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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선택은?

Written by. 이장훈 (업코리아)   입력 : 2004-01-05 오후 2: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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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의 정권을 잡은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김 위원장 치하의 북한은 변함이 없다. 특히 북한처럼 권력 승계가 부자간에 이루어 진 이후에도 강력한 통치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나라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때문에 1994년 부친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권력을 이어받은 김 위원장은 이른바 '김씨 왕조'의 2대 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씨 부자는 지난 1945년 한반도가 해방된 이후 북한을 거의 60년 간 통치해온 셈이다.

62세의 김 위원장은 앞으로 상당기간 북한을 통치할 가능성이 높다. 재일본 조선인 총연합회(총련)의 기관지 조선신보가 발표한 '2003년 평양 10대 뉴스'에서 첫 번째로 꼽힌 것이 김 위원장의 재추대인 것처럼, 북한 주민들은 '김씨 왕조체제'를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미군에 체포되고,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대량살상무기 포기 선언을 해도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신변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을 것을 확신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의 외교전문잡지 포린 폴리시 가 독재자들의 운명을 다룬 2003년 12월 특집호 '그 날 이후'(The Day After)에서도 북한을 '가장 단단한 열매'(The Hardest Nut)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이 잡지는 김 위원장을 권좌에서 축출할 수 있는 방법은 암살과 외국 군사력의 개입 밖에 없으나 '선군'(先軍) 정치를 내세우고 있는 김 위원장을 북한 군부는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군부는 2003년 12월 24일 와병중인 조명록 군 총정치국장을 비롯, 김영춘 총참모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등 수뇌부가 참석한 가운데 김 위원장의 국방 위원장 재추대를 축하하는 대대적인 행사를 갖는 등 변함 없는 충성을 보인 바 있다. 북한 군부는 김 위원장이 축출된다면 자신들도 같은 운명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강철같은 결속력'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북한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김 위원장은 자신과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이 외국, 특히 미국 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자신의 유일한 생존 전략은 '핵 카드'를 이용, 미국으로부터 체제를 보장받는 것이라고 김 위원장은 생각하고 있다. 지난 1년 간 6자 회담 등을 통해 미국과 실랑이를 해온 김 위원장은 부시 행정부가 절대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체제붕괴와 북한 해방을 주장해온 신보수주의들인 네오콘이 부시 행정부를 이끌고 있는 만큼 미국과의 타협은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김 위원장이 마냥 미국과 줄다리기만을 할 수는 없다. 2003년은 북한으로서는 대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해였다. 신의주 특별행정구 지정, 금강산관광지구지정, 개성공업지구지정 등 일련의 경제 정책이 별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일부 시장 경제체제를 도입,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시행하고 있으나 에너지와 원자재 부족으로 공장 가동률은 떨어지면서 실업률이 올라가고 물가가 폭등하는 등 경제난이 가중됐다. 이를 타개하려면 차관 도입 등 외국 자본의 수혈이 필수적이지만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없는 한 불가능하다. 경제난이 자칫 사회불안을 야기하고 이 때문에 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에 김 위원장으로서는 '백성들의 원성'을 무마해야 한다. 호시탐탐 자신의 숨통을 노리는 미국은 김 위원장에게 동전의 앞과 뒤인 셈이다.

때문에 2004년은 김 위원장에게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핵을 포기하고 체제를 보장받을 것인가, 아니면 핵 개발을 계속하면서 버티기를 할 것인가. 김 위원장의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성급한 추측은 금물이지만 김 위원장은 일단 버티기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6자 회담에 응하면서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회담을 유도하되 2004년 11월 실시될 미국 대통령 선거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선거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선제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6자 회담에 어느 정도 응하되, 단계별로 테러 지원국 지정해제와 에너지 지원 등을 요구하는 등 협상국면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핵무기를 보유했다면 미국이 결코 이라크를 침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핵무기를 자신과 체제의 궁극적인 담보물로 보고 있다. 만약 부시 대통령이 재선되더라도 그동안 시간 벌기를 통해 핵폭탄을 충분히 제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부시 행정부는 김 위원장의 이 같은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부시 행정부는 대선 전까지 외교적 타결책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부시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카다피의 길을 따르라고 충고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절대 용인할 수 없는 만큼 적절한 수준에서 힘을 과시할 것도 고려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은 북한을 민주화한다는 정책 목표를 추진할 가능성도 높다. 이미 북한민주화 법안과 북한난민 구호법안이 미국 의회에 상정되는 등 가시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김 위원장이 핵문제를 보다 전향적으로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체제를 보장받고 북미 관계를 개선한다면 오히려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계산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의 최우선 목표는 체제보장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김 위원장은 핵문제를 해결하면 미국이 탄도 미사일 제거, 재래식 전력 감축, 인권과 종교의 자유 보장 등을 추가로 요구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어 쉽사리 핵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로서는 어떤 입장을 추진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일까. 북한의 핵 보유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도 절대 용인할 수 없다. 때문에 김 위원장이 핵 보유를 체제의 안전판으로 삼으려는 의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다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깨질 수도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막아야한다.

이를 위해 한미 협력을 보다 강화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반미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북한을 민족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의식도 고양되고 있다. 물론 북한주민들은 당연히 한민족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북한 체제를 우리가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을 김 위원장 체제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또 6자 회담을 추진하면서 중국에 너무 의존하는 태도 역시 문제다.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을 원치 않는 이유는 자칫 미국의 공격으로 한반도의 균형이 깨지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을 미국과의 세력 다툼에서 완충지역으로 보고 있으며 한반도가 미국의 힘으로 통일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다. 중국은 자국이 초강대국의 반열에 올라갈 때까지 한반도가 현상 유지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통일을 희망하는 우리로서는 앞으로 한미 공조를 강화하되 중국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미국이 무력을 내세우기 이전에 북한을 설득하는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물론 동서독의 사례처럼 철저하게 주고받는 식의 협상전략이 중요하다.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우리밖에 없다. 용미(用美)와 용중(用中)을 최선의 방책으로 삼고 한반도를 아우를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약력
한국일보 모스크바 주재 초대 특파원을 지냈고 사회부 차장, 국제부 수석 차장, 주간한국 부장을 역임했다. 한국 신문협회 기자 대상, 한국 기자협회 기자상, 백상 기자 대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네오콘-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사들>, <유러화의 출범과 21세기 유럽합중국>, <유럽의 문화도시들>, <러시아 곰은 웅담이 없다> 등이 있으며 현재 국제 분야의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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