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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

Written by. 독립신문   입력 : 2003-12-25 오전 10:2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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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혐오하는 마음만으로는 평화가 지켜지지는 않는다"  


전쟁이 나쁘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뭐 그리 대단한 지성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반전 시위한다는 사람들도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으니까 이 추운 날씨에 길거리에 나와 떨고들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모든 평화가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모양이다.



역사상 전전(戰前)기간으로 불리는 시대를 가만히 살펴보면 전쟁은 특정한 개인들의 탓으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분위기 전체가 전쟁의 발발을 도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들이 대부분 춘추전국시대의 인물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란의 시대가 되면 사람들은 역사에 대한 비극적 감각과, 그런 역사를 이끌어 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진지하고 현실적인 성찰과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런 성찰과 고민은 사상가를 낳고, 전략가를 키우며, 지도자를 세운다. 이러한 영웅들이 인간사회가 지닐 수밖에 없는 약점들을 치유하고, 계도하며, 인간의 숨은 능력과 가능성을 이끌어낸다.



그리하여 인류는 전쟁을 극복하고 평화의 시절을 맞는다. 반성하고, 치유하며, 건설하고, 번영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평화의 시절이 길어지면 사람들은 다시 전쟁을 잊는다. 현재의 평화와 번영이 딛고 서있는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한사코 잊으려고 애쓴다.



그저 모르는 체 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선의만 있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자기 최면을 건다. 단지 평화를 바라는 마음만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기만하고, ´좋은 전쟁보다 나쁜 평화가 좋다´고 공공연히 말하게 된다.



뮌헨에서 히틀러와 ´담판´을 짓고 돌아온 총리 네빌 체임벌런을 열광적으로 환영하면서 그것으로 전쟁은 모면했다고 환호하던 영국 국민들이 바로 그런 심리상태에 있었다.



6.15. 남북 정상회담에 환호하면서 남북간의 군사적 대치는 이제 과거의 것이 된 것처럼 생각하는 남한 국민들의 심리상태 또한 그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예수의 제자 도마는 스승에게 못 자국을 보여달라고 했지만, 우리는 비참한 모습으로 인양된 참수리호 선체의 탄흔에서, 울부짖는 유가족들의 가슴에 박힌 못 자국에서, 한사코 고개를 돌리려 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라도 한다는 듯이.



오래 지속되는 평화는 역설적으로 이처럼 위험한 안보상황을 자초하고 만다. "비극을 피하려면 비극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장기간의 평화는 비극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의 풍자시인 유베날리스는 이를 "긴 평화의 해악들(longae pacis mala)"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애써 이룬 평화를 피 흘려가며 지키기를 두려워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평화는 어린 아이의 손에 쥐어진 유리구슬처럼 깨지기 쉬운 물건이 되어버리고 만다. 전쟁이라는 파괴의 비인격적 과정만이 이런 과오를 교정하고 또 다른 평화를 가능케 한다면 그것은 너무 비극적이지 않은가.



평화란 전쟁을 혐오하는 마음으로써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굳은 각오와 용기로써만 평화는 지켜진다. 좋은 전쟁보다 나쁜 평화가 좋다는 언명이 사실이기 위해서는 히틀러, 무쏠리니, 스탈린, 김일성, 사담 후세인의 침략을 받은 국민들은 모두 저항 없이 항복하고, 그들의 폭정을 주어진 운명으로 받아들였어야 옳다.



실제로 어떤 국민들은 그렇게 했다. 조지 오웰이 말했듯이 전쟁을 가장 빨리 끝내는 길은 져버리는 것이다(The quickest way of ending a war is to lose it). 임진왜란을 맞아 우리 조상들이 무엇 하러 수년간 저항하며 그 나쁜 전쟁을 치렀을까를 생각해보면 ´나쁜 평화´에 숨은 ´나쁜 의미´를 금방 헤아릴 수 있다.



좋은 전쟁은 없다. 그러나 나쁜 평화는 있다. 나쁜 평화는 그 어떤 전쟁보다도 더 나쁘다. 나쁜 평화는, 예속과 굴종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지속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쟁을 부르는 평화, 불온한 평화다.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이것이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현실이다. 이러한 비극적 현실에 대하여 냉철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동안만, 전쟁은 우리에게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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