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보수화 되었다!
장면1
2003년 11월 서울의 한 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 학생들은 무관심하게 투표소를 지나쳐간다. 나흘간의 선거기간 동안 33.37%라는 낮은 투표율이 나오자, 이틀이나 연장투표를 실시했으나 46.67%로 총유권자의 과반수가 되지 않았고 선거는 무산됐다.
장면2
2003년 8월 서울시청 앞. 보수단체들이 연대해 시위를 하고 있다. 여기저기에 새로운 얼굴이 보인다. 바로 20대의 얼굴이다. 기존 보수단체는 주로 중년의 신사가 주축이었지만 지금은 20대가 시위대의 주축이 돼 구호를 외친 다. "친북 좌익 세력을 척결해 대한민국을 지키겠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20대는 곧 적극적인 사회참여, 그리고 진보'라는 공식이 통용됐다. 사회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기 위해 수건으로 코를 막고 최루탄이 가득한 거리에서 시위를 하던 20대의 모습은 1986년 이래 줄곧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런 장면도 이제는 옛말이 됐다. 요즘 20대는 보수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보수적인 면이 진정한 보수인지, 겉으로만 보수적으로 보이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2003년 각 대학의 총학생회장 선거 결과는 20대의 '보수화'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학생의 무관심 때문이다. 무관심은 전체의 보수화로 연결된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취직이 안 되니까 스스로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취직을 위해 이것저것 신경쓰다보면 외부에 신경쓰거나 개혁적인 발언을 할 수 없게 된다"고 분석했다. 경제 상황이 20대의 보수화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번에 실시한 여론조사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내 코가 석자라 사회에 무관심"
취업연령대인 2529세대(25~29세)의 경우 '정치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대답이 전체의 41.4%였다. 그 이유를 보면 첫번째
가 '현 정치권에 실망해서'(47%)이고 두번째가 '취업난과 고용불안 등 개인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37%)이라고 대답했다. 정치권에 실망했다는 것은 정치권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다만 자신의 앞에 닥친 문제 때문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2024세대(20~24세)에서도 이와 같은 결과를 찾아볼 수 있다. 2024세대 중 사회 진출을 모색해야 하는 여성은 '개인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라는 대답을 남성보다 3배 가까이 더 많이 선택했다.
2529세대와 여성 2024세대가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보수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의 견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급하기 때문에 외적인 문제에 신경쓰지 못하고 있는 게 그 이유다. 실제로 스스로는 무척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임모씨(27-취업준비생)는 "내 코가 석 자라 예전보다 사회에 대해 무관심하게 됐다"며 "외부적으로 보수적으로 비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2529세대의 52.3%가 자신을 진보적으로 평가했고 보수적이라고 평가한 이는 전체의 18.8%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1년 사이 경제적인 상황이 나아졌다고 밝힌 2529세대의 58.2%가 '더 진보적이 됐다"고 대답해, 경제 상황이 나아지면 진보적인 성향을 드러낼 것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무늬만 보수'인 2529세대에 비해 2024세대는 '속까지 보수'인 편이다. 18.8%만 스스로를 보수적이라고 대답한 2529세대에 반해 2024세대는 전체의 28.4%가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이라크 전투병 파병 문제와 미국에 대한 호감도, 북한에 대한 태도에서 2529세대와 확실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 파병을 찬성한 2024세대는 70.6%로 2529세대의 64.7%보다 높았다. 미국에 대한 호감도나 북한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 한총련을 반대하는 의견도 2529세대보다 많았다.
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들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 1979년 이후에 태어난 2024세대는 경제적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났다. 그들이 사춘기를 보낼 즈음은 이미 1986년의 제도적 민주화가 달성된 뒤였다. 배도 부르고 자유도 누릴 수 있었던 세대였다. 이들이 대학에 입학했을 때에는 그들에게 '진보의 담론'을 강요할 만한 선배는 이미 졸업하고 난 뒤였다. 운동권 세대로부터 거대담론을 교육받았던 X세대는 운동권 선배의 가르침을 후배인 2024세대에 전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X세대는 2024세대의 '우산'이 돼주었다. 덕택에 자신의 성향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거대담론이 자리잡고 있던 과거에는 보수라는 성향을 밝히면 백안시되기 일쑤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런 까닭에 2024세대는 자유로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4세대는 선배세대에 비해 보수와 진보를 명확히 드러냈다. 어정쩡한 중도를 버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의사표현을 하고 있다. 스스로를 보수적이라고 밝힌 허모씨(23-연세대 3년)는 "요즘에는 성향을 주입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 고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일 사람도 없다"며 "대학에 들어와 사회적으로 경험을 한 뒤 스스로 나 자신이 보수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이한 점은 2003년 한 해 동안 보수적으로 변했다고 대답한 비율이 각 세대 중에서 2024세대가 가장 높았다는 점이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으로 진보 정권이 들어선 영향이라고 한다. 보수학생연대 박세완 대표(23-고려대 2년)는 "예전에는 보수라고 밝히면 주변 분위기가 이상해졌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돼 진보 정권이 들어선 올해 들어 보수적인 입장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진보 정권에서 유토피아를 봤던 많은 이들이 실제로 진보 정권이 들어선 뒤 문제점이 발생하자 실망했고, 보수를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이다. 성향이 확립돼 있지 않는 2024세대의 특성상 이들의 변화가 가장 많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2024세대가 보수화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진보적 성향을 가진 이의 절반에 불과하다. 젊은 세대의 보수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보수화 현상은 긍정적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양쪽의 날개가 있어야 하늘을 날 수 있듯이 양쪽이 있어야 올바른 발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서로 인정하고 대화를 나누는 등 이견을 좁히기 위해 노력하도록 충고한다. 그렇지 못하면 사회가 대립과 갈등의 양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공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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