왕 대조영이나, 조선의 태조대왕 이성계는 장군이었고, 군의 힘으로 개국했다.  연산군을 폐위시키는데도 조선국의 백성들이 한 것이 아니고 박원종 등 조정의 중신들이 혁명적 거사를 통하여 연산군을 폐위시켰다.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 국가의 최고 지도자를 백성들이 즉 국민이 선거로 선출했으며,    4 · 19도 학생들과 시민들이 최고지도자를 혁명적으로 교체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80 평생을 헌신했던 분이  대통령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나치의 히틀러나 소련의 스탈린 같은 자가 혹은 김일성 같은 자가 대통령으로 있었으면 4·19에서 대통령은 하야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성들이 시위하는 정치적 의사표현도 이승만 대통령이 교육시킨 면이 있는데 휴전을 반대하는 시위를 전국에 걸쳐서 어린 학생들까지 동원해서  하게 한 것이 이승만 대통령이었고, 그렇게 훈련된 학생들과 시민들이 불의에 항거하는 시위를 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정신을 배웠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반대 시위로 미국에게 대한민국의 국민의 강력한 의사를 전달하여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외교력을 발휘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기가 가르쳐 준 시위(데모)로 하야 했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불의한 권력자는 정의로운 시민들의 힘으로 교체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겨주었다.
북한 주민들을 수백만 굶어 죽게 하면서도 핵 개발을 하고 남쪽의 대한민국으로부터 거액의 원조를 받아 쓴 김정일 정권은 조직 폭력배처럼, 대한민국에 대하여 공갈협박을 하여도 한미방위조약으로 주한 미군이 있고, 대한민국의 국군이 있으니 국민이 무엇 좀 더 달라고 구걸하기 위하여 소리 지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가 된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한미방위 조약을 체결해 두었기 때문이다.

10만원권과 5만원권의 초상

한국은행은 새로 만들 10만원권과 5만원권의 초상으로 김구선생과 신사임당으로 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김구 선생은 상해임시정부의 주석으로  훌륭한 업적이 있는 분이지만, 대한민국의 건국을 반대했던 분인데 대한민국의 화폐의 초상이 된다는 것은 옳지 못한 결정이다.
그리고 신사임당은 우리민족의 훌륭한 어머니로 이율곡 선생님 같은 위대한 학자를 길러낸 분으로 화폐의 초상으로 손색이 없는 분이지만, 5,000원권의 초상이 이율곡 선생님인데, 이율곡 선생님이 초상에 있는 것만으로도 신사임당 같은 훌륭한 어머니를 연상할 수 있는데 어머니와 아들이 초상으로 선정되는 것이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균형감각이 없는 처사이다.
 
1,000원 권의 초상은 퇴계 이황 선생, 5,000원 권의 초상은 율곡 이이선생, 10,000원 권의 초상은 세종대왕으로 조선왕국의 인물들이 3명인데, 신사임당까지 화폐의 초상이 되면 조선왕국의 인물들이  4명이 되고,  고조선, 신라, 고구려, 백제, 발해, 고려의 인물들은 한사람도 없고, 백성이 주인이란 5,000년 민족사에 가장 훌륭한 나라 대한민국의 인물도  한사람도 없으니 매우 잘못된 것이다.

5,000년 역사에서 오늘 대한민국의 국민 수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생활을 해본 나라들이 없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시키는데 앞장서 온 좌익정권들과 이에 동조한 세력들의 영향력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으니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역사를 정직하게 보려는 기운이 일어나고 있고 또한 바르고 옳은 일이기 때문에 10만원권과 5만원권의 초상은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으로 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동아일보의 “선진국 진입위해 할 일, 경제발전 28.9% 정치개혁 22.2% ”이라는 2008년 4월 1일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는 5명 중 3명(59.0%)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장 긍정적으로 봤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호평은 ‘박정희 시대’를 경험한 40대(65.4%)와 50대 이상(73.8%) 대전 충청 (69.6%) 대구 경북(79.6%)에서 많았다. 』

중앙대학교 김영봉 교수가 조선일보의 [아침논단] 10만원권의‘얼굴’과 자학사관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 이 고액권은 회색 바탕에 백범 김구의 초상을 얹을 예정이다. 김구 선생은 어떻게 이 10만원권의 얼굴이 되었는가. 한국은행이 위촉한 10명의 화폐도안 자문위원이 작년 5월, 20명의 예비후보를 선정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는 박정희 이승만 두 전 대통령이 압도적 1·2위를 차지했지만 예비후보에도 끼지 못했다. 두 분이 "초상인물로는 가치가 있지만 찬반 양론이 거세질 것 같아" 임의로 후보 군에서 탈락시켰다고 한은측은 설명한다.

이번 초상 문제의 본질은 노무현 정권의 비뚤어진 과거사 인식을 유지시키는 점에 있다. 향후 10만원권은 우리의 대표적 화폐가 될 것이므로 그 초상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386 실세 집단이 화폐인물을 김구로 대체하려 한다"는 소문이 있었으며, 노 대통령의 극진한 김구 존경도 널리 알려진 바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원천 배제시킨 한은의 처사는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는 노 대통령의 역사관과 기 막히게 들어맞는다. 』

『 이번 초상 문제의 본질은 노무현 정권의 비뚤어진 과거사 인식을 유지시키는 점에 있다. 향후 10만원권은 우리의 대표적 화폐가 될 것이므로 그 초상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386 실세 집단이 화폐인물을 김구로 대체하려 한다"는 소문이 있었으며, 노 대통령의 극진한 김구 존경도 널리 알려진 바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원천 배제시킨 한은의 처사는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는 노 대통령의 역사관과 기막히게 들어맞는다. 』

 류기남 (대한참전단체 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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